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A는 모국에 관한 브이로그를 보게됐는데 해당 영상을 찍은 사람은 4평 남짓한 방에서 1년 넘게 살았다. A는 그 정도 크기의 집에 1년이나 살았다면 구치소에 수감돼 있었던 자신과 크게 다르지도 않은 상황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A는 어떤 때에는 4평보다 더 큰 공간에 있었으므로, 물론 그때는 2인일 때도 있었고 3인일 때도 있었지만, 영상을 찍은 사람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나은 상황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모국은 그만큼 개인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혹한 도시다. 이 도시 전체가 거대한 수용소다. A는 모국이란 작은 도시에 40개가 넘는 구치소와 감옥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정도면 도시 곳곳에 수용소가 세워져 있고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고 있는 게 수용소인지 아니면 평범한 맨션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A는 한국을 떠올렸고 서울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도 감옥에 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고시원에는 에어컨이 있지만 좁은 공간에서 정신이 아득해지는 사람들에게는 차라리 감옥이 나을 수도 있었다.
A는 나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지 고민을 토로했지만, 실은 시나리오 라이터가 따로 있었기 때문에 그의 결정이 결정적이었고 나머지 의견을 내놓는 것은 그게 실제로 일어날만 한지, 한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검토하는 것 뿐이었다.
'나'가 만난 50대 탐정은 자신이 일본에 여행갔을 때 여고탐정과 만나 토요코 키즈에 대한 수사를 같이 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종류의 수사였는지 눈을 깜빡이는 것 외에는 의사소통이 안되는 50대 탐정으로부터 더이상 들을 수 있는 게 없었다. 어쩌면 50대 탐정은 말도 하고 몸도 움직일 수 있는데 '나'에게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 눈꺼풀만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행세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토요코 키즈를 만나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신의 잔고를 확인한 후에는 50대 탐정의 어머니에게 수사에 도움을 주겠다고 거짓말을 하고 돈 몇푼을 받아 들었다. 그것마저도 없다면 '나'는 일본에 갈 수가 없었다. 일본은 여전히 한국에 비해 물가가 비싸고 비행기값도 들었다. '나'는 돈이 정말로 하나도 없었고 협박할 의뢰인도 의뢰인의 상대자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만큼 그는 결벽증적일 정도로 깔끔하게 살았다.
'나'가 이번 일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는 눈 앞에서 두 명의 사람이 반신불수가 될 정도로 고통을 받았기 때문이고 자신은 그 고통의 원인을 찾아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나'는 종교를 믿지 않았지만 자신의 직업인 탐정이 일종의 종교라고 생각될 정도로 강력한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별볼일 없는 인생을 살아왔고 평소에 만나게 되는 사람들도 별볼일 없는 사람들 투성이였지만 그 중에서도 삶의 진실은 있기 마련이고 자신은 그것을 추구하는 기사와도 같다고, 생각했다.
A는 '나'가 챈들러가 생각해낸 탐정인 말로랑 비슷하다고 나에게 말했다. 말로는 더러운 일을 하지도 않고 더럽혀지지도 않으면서 위험한 길을 걸어 내려가는 사내다. 그는 아서왕의 전설에 나오는 고귀한 기사 갤러헤드에 비견되곤 한다. 하루키는 챈들러를 읽으면서 말로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그의 직업적 양심은 종교적인 일화나 신화에 나올 법하다.
'나'는 여행 삼아 일본에 몇번 가본적이 있었지만 일을 하러 가본 적은 없었다. 평소에 AKB의 칸무리 방송인 'AKBINGO'를 많이 봤기 때문에 실전 일본어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히라가나도 대충은 다 읽을 수 있었다. 문제는 한자와 카타카나를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이자카야를 가서 음식을 시킬 수 없다는 것. 그 정도 약점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일본어를 할 줄 안다고 해서 가출 청소년인 토요코 키즈와 말이 통한다고는 볼 수 없다. '나'는 일본에 대해 유튜브를 검색해봤지만 허구헌날 나오는 건 일본인 여자와 결혼한 한국인 남자의 정신나간 유튜브 영상 뿐이었다. 다 같은 여자인데 한국여자보다 일본 여자가 더 나을 이유가 무엇인가. 일본인들도 자신들의 나라가 수십년째 아무런 변화도 없는 지옥같은 나라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취업계수가 높으면 무엇하는가. 20대부터 시작한 히키코모리 생활을 50대까지 계속하고 부모가 죽으면 노숙자가 되는 게 일본의 현실이었다.
한국도, 수십만명의 쉬었음 인구가 있는 이 나라도 일본과 크게 다르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물론 직업을 구하려는 사람보다 사람을 구하려는 회사가 훨씬 더 적은, 취업계수가 형편없이 낮은 상황인 한국은 지옥중의 지옥이었다. A는 이러한 사실을 우크라이나 게임 회사 사람들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해봤지만 우크라이나는 전쟁 중이었고 25살만 넘으면 징집돼서 총알받이로 사용되는 나라였다.
한마디로 말이 통하지 않았다. A는 우크라이나에 있는 동안 러시아어를 배우기보다는 영어를 더 잘하는 데 신경을 쓰게 됐다. 그 편이 대우가 더 좋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자신들과 민족적인 동질성이 있는 러시아 사람들이 쓰는 언어, 사실상 우크라이나어와 동일한 언어보다는 로켓을 전달해주는 미국 사람들이 쓰는 영어를 더 좋아했다. 한국처럼 '정'이 있는 문화는 아니었지만 슬라브 계열 인종들 특유의 차갑지만 합리적인 이성이 차별대우를 하지 않았다.
A는 한국보다 우크라이나가 더 좋다고 느꼈다. 이곳에서는 미사일이 날아와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한국에서는 예정된 죽음으로 누구도 피할 수 없이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우크라이나는 살아남을 가능성이 어느 정도라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완전히 끝이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 A는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결국엔 죽기 마련이다. 그전까지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지는 개인의 무한한 자유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