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은 왜 갔습니까.
그냥 놀러간 것 뿐이에요.
다른 나라도 있었잖아요.
어쩐지 홍콩이 마음에 들었어요. 클락켄플랍이라는 페스티벌도 흥미로웠고. 홍콩은 여러가지로 한국의 서울과 비슷한 도시예요. 냄새나고 좁고 시끄럽고 번잡하죠.
홍콩에 한달 살고 싶었지만 홍콩 감옥에서 한달 살고 싶지는 않았어요.
홍콩은 흥미로운 도시예요. 한국 사람들이 좋아할 만하죠. 홍콩 감옥은 전혀 흥미롭지 않았어요. 정말 끔찍했죠. 한국 사람들은 홍콩 감옥에 잘 잡혀오지 않는다고 해요. 대개 잡혀오는 사람들은 중국 사람들이죠.
왜 정신을 잃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깨어나 보니까 병원이었고 전 거기서 범죄를 저질러 바로 감옥으로 갔죠. 경찰서에서는 아무런 도움도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어요. 어떤 식으로든 조사를 해서 결과를 냈으면 한달 동안이나 갇혀 있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홍콩 경찰은 성룡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유능하지가 않은 것 같아요. 엄청난 바보들이죠.
홍콩의 공립 병원은 포화상태였어요. 의사는 저 같은 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지 못했어요. 영어로 속사포같이 물어보고 끝이었죠. 미친 사람이 어떻게 그런 진찰을 받을 수 있겠어요. 아무런 도움도 안됐죠. 하지만 누군가 저를 신고해서 경찰이 아니라 병원으로 데려갔다는 건 누가 봐도 미친 상태였다는 거 아니겠어요.
뭘 두려워하고 있죠?
또 그런 일이 일어날까봐 두려워요. 최근에 어머니 집에 가면 밤중에 어머니의 비명소리에 잠을 깰 때가 있어요. 악몽을 꾸는 거죠.
악몽을 꾸는 것도 정신병의 일종인가요?
모르겠어요. 전 의사가 아니니까요. 최근에 저는 거의 꿈을 꾸지 않아요. 하지만 평생 혹은 5년 이상 홍콩에 입국금지라는 건 너무 하는 것 같아요. 홍콩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어린 시절 얘기를 해보죠.
어릴 때 저는 고독한 아이였어요. 너무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친구가 하나도 없었죠. 항상 혼자서 밥을 먹고 집에 혼자 돌아왔어요.
언제까지 그랬죠.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에 가서도 마찬가지였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얻었는데 너무 엉터리 같은 곳이었어요. 결국 저는 금방 일을 그만두고 집에 틀어박혔어요. 아무래도 제 정신병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그때는 히키코모리라는 말도 일반적이지 않았어요. NEET라고 했죠.
NEET가 뭐죠.
교육도, 트레이닝도 받지 않고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요. 그냠 쉬었음 인구죠. 저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몇년 정도 집에만 있었어요. 잠을 엄청 많이 잤던 것 같아요. 그게 우울증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어요.
그리고요?
별볼일 없는 직장에 아버지 소개로 들어갔다가 나오고 들어갔다가 나오고를 반복했어요. 아버지 힘을 빌릴 수 없을 때는 또 별볼일 없는 일자리를 구해서 다녔다가 그만뒀다가를 반복했죠. 그때는 너무 형편없는 직장에 다녀서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그냥 미친 거였어요.
어떤 정신병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예요. 버틸 수가 없었던 거죠. 약도 먹지 않고 병원도 안 다니고. 그렇게 10년을 넘게 살았어요. 직장을 차라리 쉬었으면 정신적으로 더 괜찮았을지도 몰라요.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죠.
여자친구가 있었나요.
두세번 정도 있었죠. 저보다 아주 어린 친구들이었어요. 왜 그런 아이들하고 사귀었는지 모르겠어요. 그 아이들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았어요. 결국 한명은 몇년 지나지 않아 죽어버리고 말죠. 그건 정말 끔찍한 경험이에요. 한때 사귀었던 사람이 자살해버린다는 건.
자살하고 싶나요.
모르겠어요.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정작 자살을 시도해본 적은 없어요. 그냥 습관적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거듭할 뿐이에요. 그게 자살 사고라면 자살 사고겠죠. 하지만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항상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살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든지는 벌써 20년도 넘었어요.
항상 우울했나요?
항상 그랬어요. 기분의 변화가 심한 편이 아니었죠. 하지만 최근에 한국에서 종합병원을 다녀왔는데 조증 삽화와 울증 삽화가 반복되는 양극성 장애라고 하더군요. 조울증이죠. 옛날 이름으로는. 하지만 조증 상태라고 해서 엄청 기쁘다거나 그렇지는 않아요. 단지 우울하지는 않은 상태죠. 문제는 조증 상태일 때 망상이 찾아온다는 거예요.
무슨 망상이죠?
나는 신이다 라는. 다큐멘터리 제목 같죠. 그 생각이 거의 오륙년 넘게 들었던 것 같아요. 근데 망상인 줄 몰랐죠. 저는 SF를 좋아하는데 특히 PKD를 좋아하거든요. 필립 케이 딕이요. 영화화가 많이 된 미치광이 작가죠. 그 사람처럼 저도 뭔가 예술적인 모티프가 찾아온 줄 알았어요. 근데 아니었죠. 단순한 망상이었어요. 정신과를 다니긴 했지만 우울이나 불안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온갖 약을 먹었죠. 망상 약도 먹었는데 너무 적게 먹은 거죠.
저는 홍콩에서 세상의 모든 게 꿈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2차세계라고 생각했어요. 세계를 만들어낸다는 의미에서 내가 신이 됐다고 생각했죠. 세상 모든 게 내가 만들어낸 정보라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강력한 망상이죠. 망상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 것이지, 다른 악의가 있어서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니에요. 한국이었으면 몇일 잡혀 있다가 훈방되거나 정신병원으로 옮겨졌을 거예요.
홍콩은 중국에 반환된 이후로 민주주의를 잃었고 지독한 경찰국가가 됐죠. 홍콩에 그렇게 많은 교도소와 구치소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엄청나게 많은 중국인들이 홍콩을 찾고 대부분 범죄자가 되죠. 그러면 홍콩 경찰은 아무런 이유도 되지 않는 걸 가지고 붙잡아서 가둬놓는 거예요. 홍콩 구치소의 간수들은 대개 다 중국 본통에서 온 사람들이었어요. 영어를 잘 못 하는 하층민들이죠. 간수들 중에서 계급이 높은 사람은 영어가 좀 됐어요. 하지만 별 의미가 없었죠. 저를 시우람 정신병원으로 쳐 넣었으니까요.
제가 미쳐서 시우람에 간 게 아니라 밥을 안먹겠다고 하는 바람에 시우람에 가게 된 거예요. 부모님하고 연락을 하고 싶었거든요. 부모님과 연락을 해주게 하든가 영사관하고 연락을 하게 해주든가 외국인한테는 뭔가 다른 대우가 필요한 거 아니겠어요? 홍콩은 그런 점에서 얄짤이 없죠. 물론 홍콩 사람들은 백인들을 모시고 살죠. 옛날에는 영국 식민지였으니까요. 그 다음은 중국인, 그 다음은 홍콩인, 흑인, 동아시아인이죠.
홍콩도 인종 차별이 심한 도시 같아요. 사람들은 불친절하고 백인들은 어딜 가나 있죠. 백인들이 대우받는 만큼 다른 인종이 대우받을 수 없다는 건 너무 당연한 얘기 같아요. 우리 살인자 메튜, 뭔가를 인젝션 당한 어떤 백인. 그들은 확실히 특혜를 받는다고는 할 수 없지만 중국인보다는 나은 대우를 받는다고 할 수 있죠. 백인들은 돈이 많잖아요. 홍콩처럼 비싼 곳에서는 중국 사람들은 변호사를 살 돈이 없어요. 저는 변호사를 샀죠. 수천만원이 깨졌어요.
그게 한국 동포입니다.
A는 첫번째 정신과전문의와의 상담을 마친 후에도 약을 받지 못했다. 애초에 이 정신과 전문의는 A의 정신이 플리Plea를 하기에 적절한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똑같은 상담을 한번 더 다른 정신과 전문의에게 받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A는 의사에게 어째서 2번이나 다른 사람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하냐고 물어봤지만 홍콩에서는 그게 스탠다드라는 얘기를 들었을 뿐이다.
아무튼 정신이 정상이 아니라면 혼자서 해외여행을 오지 마세요.
의사가 A에게 그렇게 말했다. A는 물론 자신도 그정도는 알고 있었고, 설마하니 정신을 잃어서 망상에 빠지고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오게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는 영어를 그만큼 잘하지 못했다. 아무튼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면 해외여행을 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한국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하지만 A는 한국에 돌아온 후로도 밖으로 나돌다 우크라이나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게임회사에서 알바를 시작했고 '나'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시나리오 라이터가 누군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뭔가 직업을 잘못 선택한 것 같았다. 모든 등장인물이 창녀가 되고 창녀가 된 시점에서 더이상 발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