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상이 발표된다. 이번 김수영 문학상은 어떤 여자가 받았다. 작년에도 어떤 여자가 받았던 것 같다. 그 전해에도. 그 전해에도. 사진을 보니 예쁘다. 갈수록 사진을 예쁘게 찍는 기술이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틱톡을 보면 보통 여자들도 예쁘게 나오는 법을 알고 있다. 틱톡의 필터 소프트웨어 기술이 상당히 정교해졌기 때문이다.
하물며 사진 전문가들이란.
시대가 지나면서 프로필 사진 찍는 트렌드도 바뀌었다. 내가 취직이 잘 안되는 것은 증명사진이 너무 오래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떤 회사는 대놓고 증명사진이 구리다고 했다. 하지만 사진을 이력서에 첨부하는 것은 의무가 아닌 것이 글로벌 트렌드다. 글로벌 트렌드도 모르면서 콘텐츠를 만든다고 떠들어 대다니.
별볼일 없는 회사일수록 별볼일 없는 것들에 집중한다. 어떤 스타트업에 다녔을 때는 '생리대'라는 단어를 썼다고 해서 문제가 됐다. '생리대'라는 단어에 무슨 죄라도 있는 것처럼. 시거렛 애프터 섹스라는 밴드 이름을 사용했다고 논란이 됐다. 우리 회사보다 더 유명한 밴드인데 무슨 죄가 있다고.
섹후땡 안 해봤냐.
나는 담배를 피지 않는다. 섹스도 해본 적이 없다. 사실 해봤다. 섹스하고 담배는 피지 않는다.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지엽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생리대니, 시거렛 애프터 섹스니, 증명사진의 최신 흐름 따위 같은 것들은.
문학상을 계속해서 필터를 쓴 프로필 사진을 내놓는 여자들이 타는 것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중에 작가와의 대화에 참여하지 않으면 될 일이다.
얼굴이 어떻다고 해서 음악을 잘하는 것도 아닌데 인디 뮤지션들도 자신의 얼굴 이미지에 과도한 신경을 쓰는 것 같다. 어차피 라이브를 보면 다 결판이 나는 문제인데. 스포티파이 프로필 사진도 일종의 감성이라고 봐서 그걸로 들어야 할 음악을 결정하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문제는 사진이 아니라 음악이나 문학인데. 굳이 당선자의 사진을 공개해야 할까?
당선소감과 이름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사진을 굳이 공개하니 외모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성별은 보정된 사진을 내놓게 되는 것 아닐까. 남자라고 해서 못 나온 사진을 공개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진에 온갖 필터를 적용해 찍는 것은 '외모 정병'에 속하는 일 같다.
'외모 정병'이란 외모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정신병 증세를 보인다는 신조어다. 정신병은 사회적인 문제이기도 하니 실제로 외모 정병에 걸린 사람도 적지 않을 것 같다. 동성애도 과거에는 정신병으로 분류됐지만 지금은 정신병이 아니다. 사회적 기준에 따라 병이 되기도 하고 안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동성애자들에게 약을 처방했을 텐데 무슨 약을 줬을까.
내가 보기에는 여기까지 오면 바로 '정병' 근처까지 온 것이다. 정신병을 가진 사람 중에는 자신이 무슨 약을 먹는지 타인이 무슨 약을 먹는지 의사가 어떤 약을 처방해주는지 광적으로 신경쓰는 사람이 많다. 무슨 계열, 무슨 계열하면서 어떤 약이 위험하고 어떤 약이 더 효과가 있는지 외우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약의 전문가는 약사나 의사이지 환자가 아니다. 환자가 아무리 약에 대해서 알려고 해도 그 이해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A는 이러한 논리로 자신이 먹고 있는 약에 대해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모국 감옥에 있을 때 먹어야 할 약이름을 대지 못해서 상당히 곤란한 일을 겪었다. A에게 약을 처방해주기 위해서 A의 부모는 A가 다니던 정신과에 가서 약 이름을 영어로 받아야 했고. A가 다니던 정신과의 의사는 분명히 대학을 나왔을 텐데 그 작업에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 바람에 A의 부모가 온갖 고생을 해야 했다.
나이가 상당히 많았던 의사였던 것이다. A는 가끔 예전에 다녔던 정신과 의사가 컴퓨터로 약 이름을 약 관련 사이트에 쳐서 처방을 확인하는 걸 목격하기도 했다. 지금 다니는 종합병원 의사는 모니터를 보여주지 않기도 하지만 굉장히 빠르게 처방을 한다. 그게 실력인가? 라는 생각을 A는 했다. 정신과 의사의 실력은 결국 처방에 있다. 약 이름을 잘 알고 평소에도 확인을 잘 해서 처방해주면 실력있는 의사다.
예전에 A는 틱톡에서 정신과 간호사를 팔로우해서 방송을 본 적이 있다. 그 간호사에게 정신과 의사라는 직종에 있어서도 명의가 있느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간호사는 당연히 정신과에도 명의가 있다며 딱 맞는 약으로 적절하게 처방을 해줘서 약에 헤롱헤롱대지 않고 증상이 해결되면 명의라고 했다. A는 그 말을 곰곰히 곱씹어봤고 과연 처방을 어떻게 하는지가 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방을 잘 못하는 의사의 경우에는 약기운으로 환자를 녹다운시킬 것이다. 모국의 감옥에서는 아무리 A가 잠이 잘 오지 않는다고 해도 약을 쉽게 주려고 하지 않았다. 일단 처방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영어로 된. 한국의 나이든 의사는 영어로 된 처방전을 쓰기 어려워할 수도 있다. 생활 상식. 차원에서 알아야 할 이야기.
뭐. 모국까지 가서 증상이 나타나 감옥에 끌려갈 일이. 해당 국가에서 3~4년에 1번 정도도 일어나지 않는 이상한 일이긴 하지만. A는 그 이후로 혼자서 해외 여행을 가지 않았다. 왜 혼자서 여행을 가는 게 위험한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국의 정신과 의사가 정신 상태가 이상할 경우에는 멀리 여행하지 말라고도 했고.
하지만 정신 상태가 이상할 경우에는 정상적인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그러니까 모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탄 것이다.
애초에 약이 제대로 효과가 있고 증상이 없었다면 모국에 가서도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우로보로스다. 자신의 꼬리를 깨물고 있는 뱀 말이다. 모국에 간 건 잘못이 없다. 잘못이 있다면 아무런 효과가 없는 약을 먹고 있던 A가 문제였다. 그리고 A에게 약을 처방해준 정신과 의사가 잘못이었다.
A는 모국에서 풀려나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정신과 의사를 만났고 그가 아무런 반성을 하지 않는 걸 봤지만 다른 정신과에 처음부터 가서 다시 모든 증상을 털어놓기란 매우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그대로 같은 약을 먹었다. 물론 이번에 발생한 증상에 대한 약이 추가됐긴 했지만 말이다.
분명히 이 정신과 의사도 대학을 나왔을 것이고 의과대학에서 정신과와 관련된 수련을 받았을 텐데. 어째서 이 정신과 의사는 아무런 효과가 없는 약을 A에게 줬던 것일까. 정신과 의사 탓을 하기는 쉽다. 애초에 정신과 의사는 A가 하는 말만을 듣고 약을 내줄 뿐이다. 거의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필요없는 약을 계속 먹고 있던 A의 잘못이 없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정신과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약에 대해 광분을 하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의사는 A의 문제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안 지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증상에 맞는 약이라고 생각하는 처방을 해줄 뿐이고. 그게 효과가 있다면 좋은 것이고 없다면 안타깝지만 의사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게 한국 병원이었다. A는 어떻게 해서 약이 효과가 있는지 판단하는지 정신과 의사의 사고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의사가 분명히 A보다는 똑똑할 텐데. 의사 중에도 어리석은 사람이 있고 똑똑한 사람이 있다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최저 수준의 지성이 필요한 직업이 아닐까. 작가처럼 여러 사람이 읽어보고 말이 되는지 안되는지 판단을 하는 직업이야말로 따지고 보면 가장 높은 수준의 지성이 요구되는 일인 것 같다. 어쩌면 의사보다 더. 의사는 엉터리 약을 처방하고 잊어버리면 그만이지만 소설가나 시인은 엉터리 작품을 쓰면 바로 잊혀지거나 데뷔도 못하게 된다.
사람들이 문학을 하는 사람에게 요구하는 최저 수준의 지성이란 의사보다 높은 것인지 낮은 것인지 A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문학을 잘못 읽어서 감옥에 갇히는 경우는 없으니 의사보다는 더 나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