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오늘 나는 끝날지도 몰라.
A는 내게 거의 매일 이런 것과 비슷한 류의 이야기를 했다.
이제 우리는 더이상 이야기를 나눌 수 없을지도 몰라. 혹은 우리에게 우정이 있다면 그게 오늘 끝인가봐.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인생을 얼마나 더 살기가 싫은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왔다. 하지만 A는 끝내 자살하지 않았고 나는 그의 반복되는 이야기에 지쳐갔다. A는 정말로 죽고 싶은 걸까. 그렇다면 왜 당장 죽지 않는 걸까.
죽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자살의 징후 중 하나라고 한다. 사실 무엇이 징후인지와는 상관없이 A가 죽고 싶어하는 것은 벌써 10년도 더 된 이야기다. A는 20년 전에도 죽고 싶어했다. 나는 A와 너무 오래 알고 지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이야기 중 많은 것이 반복되기 마련이었고 나는 그런 반복을 견딜 수 없었다. A는 어쩌면 20년 전에 죽었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의 인생은 10대 끄트머리에 이미 끝났고 나머지는 불안정한 여음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A에게는 차마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어서 A에게 자살에 관한 암시를 들은 날이면 그에 대해 몇구절 끄적이곤 했다. A에게 있어서도 모국에서의 수형 생활은 너무 충격적인 일이어서 그 이후로 이어진 또 다른 수형 생활 - 별볼일 없는 직장에서 지겨운 근무는 상대적으로 견딜만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마저 약빨이 다해가고 있었다.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 그 사건을 떠올릴 때마다 A는 똑같은 일이 또 일어날까봐 걱정이 됐지만 약이 있는 이상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 한구석의 부정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모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때도 약은 있었고 주기적으로 먹었는지 통채로 먹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약을 먹긴 했었다. 아무리 엉터리 정신과 의사라고 해도 약은 어떤 효과가 있기 마련이었다.
나는 모국에서의 미친 사람들이 그리워. 그들에게 속했을 때 가장 안전하다고 느꼈어. 그속에서 나는 조금은 덜 미친 사람이었고 최소한 메튜처럼 헛소리를 반복해서 중얼거리지는 않았으니까. 그 속에서는 다들 서로 배려해주고 불쌍하게 여겨줬어. 살인자 메튜가 가장 불쌍하고 오래된 사람이었지. 분명히 모국의 미결수 감옥에는 살인자들이 여럿 살았지만 나는 홀로 있을 때 가장 위험한 상황이었어. 약도 없었고 언제 증상이 또 나타날지 알 수 없었지.
모두가 서로 미친녀석들이라고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그곳은 미친 사람들이 가장 안전할 수 있는 장소였어. 우리는 재미없고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는 모국의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를 끝도 없이 봐야했어. 메튜는 항상 잠이 부족했는지 엎드리고만 있는 주제에 최소한 영어가 나오는 방송이 계속해서 틀어져야 한다고 주장했지. 아마 메튜는 몇십년형을 받게 됐을 거야. 모국의 혹형주의적인 성격이 그런 결과를 불러올 게 뻔했지. 재판에만 몇년, 감옥에 갇혀서 몇십년. 제대로 된 재판을 받기를 바라는 외국인들이 결국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 같아.
한국에서는 미친 사람들의 범죄가 그나마 참작이 된다지. 모국에서는 그런 게 없는 모양이야. 중한 범죄에는 중형이 내려지는 게 모국의 정의인가봐.
A의 모국 타령도 이제 그만 들을 때가 된 것 같다. A가 죽게 되면 나는 이 이상한 이야기를 더이상 듣지 않아도 될 것이다. 주저리주저리. 요령부득한 이야기들. 미친 사람의 미친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 미친 사람들이 서로 끌리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사람은 비슷한 부류들끼리 어울리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나는 결국 그런 미친 사람들끼리의 이야기가 어떻게 되는지 어떤 결말을 맺게 되는지 잘 알고 있다. 누군가 죽거나 심하게 상처받거나 둘 중 하나다.
나는 A의 연애사에 대해 들었다. 합평회에서의 만남. 그리고 십수년 후의 재회. 후에 거장은 아니더라도 이름난 작가가 된 사람들과의 합평회. 카페에서 담배를 피웠던 사람들. 홍대 상파울루. 판타지. SF. 모든 게 다 유행이지. 내가 쓰고 있는 이 '오토 픽션'도 흘러간 유행의 한구절에 불과하다. 인터넷 모임에서 사람을 만나는 건 다 별볼일 없는 결말로 끝나는 것 같다. 지금도 사람들은 틱톡에서, 쓰레드에서, 트위터에서, 페이스북에서, 인스타그램에서 사람들을 만나지만 혹은 결혼도 하지만 그건 그냥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운이 안 좋은 사람은 계속해서 운이 안 좋은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나는 운이 좋은가. 그 난리를 치고도 살아있다면 운이 좋은 거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모국에서의 이틀 혹은 사흘 동안의 일에서도 나는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게 강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운이 좋은 건 확실하다.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도 리암 갤러거도 마약과 술을 그렇게 많이 했는데도 50이 넘어서까지 살아남았다. 그들이 최고의 밴드가 된 건 나머지 밴드들이 해체했거나 죽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아남아서 재결합을 할 수 있었다. 그걸 운이라고 불러야 할지 아니면 강함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이 행운아인 건 사실이다. 매일같이 폭력을 행사했던 친아버지로부터도 살아남았고 브릿팟 대전에서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블러나 펄프, 스웨이드가 그들보다 음악성이 떨어졌던 게 아니다. 화제성에 있어서 덜하고 더하고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죽기만을 기다리는 거야? A는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고 답했다. 살아나갈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변화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리는 것 뿐이다.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변화를 기다리는 것은 결국 죽음을 기다리는 일과 같다. 유일한 변화가 죽음 뿐이라면 더이상 시간을 질질 끌 필요도 없다. 당장 실행하고 이 지겨운 연옥을 끝내야 한다.
A는 아직 자신에겐 할 일이 남아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죽는 것 말도 할 일이 남았다면 행운아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게 많지만. 결혼을 할 수 있다면, 아이가 생긴다면 뭔가 돌파구가 생길 수도 있다. A는 가끔 자신이 결혼하지 않고도 입양을 할 방법이 있지 않냐는 이야기를 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입양을 하려면 결혼을 한 상태여야 한다. 예외는 언제나 있는 법이지만.
왜 아이일까. 아이를 낳고 싶은 게 아니라 생의 의미를 되찾아줄 대상을 갖고 싶다는 거다. 나는 A가 조금 이해됐다. 많은 부모들이 생의 가치를 아이에게 두곤 한다. 욕설을 내뱉거나 강함을 가장하거나 싸우거나 화내거나 비극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구는 것보다는 더 나은 일이다. 인간에게 인간이 구원이 된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구원의 의미를 찾으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한다. 비극의 시작이 될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짝을 찾는 행렬이 길다.
비극. 희극. 소극. 소동극. 어떤 게 미래가 될지 알 수 없어도 일단 극본의 영향력 하에 뛰어든다. 그게 인생이다.
그게 인생일까. 내가 인생에 대해 뭘 알고 있지? 고작 비루한 삶의 연속에 대해서만 어렴풋이 알 뿐이지 않은가. A는 인생에 대해서 알까. 인생의 허무한 면모에 대해서는 전문가일지 몰라도 매일 느끼는 기쁨, 꾸준히 쌓아올리는 삶의 근면함, 인간 관계가 주는 안정감에 관해서는 애송이다. 죽음을 택하는 건 쉽다. 문제는 삶을 컨트롤하는 거다. 만화 지뢰진에서 이이다 쿄야가 말한 것처럼.
삶을 컨트롤하는 예술은 글을 제대로 쓰는 것 만큼이나 어렵다.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백지를 채워가는 건 무한한 자유가 있는 일이다. 자유가 인간에게 얼마나 큰 고통인가. 누군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일이 지시하고 이를 따라가는 것만큼 쉬운 인생이 있을까. 감옥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다. 언제 밥을 먹고 무엇을 먹고 밥을 먹은 다음에는 어떤 일을 하고. 모든 게 계획돼 있고 그걸 따라가는 것만이 과제다. 쉬운 인생. 자신의 삶을 계획해나가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천국이다.
모든 걸 자기 계획대로 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감옥의 부자유가 지옥이다. 1인실을 줘도 고통은 여전하다. 덥고 춥고 좁고 냄새나고. 자신과 비슷한 인간들과 끝없이 싸운다. 아이 노우 올 밀리터리 띵. 군대를 다녀온 A는 모국의 감옥에서 그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삶을 계획해준다는 점에서 군대는 감옥과 비슷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침구를 정리하고. 침구를 정리하는 상세한 방법이 있다.
오 밀리터리 띵이군.
군대에서 다 겪어봤지. A는 군대에서 생각했다. 군대가 나을까. 감옥이 나을까. 아니면 군대 감옥이 나을까. 당연히 군대, 군대 감옥, 감옥 순이다. 그래서 A는 감옥 대신에 병원을 가기로 선택했다. 자신의 운명을 개척한 것이다. 그 뒤에서는 연줄의 힘이 있었지만. 병원, 군대 병원, 군대, 군대 감옥, 감옥 순이기 때문에.
병원과 군대는 비슷한 룰로 움직이지만 군대보다 병원이 나은 건 당연한 일이다. 군대 감옥은 군대와 비슷한 룰로 움직이지만 군대보다 훨씬 편하다. A는 심리상담가와의 세션에서 감옥은 모두 아우슈비츠와 닮은 꼴이라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의사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 감옥에서 나와서 생각해보니 죽음의 수용소와 모국의 감옥은 아무런 공통점도 없었다.
이론만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것과 실제로 갇혀보는 것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 A는 그렇게 생각했다. A는 군대에서 영창에 갔을 때 감옥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실제로 갇혀본 모국의 감옥과는 천지차이였다. 군대에 올 정도면 아주 미친 녀석들, 예를 들어 살인범은 걸러지기 때문이다. 모국의 감옥에서는 마약 중독자, 딜러, 살인자, 강도, 저지능자들과 함께 생활해야 했다. 그들과의 지독한 콜라보는 끔찍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