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비누 공유 연맹 37

by 인디캣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A는 자신이 조현병적 망상에 시달렸을 때 알 수 없는 비밀조직이 자신을 뒤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내게 말했다. A는 지하철에서 누군가 소리를 지르며 지나가는 장면을 봤고 그 사람이 실은 자신에게 무언가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느꼈다. 10년 후에 A는 같은 얘기를 의사에게 했고 그것은 망상에 불과했음이,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난 직후에 A는 자신에게 망상이 찾아왔음을 알았지만, 분명하다고 깨닫게 되었다.


A는 한때 트위터에서 자신이 유명하다고 생각했고, 전혀 유명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팔로워 수도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별로 유명하지 않은 뮤지션들이 자신과 소통하고 있다는 망상에 빠졌다. 곧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A는 자신이 망상에 사로잡혔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 핑퐁과도 같은 게임이 실제로 현실인지 아니면 인터넷에 흔하게 널려 있는 망상증 환자에 불과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도달했다.


A는 모국에서 감옥에 갇힌 후에야 자신에게 망상이 찾아왔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감옥에 갇힐 리가 없고, 그 정도의 강도가 아니고서야 자신에게 어떠한 공포스러운 느낌이 찾아왔음을 인정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던 것이다. 내가 내가 아닌 상황이 되고서야 A는 나 자신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모국에서 정신을 잃은 나는 누구이고 그 후에 다시 정신을 회복한 나는 누구일까. 사실 나는 모두 같은 나로서 처음부터 나 자신에게 그런 망상의 여지가 있던 것은 아닐까.


예술은 하나의 용기다.


자신을 거짓없이 드러내는 것이 용기라고 하기도 하고 반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건 예술에 제약을 거는 일이라고도 한다. 자신을 소비시킬 정도로 쓰는 사람은 작가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을 쓰는 건 예술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예술이란 뭘까. A는 내게 사실상 예술이란 것은 중요하지 않고 예술가들도 그저 한명의 사람에 불과하다고 답해줬다. 얼마전에 문학상을 받은 작품을 읽었는데 간단명료하면서도 우울학 색채가 우아한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어서 과연 편혜영이 상을 줄만했다고 느꼈다.


A는 모국에서 두번의 정신감정을 받았고 5명의 정신과 의사와 심리상담가를 만났다. 그들은 모두 A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궁금해했다. 첫번째 정신감정에서 A는 트위터에서 만났던 여자아이에 대해서 얘기했다. A와 여자아이는 사귀기로 했고 몇년이 지나 A는 그 여자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떤 충격 같은 게 A에게 있었던 걸까. A는 정말로 충격을 받았던 걸까.


A는 항상 탐정이 되고 싶었다. 탐정이 되서 그 여자아이를 찾아나서는 모험에 뛰어들고 싶었다. 하지만 A는 결국 탐정이 되지 못했고 케이블 TV에 나오는 탐정들은 모두 반은 범죄자들이나 마찬가지였다. A는 범죄자가 되고 나서야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은 순간적인 판단에 좌우되는 것이고 반은 운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만화에나 나오는 이야기인지도 모르지만 범죄는 예술인지도 모른다. 어떤 범죄자는 예술가가 자신의 소재를 고르듯이 범행 대상을 물색하고 실제로 실행할 때는 자신의 직관도 예술적인 감각을 총동원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A는 지난 몇년간 만화를 본 적이 없었다. 대신 모국 구치소에서 엄청나게 많은 만화가 책꽂이에 꽂혀 있는 것을 봤다. 구치소에 수감된 모국 미결수들이 그나라 말로 된 만화책 대개 레이싱과 관련된 것이거나 염염소방대이거나 한 그런 것들을 꽂아놓고 평소에 탐독하고 있었다.


A는 구치소에서 매일 아침 샤워를 해야 했는데 마침 대한파가 찾아온 모국에서 아침마다 샤워를 하는 것은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마호메드라는 성스러운 이름을 가진 베트남 청년은 아침마다 샤워하기를 거부해서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었다. 중국 죄수들은 그가 냄새가 난다며 샤워를 하라고 했지만 베트남 청년은 알 수 없는 이유로 공동 샤워실에서 샤워하기를 거부했다.


A는 지독한 감기에 걸려있었고 샤워를 하면 병이 더 심해질 것 같아서 샤워를 하고 싶지 않았지만 베트남 청년이 당하는 꼴을 보고서는 옷을 벗고 샤워기 앞으로 걸어갔다. 죄수들은 공동 샤워실에서 오줌을 싸대기 때문에 너무 물이 지저분하다고 말했다. A가 보기에는 구치소 전체가 너무 지저분했고 병에 걸리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


A는 한국으로 잠깐 돌아왔다가 바로 우크라이나 인근에 있는 벨라루스로 출국해 도보로 우크라이나에 입국했다. 그는 처음에는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교회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삐끼 역할을 하다가 후에는 게임사와 관련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게임 회사에서 만들고 있는 게임은 챈들러식 누아르로 위험한 여자와 거부, 돈이 없어 아무 일이나 맡게 되는 탐정을 등장시키는 내용이었다.


우크라이나 말로 탐정 소설의 극의를 달성했던 이반 프란코를 좋아했던 게임 회사 사람들은 지금은 한국 영화들을 아주 좋아했다. 특히 사람을 망치로 때려 죽이는 영화를 좋아했는데 A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영화에 비하면 그런 종류의 한국 영화들은 애들 장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A는 JG발라드라든가 크래시라든가 그런 걸 좋아했고 나는 A가 어째서 한물간 SF를 좋아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A는 인터넷을 통해 여러명의 한국 탐정들과 인터뷰를 했고 인터뷰를 한 내용대로 이야기를 정리해서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넘겼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창녀가 등장하고 시민단체 활동을 했던 젊은 탐정이 주인공인 이상한 이야기를 비주얼 노벨 양식으로 만들어내고 있었다. 스팀에 등록만 하면 대박이 날 거라고 믿었던 그들은 될 수 있다면 한국인 성우들을 기용하고 싶었다. 생각보다 한국인 성우들은 비쌌고 대신에 인터넷에서만 활동하는 아마추어들은 실력은 이상했지만 가격이 쌌다.


A는 그런 아마추어들을 섭외해서 우크라이나 게임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 A도 가끔 한국어로된 욕설을 녹음해 게임 회사에 보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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