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비누 공유 연맹 50

by 인디캣

A는 폭력적인 성향의 중국인 청년과 2인실을 같이 썼던 이야기를 내게 해주었다. 이전에도 한 얘기지만 아무튼. 이번에는 더 자세히.


중국인 청년은 항상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 그것이 그 감옥-병원의 규칙 중 하나이기도 했지만, 집요하게 얼굴을 가리는 유형이었다. 중국인 청년은 한국이 좋다며 싸이가 어쩌구라고 말할 때도 있었고 무슨무슨 킥을 언급하며 이종격투기 얘기를 할 때도 있었다. 대체로 중국인 죄수들은 배움이 짧기 때문에 영어 실력도 썩 좋지 않았다. 감옥에 올 정도면 가정 문제, 학업 문제는 있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A는 들었다.


A는 그 중국인 청년이 아침마다 베개를 세워놓고 무자비하게 폭행을 했다는 이야기를 하며 정말 오싹했다는 평을 했다. 나 같아도 모국에 놀러 갔다가 잡혀온 감옥에서 아무리 봐도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 중국인을 만나면 목숨의 위협을 느낄 만했다. 더군다나 이 감옥-병실에는 인도인의 말에 따르면 살인자들이 여럿 있다고 했다. A가 알고 있는 대놓고 살인자는 메튜 뿐이었지만 조용히 지내고 있는 누군가가 살인자일지 폭력범일지 강도일지, 모국어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A로서는 정보를 얻어내기 어려웠다.


다행히 중국인 청년은 A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이빨 빠진 홍콩인 중년의 말을 아주 잘 들었다. 어찌나 잘 들었는지 저녁에 간식을 먹던 중국인 청년은 A의 입에 직접 과자를 넣어줄 정도였다. A는 그런 중국인 청년이 부담스러웠지만 어쨌든 때리는 것보다는 간식을 먹여주는 게 더 낫기 때문에 잠자코 간식을 받아먹었다. 이후로도 중국인 청년은 자신의 간식을 A에게 매일 같이 나눠주었다.


이 감옥-병원에서 간식이 많다는 것은 이전에도 감옥에 들어와 기결수로서 봉사를 해 감옥 달란트-포인트를 많이 쌓아놨다는 뜻이므로 그 사람이 위험인물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기결수들이 노동을 해서 받는 돈은 한달에 홍콩 달러로 수천달러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한국 돈으로 치면 불과 수십만원이었다. 그 돈으로 휴지도 사고 과자도 사고 공책도 사서 또 다른 감옥 생활을 해 나가는 게 보통이었다. 죄수들 중에는 통이 큰 유형도 있어서 어떤 젊은이는 음료수를 한 박스 사서 돌리기도 했다.


이빨 빠진 홍콩인에게 듣기로는 통큰 젊은이는 수십킬로나 되는 코카인을 밀수한 인물이었다.


역시 통이 크군.


이빨 빠진 홍콩인은 A가 근심 가득한 얼굴로 항상 있는 걸 보고 병원-감옥은 휴양지나 마찬가지니 얼굴을 펴라고 말했다. 그 홍콩인도 역시 마약 사범이었는데 마약 딜러인 우크라이나인처럼 환청을 듣지는 않았다. 단지 이혼하면서 가족을 보지 못하는 고통에 마약에 손을 댔다는데 구체적인 사유와는 상관 없이 몸이 아주 좋았고 이빨이 빠진 것을 제외하면 남자답게 생겼다.


A는 감옥-병원에 있는 교회를 가면서 이빨 빠진 홍콩인과 친해졌다. 마약중독자이지만 나름대로 독실한 크리스찬이었던 것이다. A는 전혀 크리스찬이 아니었지만 뭔가 얻어먹을 게 있지 않을까 해서 종교 행사에 참여했다. A가 알게 된 건 모국 감옥에 있는 교회에서는 노래를 같이 부를 뿐 아무런 과자도 음료수도 주지 않는다는 것 뿐이었다. 대신 교회 봉사자-일종의 목사는 A에게 한국어로 된 성경을 구해주겠다고 약속했다.


A는 사실 성경이 필요 없었지만, 말했듯이 신자가 아니기 때문에, 뭔가 한국어로 된 읽을거리가 있으면 좋겠었기에 한국어 성경을 요구했다. 모국에도 한국인 크리스찬 커뮤니티는 있었지만 아주 활성화돼 있는 상태는 아니었기 때문에 빠르게 한국어 성경을 구하기는 힘들었다. 결국 A는 한국어 성경을 받기 전에 감옥에서 나오게 됐다.


A는 나오기 전에 이빨 빠진 홍콩인의 위챗 아이디를 적어서 갖고 왔다. 한국까지 그걸 가지고 왔지만 언제 이빨 빠진 홍콩인이 출소하는지 알 수 없었던 데다가 마약 중독자와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는 게 옳은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아무튼 A는 마약과는 상관이 없이 살아왔고 이제 와서 외국인 친구를 사귄다고 해서 좋을 게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위챗 아이디를 찢어서 버리거나 하지도 않았다. A는 모국에서의 짧은 수형생활에 대해 다소 낭만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분명히 A가 그곳에서 정신적인 문제를 일으킨 것은 충격적인 일이고 그에 따르는 수형생활도 정말 X같았지만 A가 만난 죄수들은 하나같이 흥미로운 인물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름대로의 약점 - 혐의, 범죄행위를 갖고 있고 캐릭터가 아주 확실했다. 한국에도 감옥에서의 생활을 다룬 드라마가 있지만 자신이 직접 감옥에 갇히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경험의 강도는 물론이거니와 다양성, 자신의 목숨이 달려있다는 절박성이란 측면에서도 수형생활은 의미가 깊었다. 물론 A는 이제 감옥에 질렸고 더이상은 모국이든 한국이든 감옥에 가고 싶지 않았다.


대신 모국에는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모국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에 참여하고 싶기도 하고 기묘하게 서울과 닮은 모국의 바이브가 그리웠던 것이다. 하지만 A는 감옥에서 한번 범죄를 일으켜 유죄판결을 받고 형사적 문제로 감옥생활을 하게 되면 5년 이상 입국이 금지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모국에서의 사법적 문제로 인해 미국 입국도 어려울 가능성이 높았다. AI로 알아보니 미국은 입국심사 때 국제사법공조를 통해 얻은 데이터베이스로 지문을 체크한다는 것이다.


A는 미국에서 열리는 코첼라 페스티벌에 가고 싶었지만 모국에서의 일 때문에 수십시간 날아가 입국 거부를 당하는 일을 겪고 싶지 않기도 했다. 게다가 미국 입국 심사 전에 제출해야 하는 ESTA에 거짓말을 기재하면 영구 입국금지를 당하게 된다. A는 명실상부한 형사 범죄자였으므로 외국 특히 미국을 가는 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회사 사람이 얘기해줬다.


일본도 그런 문제에 있어서는 엄격했다. 모국과 일본은 형사 범죄와 관한 데이터베이스를 공유하지 안았지만 A가 저지른 범죄에 있어서는 특히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사전에 문제가 있을지 체크하려면 판결문 번역본을 공증받아야 하는데 수천만원을 가져간 모국 변호사를 다시 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해외 여행을 하기 위해서 수십만원 혹은 수백만원을 들여 변호사와 상담하고 번역하고 공증하는 절차를 거친다는 생각만 해도 A는 짜증이 났다.


우크라이나처럼 유럽이긴 하지만 EU에도 가입되 있지 않은 나라는 입국심사가 느슨했다. 동남아처럼 범죄 소굴인 나라들도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입국에 대해 나이브한 태도를 보이곤 했다. 레딧에는 마약이나 음주운전과 같은 범죄로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들이 일본 입국이 가능한지 묻는 글들이 많았다.


A는 AI를 써서 수십차례 검색하며 생각해봤다. 미국은 좀 어렵겠지만 일본 정도는 그냥 거짓으로 입국심사서를 웹으로 작성하고 들어갔다 나와도 될 것 같다는 게 A의 결론이었다. 하지만 위험은 있고 꺼림칙하므로 당분간 일본 여행갈 생각은 없었다.


만약 해외여행, 오랫동안의 비행기 탑승 같은 게 증상의 트리거라면? A는 여행을 가기 전부터 증상이 있었지만 정말 심각한 증상이 나타난 건 모국이 여행을 간 후부터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분간, 3년에서 5년 동안은 해외 여행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A의 모국이나 마찬가지였다. A는 우크라이나에 오자마자 한국에 온 것처럼 안심이 됐다. 전쟁 탓에 불안정한 우크라이나의 행정처리 때문에 비자 문제 같은 건 생각하지 않아도 됐다. A는 우크라이나에서 불법 체류자 신분이었지만 게임 회사로부터는 페이팔로 돈을 받았고 트럼프 치하의 미국처럼 불법체류자를 잡아들이려고 혈안이 된 세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A는 우크라이나가 1차 대전 이전의 벨 에포크 시절 파리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미사일이 날아오긴 했지만 죽는 건 재수없는 사람이나 전투에 끌려간 젊은 사람들일 뿐이었다. 전쟁은 항상 전투가 벌어지는 곳이 뻔했다. 빼앗긴 마을을 또다시 빼앗는 백마고지 식의 전투가 계속됐다. 사람을 죽이는 건 숨어있는 사람이 조종하는 드론이었고 사람과 사람이 직접 교전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A는 전쟁이 일어나 수도가 불에 타도 결국 살아갈 사람들은 살아가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동백작이라고 불리는 이봉구가 그려낸 전후 한국의 한국문학계를 봐도 죽을 사람은 죽고 산 사람은 살았다. 그가 표현하지 않았던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전장에 끌려간 문학가들, 포로 수용소에 갇혔던 소설가, 시인들. 문학은 산 사람의 것이다. 죽은 사람은 새로운 글을 쓰지 못한다.


때문에 문학을 선택한 사람은 삶을 고른 사람이다. 죽자고 한다면 글 한편 더 쓸 여지가 없다. 삶인가 죽음인가. 그것은 고민할 이유가 없는 문제다. 항상 삶이다. 삶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남는 건 죽음이 아니라 무다. 죽음은 거대한 무로 이뤄져 있다. 죽음을 선택한 작가는 아무런 결과물도 내지 못한다.


오늘 하루 더 살아있다면 내일 또 무언가 쓸 수 있을 것이다. 과거를 돌이켜보며. 미래를 꿈꾸며. 그 결과물은 별볼일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언가를 쓰는 순간, 삶을 선택한 순간 뭔가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것의 이름은 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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