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를 다녀오며

예수님께 안약을 사서 바르자

by YOSEBI

우리 교회에 다니는 한 성도님은 백내장 수술 후에 눈이 불편하여 점검과 치료를 위해 정기적으로 안과를 다닌다. 홀로 사시며 시력저하로 생활에 어려움을 호소하였기에 1시간 거리에 있는 안과까지 내가 운행해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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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안과여서 그런지, 항상 사람이 꽉 차있었다. 모두가 눈이 불편해서 왔으리라..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눈은 우리의 감각기관 중 핵심이 되는 신체이다. 전체 감각정보의 약 80%를 담당하는데 환경 인식, 물체 식별, 공간 판단 등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하고 있다.


나도 두 눈의 시력이 나쁜 편이었다. 양쪽 눈 시력의 차이가 있긴 했지만 안경을 맞출 때, 좀 더 안좋은 쪽 렌즈도수는 -7 대 정도 되었다. 이는 예상시력 0.04에 해당되는 시력이다.


어릴 적 기억을 되짚어보면, 목욕탕에 가서 안경을 벗고 돌아다니면 일행을 알아볼 수 없없다. 왜냐하면 모두가 다 계란귀신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여튼 나쁜 시력을 유전으로 받았나보다.


이것이 불편하여 나도 20대 초반에 라섹수술을 했다. 노년에 어떤 수술 부작용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모르겠다. 난 젊을 때의 편한 것을 선택했다. 그렇게 30대인 지금까지 별 문제 없이 예전에 비하면 천국을 맛보며 살고 있다.


세상을 인식하고 행동하게 도와주는 신체의 핵심 감각기관인 눈이 건강해야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눈의 건강을 위해 정기적이고 적극적인 관리를 해야 한다.


이는 영적인 눈도 마찬가지이다. 영적인 세상을 인지하고 행동하는 일은 영적인 눈이 건강해야 가능하다.


성경은 우리 인간은 영적인 눈(영안, 마음의 눈)이 있음을 가르쳐준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마6:22-23)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1:18-19)


위 성경 말씀처럼 우리들에겐 저마다 영적인 눈을 가지고 있는데, 그 영적인 눈이 건강하게 되면 육체의 눈을 넘어, 하나님,진리,영적 세계를 바라보고 분별할 수 있는 영적 분별력과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열왕기하 6장에는 영적인 눈을 가져 영적 세계를 볼 수 있었던 엘리사에 대하여 재미있는 일을 기록하고 있다. 때는 아람 왕(시리아 왕)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던 때였다. 기습 공격을 하는 등 치밀한 작전 명령을 내렸지만 매번 이스라엘은 이미 알고 있었듯이 기습을 방어한다. 아람 왕은 우리 중에 내통하는 자가 있는가 싶었지만 사실은 엘리사가 은밀한 것까지 알아 이스라엘 왕에게 고했던 것이다. 이에 아람 왕은 엘리사를 잡아오라는 명령을 한다. 그렇게 기마부대와 병거부대로 엘리사가 거주하고 있는 성을 포위한다.

이때 엘리사의 제자 하나가 아침에 일어나 밖에 나갔다가 포위된 것을 보고 엘리사에게 보고한다. 이때 엘리사는 이런 말을 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왕하6:16)

제자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눈을 다시 씻고 보아도 적수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이에 엘리사는 제자의 영적인 눈을 뜰 수 있게 기도한다. 그러자 제자의 영안이 밝아져서 산에 불말과 불병거가 가득히 둘러 진치고 있음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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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역사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오늘날 우리의 영안을 밝혀줄 엘리사는 누구일까?', '나도 엘리사의 제자처럼, 어두워져 있는 영안이 밝아지고 싶다'라는 생각이었다.


세상을 바라보면 죄악이 너무도 관영하게 되어 이것과 맞설 일꾼과 힘이 교회에 부족함을 보게 된다. 특히 목회를 하다보면 이런 연약한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교회는 점점 고령화되어 가고 있지, 다음 세대는 약해져가고 있지, 그래서 교회의 미래가 암담하지.. 마치 우리 교회들과 우리의 자녀들이 사탄의 군대에 완전히 포위되어 잡아먹힐 것만 같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또 주님은 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져야 비로소 오신다고 하지 않으셨는가? 죄악으로 포위된 오늘날 기독교를 볼 때, 예수님은 정말 재림하시겠다는 것인가? 안오시겠다는 것인가? 답답할 때가 있다.


이런 때에 주님은 나에게 한 제안을 주신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3:18)


여기서 말하는 안약은 영적으로 눈먼 상태를 치료하기 위한 하늘의 치료제를 말한다. 그 목적은 다음 성경절에 나오듯 나 자신의 참 상태를 보게 하는 회개에 있는 것이다.

이 말씀으로 비추어보면, 문제는 세상이나 교회 주변의 어떤 상황들과 같은 외부적인 요소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면, 교회와 성도들의 마음의 상태가 더욱 중요한 것임을 보게 된다.


오늘날 목사와 성도들에게 이 안약이 필요하다. 하루 빨리 이 안약을 발라 죄를 죄로, 의를 의라고 할 수 있는 영적인 식별력을 갖춰야 할 것이다. 죄의 성경적 의미는 '과녁을 빗맞추다', '과녁을 벗어나다'이다. 여기서 말하는 과녁은 하나님의 속성이자 품성이다. 하나님의 속성과 품성이 아닌 것은 다 죄인 것이다. 내가 죄를 죄로 여길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엘렌G화잇이 쓴 [교육]이라는 책에는 이런 말이 있다.


인류의 가장 큰 결핍은 인물의 부족이다. 그 인물이란 매매되지 않는 사람, 심령이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 죄를 그대로 죄라고 부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마치 나침반의 바늘이 틀림없이 남북을 가리키듯이 양심이 그 의무에 충실한 사람, 비록 하늘이 무너질지라도 옳은 일을 위하여 굳게 서는 그런 사람들이다. 이런 품성은 우연히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무슨 특별한 은혜나 천분 (天分) 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고상한 품성은 극기와, 저급한 성품을 버리고 고매한 성품을 가지려는 노력의 결과, 곧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의 봉사를 하기 위해 자아를 내어 맡기는 자기 수련의 결과이다.(교육,57)


여기에 나오듯, 죄를 죄라고 할 수 있는 힘은 우연히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고상한 품성은 성령의 지도하심에 따라 극기와 훈련, 수련을 한 결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많은 성경의 인물들도 이런 시간을 반드시 거친 후 하나님께 사용됨; 모세,다윗 등)


사실,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교훈하고 있는 계3:18에서도 이에 대해 분명히 말하고 있다. 안약을 "사라"고 말이다. 성경은 구원을 값없이 주시는 것으로 말씀한다(롬3:24,사55:1). 그렇다면 여기서 "사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곰곰히 묵상해보면 "사라"는 말은 행위적 신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이야기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사는 행위"는 사람 편에서의 선택과 노력과 결단을 나타내는데 구속 사업은 하나님과 이러한 사람의 협력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 맞다. 우리 모두는 100% 하나님의 은혜로써만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울과 유다의 인생처럼 죄는 믿는자들로 다시금 구원을 잃게 할 수도 있음 또한 기억해야 한다. 오늘날 기독교는 이 사실을 망각한 채 너무도 죄에 대하여 둔감하고 책임이 없는 것 같다. 목회자인 나도 마찬가지이다. 누가 보지 않더라도, 누가 뭐라하여도 죄를 죄로 여길 줄 알고 의를 구할 줄 아는 지도자와 성도들이 오늘날 더욱 필요한 것이다.


우리 모두 "열심을 내어 회개하자"

이것이 어두운 영안을 밝혀주는 안약이며, 이것을 발라야만 아람 군대를 에워싸고 있는 수많은 천사들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발라야만 이 시대의 교회들을 돕고 계신 능력의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한 줄기의 빛이라 할지라도 어둠 속에선 결코 감출 수 없는 큰 힘과 파장을 즉각 가져온다. 즉, 참된 회개와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한 사람을 통하여 어두운 세상에는 빛이 강력히 비춰지는 것이다. 아무리 부족한 리더이며 작은 교회일지라도 회개를 이루며 사는 공동체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싸우는 군대가 되는 것이다. 이런 그리스도인 개인과 교회가 점차 늘어나게 되면 구원의 빛은 세상에 급속히 확산될 것이며 주의 재림을 앞당기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 시작은 바로 변화된 "나"로부터이다.


이러한 회개의 안약은 오직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예수님께 나아가 안약을 사자. 그리하여 늘 십자가에 나타난 당신의 사랑과 지금도 나를 위하여 중보하시는 예수님을 의지하여 회개하는 생애를 이루자.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계명에 나타난 하나님의 품성을 배우며 증거하는 삶을 살아보자.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내 삶의 이유와 목적이 복음을 전하는데에 있음을 분명히 하여 먹고 사는 일보다 타인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면서 복음을 전하는데 전념하는 목사와 성도, 교회가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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