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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성근 May 21. 2020

도둑질을 가르쳐 주마!

아빠 인문학

서재를 가진 모든 사람들은 죄책감을 느낀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먼지 쌓인 책장을 보면서 한숨을 쉬지. 책들이 원망하는 소리가 들리는구나. 읽지도 못할 거면서 왜 샀느냐고, 다른 이의 책장에 꽂혔다면 예쁘게 밑줄도 그어 주고 형광펜 채색도 해 주고 그랬을 텐데, 왜 빳빳한 새 책으로 세월의 먼지만 뒤집어 쓰게 만들었느냐고. 행복하게 해 주지도 못할 거면서 왜 결혼했느냐고 묻는 사람 같다. 하얀 서릿발의 냉기를 맞으며 썩어가는 냉장고 속 음식처럼 책은 누렇게 떠서 죽은 사람을 닮았다. 너도 가끔 내 서재에 들어와 “아빠, 이 책들 다 읽었어?” 하고 묻지. 그럴 때마다 나는 뜨거운 불에 덴 것처럼 움찔한다. 오늘은 읽지 못한 책들에 대해 변명 하려 한다. 


‘책은 지식을 담는 그릇이다.’ 

어느 서점에 가니 그런 말을 붙여 놨더구나. 멋진 사발 그림과 함께. 책 속에 지식이 담겨 있으니 가져 가서 먹어라, 그런 말이겠지. 그렇다면 배가 불러서 더 못 먹을 수도 있겠고, 소화가 안 되거나 배탈이 날 수도 있겠다. 비유가 적절치 않은 것 같다. 말을 바꿔 보자. 


책은 지식의 육체다. (이건 내가 만든 말이다. 멋지지?) 

너의 인격이 네 몸 속에 들어 있는 것과 같이 지식은 책이라는 몸 안에 들어 있다. 하나의 몸은 하나의 인격을 담는다. 만약 어떤 사람이 두 개의 인격을 몸 안에 갖고 있다면 그는 심각하게 미친 사람이다. 한 번은 이 사람의 목소리로 말하고 또 한 번은 저 사람의 목소리로 지껄이겠지. 상상해 봐라. 정말 무섭다. 귀신 들린 사람처럼. 



책은 딱 하나의 영혼을 갖는다. 물론 수백 페이지의 종이를 묶어 놓은 책에는 많은 단어와 문장이 들어 있지만 결국 그 글자들이 모여서 하나의 영혼을 이룬다. 1경 개의 세포가 모여 우리의 몸을 구성하지만 세포들은 따로 놀지 않는다. 세포 각각은 전혀 인격이 없다. 하지만 그 세포들이 지속적으로 화학 물질을 교환하고 생체 전기를 만들어 내면 하나의 육체는 아주 멋진 한 사람의 인격을 형성하게 되지. 책도 그렇다. 수십만 개의 단어들이 모여 의미를 빚어 내고, 감동을 주고, 사람의 마음을 뒤흔든다. 


책 속에 담긴 그 영혼은 책을 쓴 저자의 혼은 아니다. 그의 일부일 수는 있겠지만 결코 저자의 영혼 그 자체는 아니다. 너의 몸이 아빠・엄마 몸의 아주 작은 일부에서 출발했지만 네가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인 것과 마찬가지로, 책은 그 책을 지은 누구누구에게서 비롯되었겠지만 그 책을 지은 사람과 별개로 존재한다. 


사람들은 왜 책을 사서 모을까? 앞선 비유를 따르자면 책을 사 모으는 행위는 일종의 납치로 볼 수 있다. 좀 섬뜩한 말이다. 하지만 진실이다. 서점에 진열된 무수한 책들을 보거라. 그것들은 모두 자신의 혼을 갖고 있다. 녀석들을 부리면 많은 이득을 보지. 비밀을 털어 놓고, 비법을 알려 주고, 내가 미처 경험하지 못했거나 가 보지 못한 세상의 일을 낱낱이 실토한다. 어떤 녀석들은 신기한 재주를 갖고 있다. 사람을 웃기거나 울게 만든다. 가슴 깊이 찌르는 창과 같이, 죽어도 잊지 못할 말의 비수를 가슴에 꽂아 이쪽저쪽으로 후벼 댄다. 어디서 그런 재주를 배웠는지, 세상의 모든 신기한 물건의 사용법을 알려 주기도 한다. 


개중에는 아주 비밀스런 진실을 품은 놈들이 있다. 덩치 큰 뒷골목 어깨들 같이 떡 벌어진 두께로 사람을 기 죽게 만드는 하드 커버 양장본 책을 너도 본 적 있겠지. 이놈들은 웬만해선 진실을 불지 않는다. 그걸 알아내기만 하면 크게 한 몫 챙길 수 있는데도 놈들은 지독하게 버티지. 한 십 년 정도 시간을 투자해서 녀석을 못살게 굴면 언젠가는 ‘진실’을 토해낼 지도 모른다. 그러면 꽤 큰 비밀을 알게 되지. 두께 때문에 불평하지 말거라. 아무리 두꺼운 책도 1페이부터 시작하니까. 초판본 출간 연도를 보고 놀랄 수도 있겠다. 삼사백 년이 넘은 책들도 있다. 생각해 보니 2,500년 된 책들도 있구나. 그럴 때는 무한한 시간을 품고 지루하게 회전하는 나선 은하에 대해 묵상하는 것도 좋겠다. 은하의 차원에서 2,500년은 거의 동시대라고 봐야 한다. 



아차, 깜빡했구나. 왜 다 읽지도 못하면서 책을 그렇게 집요하게 사 모았느냐, 그 이유를 말하고 있었지. 네가 만약 죽을 때까지 읽지 않을 책을 갖게 됐다면 넌 무엇을 얻은 걸까? 육면체로 된 또 한 권의 먼지 기둥일까? 아니다. 너는 하나의 족보를 얻은 것이다. 단지 그 책의 제목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는 하나의 시대, 하나의 획을 그었던 주장을 짐작할 수 있다. 일단 그 책을 갖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지식의 족보와 계보를 짐작하게 된다. “음, 그래. 이 책이 있었지. 이 책 다음에 저 책이 나왔고, 그 다음에 앞의 책을 모두 뒤집어 엎는 종합판이 나왔어.” 그러니 너는 완벽한 도둑질을 위해 탐정이 될 필요가 있다. 어떤 책이 어느 저자를 어떤 식으로 죽였는지, 꼼꼼히 조사하면서 뒤를 캐어 보거라. 그렇게 하나 둘 족보를 조사하다 보면 너는 네 생각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비밀스런 지식의 계보를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 도둑질을 가르치는 애비의 심정으로 말하고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식을 얻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족보를 파악하는 일이다. 좀도둑은 낯선 집의 담을 넘지만, 큰 도둑은 아는 집을 노린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한심한 좀도둑이 되지 않기 위해 너는 지식의 세계라는 지도를 알아야 한다. 


교묘하게 나꿔 채거라. 네 것이 아닌 지식도 네 것처럼 말해라. 네게 대단한 지식과 정보가 있다고 허세를 부리는 것도 좋다. 그러면 너는 그 얄팍한 지식의 양동이를 채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게 될 테니까. 


이것이 내 먼지 쌓인 서재의 사연이다. 사 놓고 읽지 못한 책들의 영혼이 유령처럼 부유하는 서재에 앉아 내가 매일 밤 회개하는 이유다. 겨우 지식의 좀도둑으로 연명했던 내 초라한 글쓰기의 과제를 미련한 소처럼 되새김질 하는 것이다. 


아들아, 딸아, 너희는 도둑이 되지 말거라. 너는 너의 영혼을 가진, 행복한 지식인이 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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