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윤석열 대통령이 독방에 갇혀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있다는 뉴스를 듣고, 과연 구치소에 몇일이나 있었는데 소화불량 정도로 고통스러워하나 궁금해졌다. A는 정신이상에 빠진 상태에서 불면증, 우울증, 망상 등으로 고통 받았고 낮시간에는 옆자리에 정신이 나간 살인자가 앉아 있었고 밤이 되면 변소 냄새에 시달리며 더러운 모포를 덮고 겨우 잠에 들었다.
그나마 모국이 나았던 점은 의자와 침대 위주의 입식 생활이라는 것이다. A는 '나'의 이야기에 살을 붙이면서 그가 좀 더 나은 인간이었던 시절을 떠올리는 장면을 추가해봤다. '나'는 갈등 해결을 위주로 하는 시민단체에 속해 있었다. 그곳에서 노량진시장이나 가락시장을 다니며 노점상들과 서울시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는 일을 했다. 그는 단순한 타이피스트였고 아무런 능력이 없는 조수에 불과했다. '나'는 전문적인 갈등 해소 교육을 받은 일도 없었고 그 단체에서도 상당한 갈등을 일으키는 트러블 메이커였다.
'나'는 시민단체 생활을 하면서 배우게 된 밑바닥 정서로부터 탐정일의 실마리를 쉽게 얻게되곤 했다. 이번 사건의 경우에도 여고탐정은 혼자서 일본에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직 고등학생밖에 되지 않았으니 누군가 동행하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한사람? 혹은 두사람 이상. 그들을 찾는 게 우선이었다.
'나'는 여고탐정의 인스타그램부터 시작했다. 그는 인스타그램에서 인플루언서였고 팔로우하고 있는 사람은 적었으나 팔로워는 많았다. 하나씩 팔로우하고 있는 인물들의 공개 계정에 접속해보자 여고탐정이 일본에 같이 갔던 인물들의 리스트가 나왔다. '나'는 디엠을 보내서 그들로부터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때로는 협박하고 때로는 구슬리면서 여고생들의 협조를 얻었다.
'나'가 얻은 정보대로라면 사연은 이랬다. 여고탐정은 지난해 11월 일본에 친구 셋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2박 3일 일정으로 도쿄와 오사카 등지의 맛집과 메이드카페를 돌아다니는 일정이었다. 무언가 트러블 혹은 다툼이 생긴 4명은 여고탐정과 함께 다니는 A조와 여고탐정에 반하는 B조로 둘씩 나뉘었다. B조는 기분이 상해 둘째날에 서둘러 서울로 왔고 A조는 계획대로 일본 여행을 계속했다.
A조는 그후 한달동안 한국에 들어오지 않았다. 부모와 A조는 끊김없이 연락이 됐지만 정확히 무슨 일 때문에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A조에 속했던 여고생은 여고탐정이 모든 돈을 벌어왔고 자신이 타칭보를 하고 있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여고생은 타칭보가 뭔지 처음에는 알지 못했지만 곧 모든 사실을 알게 됐고 매일 한국에 돌아가자고 여고탐정을 윽박지르고 부탁하고 속임수를 쓰고 호소했지만 결국 한달을 채워서야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A조 여고생은 여고탐정을 차마 버리고 혼자서 돌아올 수는 없었다고 '나'에게 말했다. 하지만 과연 여고탐정을 한달 동안 타칭보 생활을 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옳은 행동이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자신이 획득한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을 담당하고 있는 경사와 딜을 했다. 경사에게 여고탐정의 친구들 인스타그램을 넘겨주고 자신은 50대 남성 탐정의 가족 연락처를 받았다.
병원에 아직도 입원해 있는 50대 탐정은 혼자서는 화장실도 가지 못하는 상태였다. '나'는 아무것도 들지 않고 50대 탐정의 가족에게 연락해 그의 병실로 찾아갔다. 50대 탐정은 말은 하지 못하지만 눈을 깜박여서 예와 아니오 정도의 의사 전달은 할 수 있는 상태였다. 50대 탐정의 어머니는 80이 넘은 나이에도 아직도 정정해서 모든 잡일을 다 해결하고 있었다.
A는 여기까지 쓰고 내게 슬쩍 '나'의 이야기가 합당한지, 퀄리티는 괜찮은지 물어보았다. 나는 과연 이 이야기가 재미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고 실제로 일어난 일에 어울리는지도 판단하기 어려웠다. 어떤 이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쓰면 예술이라 하기 부족하다고 하고 어떤 이는 자동적으로 일어난 일을 따라가는 예술이야말로 일종의 진실을 담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예술에 대해 과문한 사람일수록 글을 함부로 쓰고 자신의 글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모르는 바보야말로 끊임없이 창작을 이어가기 마련이라고 A는 내게 말했다. 하지만 A의 글도 예술적으로 봤을 때 어떤 수준을 넘었는지 판단하기 어려웠고 그의 작품이 단순히 날품팔이 이상의 가치가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위대한 작가도 형편없는 글을 쓸 때가 있고 정신병자도 걸작을 남기는 순간이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A도 그런 생각에 동의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