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공모전의 예심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그동안 이 글을 어디 공모전에라도 내려고 했는데 이미 인터넷에 올라간 글이라서 요건에 부합하지 않았다. 다만 공모전 중에도 인터넷 발표도 괜찮은 곳이 있어서 글을 정리해서 냈다. 몇달이 흘러서 확인해본 결과 예심조차 통과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렇다. 그게 내 실력이다.
형편없는 직장을 전전하는 것도, 공모전 예심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것도 결국 내 본원적인 실력이 부족해서이지 불운의 결과가 아니다. 누구라도 좋은 글을 알아보는 사람은 단번에 눈치챌 수 있다. 몇문장만 읽어보아도 그 글이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내 글 실력은 형편이 없다.
좋은 글을 쓸 수 있었다면 벌써 데이즈드앤컨퓨즈드나 지큐 같은 곳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능력 부족이다. 음악에 대한 견해도 책에 대한 생각도 글에 대한 지식도 얕고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
A에게 이 얘기를 해봤지만 A는 하루 빨리 동구권 국가로 이주하라는 이상한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나는 그가 약을 제대로 먹고 있는지, 정말로 효과가 있는 약을 먹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A도 한때는 소설가로서 직업을 구해보려고 노력해봤지만, 사실 그 노력이 정말로 어떤 수준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글을 써서 먹고 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일단 어떻게든 등단을 하는 건, 소설을 어떤 식으로든 책의 형태로 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세상에는 많은 소설가들이 있지만 대부분 형편없는 수준이고 그 형편없는 수준의 소설가조차 되지 못하는 게 A와 나의 현실이었다. A는 절망을 계속 하는 것도 습관이라며 익숙해지면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으니 긍정적인 인간이 되는 연습을 하라고 했다.
나는 우크라이나에 계속 살고 있는 A의 말이 과연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힘없이 고개를 몇번 끄덕였다. 사실 직장을 다니면서 심심할 때마다 글을 쓰는 것이 어떤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믿기는 힘들었다. 온 힘을 다해서 글을 써나가도 부족할 판에 남는 시간에 심심풀이로 쓰는 글이 성공하는 건 미야베 미유키 정도의 타고난 작가가 아니면 항상 비슷한 결과를 불러올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A는 미야베 미유키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녀는 확실히 작가로서 대단하다고 공감했다. 미야베 미유키만큼 많이 쓰면서도 일정 퀄리티를 유지하는 작가는 드물었다. 작가로서 대단한 수련 과정을 거친 것도 아닌데 데뷔 때부터 이미 실력이 엄청 났고 지금은 한류를 좋아하는 그냥 아주머니이지만 아무튼 필력이 크게 떨어지지도 않았다.
나는 A에게 미야베 미유키를 언제 읽어봤냐고 물어봤다. A는 화차를 이후로 읽은 적이 없다고 했다. 최근 들어 많이 번역됐던 에도 괴담 시리즈는 전혀 읽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도 돌이켜 생각해보니 딱히 미야베 미유키의 최근작을 읽은 기억이 없었다. 기억을 되살려 보면 모방범이 재밌었다 정도다. 한명의 위대한 작가가 나오려면 해당 국가의 문학씬 자체가 위대해야만 한다.
아니면 그 작가가 외국어에 능통해서 타국의 문학적 전통과 성과를 흡수할 수 있던가. 이번에 노벨상을 받은 작가도 사탄탱고라는 긴 영화의 원작을 쓴 것으로 이미 언더그라운드에서는 상당한 지명도가 있었던 모양이다. 노벨상은 그런 작가에게 주어지는 경향이 있다. 뭔가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아무튼 대단한 사람.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너무 유명하면 상을 잘 주지 않는다.
사탄탱고는 영화가 8시간이 넘고 소설은 수백쪽이 전부 한문장으로 되어 있는 등 사람들의 접근성이 무척 낮은 작품이라고 하지만 그런 작품일수록 문학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기가 쉬웠다. 문학성이란 어쩌면 접근성과 반비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이 문학성이고 무엇이 문학성이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히 문학상을 받는 작품들은 읽기 어렵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물론 쉬운 소설도 좋은 문학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쉽게 쓰는 건 어렵게 쓰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