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비누 공유 연맹 55

by 인디캣

수감생활에서 A가 가장 어려웠던 점은 약을 받을 때였다.


병원-감옥에 있을 때는 직접 거실로 교도관이 찾아와 약을 차례대로 나눠줬다. 구치소에 있을 때는 꼭 약을 나눠주는 방에 한데 모여서 받아야 했다. 수십명의 미결수들이 때가 되면 불려가 한 방에 모였는데 각기 병은 다르겠지만 약을 주고 꼭 입 안을 확인하는 절차만은 같았다. 약을 받으면 반드시 바로 먹어야 했고 실제로 먹었는지 입안을 이리저리 교도관이 확인했다.


A는 도대체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죄수에게 물어봤지만 실리하다는, 어리석다는 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모국의 사법체계는 전체적으로 실리했다. 매번 같은 죄수들이 저녁마다 약을 받기 위해 모이다 보니 그들끼리 친분이 생겨서 왁자지껄한 상황이기도 했고 담배를 피워대서 매캐한 연기 속에서 약을 받기를 기다려야 했다.


모국의 죄수들은 하나같이 머리 모양이 근사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90년대 느와르 영화에 나오는 단역 악당들 같았다. 그러고보니 구치소에서 나눠주는 무료 용품 중에 빗도 있다. 굳이 빗을 나눠준다는 것만 봐도 모국인들이 얼마나 근사한 머리 모양에 신경 쓰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A는 전혀 머리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매일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긴 하지만 빗으로 정리하지 않은 머리는 제멋대로 삐쳐있기 일쑤였다. 수염도 깎지 않았다. 때가 되면 전기 면도기가 수인들 사이를 한바퀴 돌긴 하지만 수염을 깎지 않는 편이 더 '있어' 보인다는 A의 생각이었다. 후에 법정에서 부모를 만나게 되는 A는 머리 모양을 관리하지 않은 것과 수염을 깎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낯선 외국에서 그것도 엄정한 법정에서 아들을 봐야 하는 부모의 심정이 얼마나 찢어졌겠는가. 게다가 머리도 산발이고 수염도 한달 동안 깎지 않아서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으니. A는 그제야 미결수들이 왜 외모에 신경을 쓰는지 알게 됐다. 곧 법정에 불려갈 텐데 거기서 깔끔한 모습으로 있고 싶은 것이다.


외모를 깔끔하게 유지한다고 해서 죄가 줄어들거나 형량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어딜 가나 '먹어주고' 가는 요소이긴 하다. 만약 A가 또다시 수감된다면 그때는 최대한 깔끔하게 외모를 유지할 생각이었다. 물론 그런 일이 없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말이다.

심지어 심리상담사와 만났을 때도 A는 머리가 산발인 점을 지적받았다. 머리모양은 심리상태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지도 모른다. A는 산발인 상태를 통해서 자신이 현재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는 점을 어필하려고 했다. A는 모든 것이 다 억울했고 정신적 문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감생활을 해야 한다는 데 분통이 터졌다. 하지만 죄를 저지른 것은 사실이고 결국 이 문제는 A가 온전히 감당해야 할 것이었다.


A가 머물렀던 감옥-병원에는 아주 나이가 많아서 치매끼가 있거나 제대로 걷지 못하는 노인 죄수들도 많이 있었다. A는 그 사실을 변호사를 만나러 가는 길에 알게됐다. A를 접견실로 데려가던 교도관이 무슨 생각이었는지 노인 죄수도 함께 이동을 시켰다. 그리고 교도관은 A에게 노인 죄수를 보살피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완전히 뜬금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A는 연신 왓? 왓?을 연발했다.


교도관은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냐며, 이런 식으로 교도소를 들락날락거리지 않냐는 뉘앙스로 얘기를 했다. 화가 난 A는 항의하고 싶었지만 제대로 의사 표현을 할 수 없었다. A와 교도관 둘 다 영어가 짧았기 때문이다. A는 겨우 자신을 저지하지 마라며, 판단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었다. 아무튼 이 사건으로 인해 A는 모국의 사법 체계가 정말 얄짤이 없다는 것, 치매가 올 때까지 혹은 걷지 못할 때까지 죄수를 감옥에 넣어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공포스러운 일이었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은. 물론 A가 저지른 죄가 노인이 될 때까지 감옥에 있어야 하는 건 아니었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A는 두려웠다.


병원-감옥에서 운동 시간에 교도관들에게 항의를 해봤지만 A의 영어로는 누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서 전달하기가 어려웠다. 기자나 시민단체 활동가 정도로 보이는 젊은이가 다가와서 가서 농구나 하라는 말을 할 뿐이었다. 도대체 그 젊은이는 누구였을까. A는 아직도 궁금했다. 갑작스럽게 교도관이 불러온 제3자인데다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A는 그 젊은이가 병원-감옥에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만약 어떤 인권단체 소속이라서 병원-감옥의 인권을 개선시키려고 왔다면 농구나 하라는 말 말고 더 도움이 되는 일을 해줬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게 아니라면 도대체 그 젊은이는 왜 거기에 있었던 건지 A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교도관이 불만을 제기한 A 때문에 불러온 이유도 불명이었다.


A는 내게 자신의 글이 재미있는지 물었다. 나는 초반에는 재미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별로라고 답해주었다. A는 꾸준히 글을 쓰는 직업을 가져왔지만 그런 일을 해서 오래 한곳에 머무른 적이 없었다. 메뚜기처럼 몇개월 단위로 뛰어다니기 바빴다. A는 정말로 자신이 글을 쓰는 재주가 있다면 직업인으로서도 인정을 받았을 거라면서 아무래도 글을 쓰는 재주가 없는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나는 A가 인지적 위기를 겪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런 위기를 겪은 후에는 기능적으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기능적이라는 말은 사회적인 기능, 일을 해서 돈을 받는 사회인으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느냐를 말한다. 그런 차원에서 A는 제대로 기능하고 있지 못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온갖 별볼일 없는 직장을 전전했고 그마저도 제대로 다니질 못해서 지금은 우크라이나에서 소일거리를 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게임 회사에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면 A는 이곳에서 마약 딜러를 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약 딜러는 큰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는 돈을 벌 수 있었다. A는 감옥에 있을 때 마약 딜러 둘을 만났다. 둘 다 사교적인 호인으로 각기 당뇨와 환청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 말고는 큰 문제가 없어보였다.


환청을 듣는 마약 딜러는 우크라이나 태생으로 어렸을 적에 모국에 와 소년교도소를 들락거린 '진짜 OG'였다. 이빨이 빠진 홍콩인이 우크라이나 마약 딜러야말로 모국 감옥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안다고 말해주었다. 안타깝게도 그 우크라이나인은 감옥에 오지 않는 방법 말고는 감옥에 관해서 정말 많은 걸 알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동전 비누 공유 연맹 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