동전 비누 공유 연맹 38

by 인디캣

A가 제작을 돕고 있는 우크라이나 게임의 주인공은 '나'라는 탐정으로 온갖 일을 전전하다가 탐정일까지 떠밀려 오게된 인물이었다. 탐정 '나'는 여느 때처럼 공유 오피스에 출근해 메일을 확인하다가 여러 탐정 사무소에 동시에 보낸 것 같은 글을 보게 된다. 글 속에서 의뢰인은 가격과 상관없이 의뢰를 맡길 테니 자신이 있으면 2시까지 모 카페로 오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메일을 지웠다가 휴지통에 가서 다시 메일을 살렸다. 어차피 일거리가 없는 상황.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1시 50분에 카페에 가서 어떤 사람이 의뢰인일지 점쳐 보았다. 혼자 있는 여고생. 아닐 테고. 악다구니를 쓰듯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노인들. 혼자서 노트북을 열고 뭔가에 열중하고 있는 다수의 개인들. '나'는 처음에는 2시가 되자마자 자리를 뜰 생각으로 여고생 옆에 앉았다.


여고생 앞에 검은색 선글라스를 쓴 50대 정도 돼 보이는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여고생은 몇마디 나눠보지도 않고 50대 남자를 자리에 앉혔다. 50대 남자는 자신의 군 경력과 탐정 생활에 대해서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다. 여고생은 교복을 입은채 50대 남자와 자리를 떠서 어딘가로 이동했다. '나'는 그 둘에게 흡수되듯이 끌려들어간 채 그들의 뒤를 쫓았다.


50대 남자가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와 여고생을 태웠다. '나' 역시 택시를 잡아타고 50대 남자의 차를 쫒아갔다. '나'는 이런 일에 대해 익숙한 '전문가'였지만 그 둘의 행동은 뭔가 이상한 점이 많았다. 조건만남인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탐정과 의뢰인의 관계라고 보기에는 나이차도 너무 많이 나고, 여고생이 괜찮은 의뢰비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좋지 않은 결말을 예상하고 그 둘을 따라가고 있었다.


둘은 시 외곽에 있는 무인텔에 멈췄다. '나'는 의심을 피하고자 무인텔을 지나쳤다가 다시 무인텔로 돌아와 차를 멈추게 했다. 아마 오늘은 그냥 공을 치는 날이 아니라 덤터기를 쓰는 날일 것 같다는 예감이 '나'는 들었다. 10분도 지나지 않아 오토바이를 탄 10대 여럿이 무인텔에 우르르 몰려왔다. '나'는 급박하게 택시에서 내려 그들을 쫓아 무인텔로 진입했다. 각기 쇠파이프와 각목 따위를 든 어린 남자 녀석들은 망설이는 느낌도 없이 2층으로 몰려갔다. '나'는 품에서 연사가 가능한 가스 총을 꺼내 그들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뒤에서 어물쩍거리고 있던 녀석들 얼굴에 가스총을 쏴서 제압한 후 그들의 쇠파이프를 빼앗아 모텔룸으로 들어갔다. 이미 진탕 얻어맞은 50대 남자는 옷을 반쯤 벗은 채 쓰러져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10대 남자아이들은 거품을 물고 있는 여자 여고생 앞에서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나는 여고생에게 다가가 CPR를 해봤지만 입안에 가득한 거품 때문에 도무지 숨이 들어가질 않았다.


'나'는 남자아이들에게 경찰과 구급차를 부르라고 한 뒤 계속해서 CPR를 시도했다. 남자아이들이 경찰과 씨름하는 사이 구급대원들은 '나'를 여고생으로부터 분리시킨 뒤 병원으로 이송했다. '나'는 남자아이들과 함께 경찰서로 끌려갔다. '나'는 오늘이 정말 탐정 생활 중에서 최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남자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경찰들은 남자아이들의 부모를 불러 그들을 인계하고 '나'에게 몇가지 단순한 사실들을 확인한 후 집으로 돌려보냈다. 물론 몇일 후에 경찰은 '나'와 남자아이들을 다시 부르게 될 것이다.


여고생은 죽지 않았고 50대 남자는 거의 반신불수나 마찬가지인 상태가 됐다. 너무 뻔한 상황이라서 굳이 변명을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후에 경찰로부터 듣게된 사정은 좀 이상한 것이었다. 50대 남자는 밖에서 담배를 피우려고 나가다가 10대 남자들을 만나 여고생이 있는 방으로 끌려들어오게 됐고, 여고생은 50대 남자 말로는 손도 대지 않았는데 저절로 거품을 물게된 상태로 발견됐다는 이야기였다. 여고생은 죽지 않았지만 정신이 깨어난 후에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경찰의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약속을 하게 된 후에야 더이상 참고인 조사를 안 받을 수 있었다. 남자아이들의 부모들은 차례대로 '나'에게 전화해 '죽여버리겠다' '일을 못하게 하겠다'고 협박을 해댔다. '나'는 잠자코 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어 남자아이들이 흔히 존재하는 양아치들이며 학교를 다니지 않고 떼로 몰려다니며 문제를 일으키길 밥먹듯이 하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여고생의 경우에는 뭔가 이상한 점이 많았다. 여고생은 여고탐정이라는 유명세를 탄 인물이었다. 일종의 코지 미스터리에 등장하는 여고생 캐릭터라고나 할까. 자잘한 사건들 몇개를 처리했고 그 결과 매스컴의 주목을 받게 됐다. 그녀가 처리한 사건들은 경찰을 부를 정도는 아니었지만 지역 사회 언론의 관심을 끌 정도는 됐다. 그녀를 모르는 학생이 하나도 없었다는 게 그녀의 유명세를 설명해줄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여고탐정이 어째서 진짜 '사건'에 끼어들게 된 걸까. 나는 게임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지만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코지 미스터리 세계의 주민은 코지한 세계에 있을 뿐이지 진짜 느와르의 세계에는 끼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A는 나에게 자신도 그런 사항에 대해 불만을 제기해봤지만 자신은 그저 이야기의 완성을 높이는 역할을 할뿐 그 이야기를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고 대답했다.


'나'는 여고탐정의 뒷 이야기를 수소문한 끝에 그녀가 일본에 한달간 다녀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정확히 어떤 이유로 일본에 가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단순한 여행은 아니었고 그 이후로 여고탐정이 뭔가 이상해졌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는 아이들의 이야기였다. '나'는 정보원으로 자처하게 된 경찰에게 전화를 걸어 여고탐정이 최근 일본에 다녀왔는데 어째서 한달 동안이나 떠나있었냐는 요지로 사실에 대해 캐물어 보았다. 경찰은 여고탐정이 뭔가 타칭보와 관련된 일에 얽혀 있었다며, 이 일은 도요코키즈나 야쿠자와 깊게 연관된 일이라며 말을 아꼈다.


새로운 단어를 알게 된 '나'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타칭보가 길거리에서 영업을 하는 창녀라는 사실과 도요코키즈는 가출 청소년인데 토호 시네마 앞 광장에 서식하고 있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고탐정이 일본에 가서 야쿠자의 위협을 견디지 못하고 타칭보가 됐던 것일까. 그런 종류의 일들이 야쿠자와 관련이 있다는 건 사실상 널리 알려져 있는 이야기다. 그랬다면 그녀의 정신과 신체를 위협할만한 일이 뭔가 있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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