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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성근 May 29. 2020

시대를 앞서 간 모험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

미국 현대 문학의 아버지, 마크 트웨인


“미국의 모든 현대 문학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으로부터 나왔다. 그 전에는 아무 것도 없었고, 그 후로도 없었다.” <노인과 바다>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남긴 말입니다. 그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인은 마크 트웨인을 미국 현대 문학의 아버지로 부릅니다. 마크 트웨인의 본명은 새뮤얼 랭혼 클레먼스. ‘마크 트웨인’은 그가 사용한 필명이었는데 미시시피 강의 물 깊이를 재는 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합니다. 1835년 미국 남부의 미시시피 강 근처에서 태어나 1910년 4월 21일, 75세를 일기로 사망했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 외에도 <톰 소여의 모험>, <왕자와 거지> 등이 있습니다. 


그가 스물여섯 살 되던 해에 남북 전쟁(1861 ~ 1865년)이 일어납니다. 이 전쟁은 노예 제도의 폐지를 둘러싸고 일어난 전쟁이지만 실제로는 남북 간 경제적 격차, 미국 내부의 정치적 분열 때문에 발생한 내전입니다. 링컨 대통령은 미국의 통일과 번영을 위해서라면 노예제를 유지할 수 있다고 몇번이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노예제는 당시의 정치경제적 상황에 부합하지 않았죠. 전쟁은 결국 북부군의 승리로 끝났고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수정 헌법을 만들면서 흑인 노예제는 (공식적으로는) 폐지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노예의 문화’가 사라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마크 트웨인이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발표한 시기는 1884년, 남북 전쟁이 끝난 지 20여 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그런데도 소설에서는 흑인이 여전히 인신매매의 대상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헉의 다정한 벗 짐은 도망친 노예입니다. 미시시피 강 주변의 어느 지역을 가든지 짐은 백인을 두려워합니다. 사실 흑인들의 인권 문제는 20세기까지도 큰 사회 문제로 남아 있었습니다. 2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흑인의 차별 문제는 (상징적으로) 많이 해소되었습니다.



와일드 미시시피 


마크 트웨인은 주로 남북 전쟁 전후의 남부 지역을 무대로 하는 소설을 썼습니다. 특히 그의 고향이자 영혼의 안식처였던 미시시피 강을 배경으로 합니다. 전체 길이는 6,270 km, 미국에서 두 번째, 세계에서 네 번째로 긴 강인 미시시피 강은 미국 대륙의 중부 평원지대를 가로질러 멕시코 만으로 흘러듭니다. 마크 트웨인이 살던 시절에는 이 강을 오르내리는 증기선이나 뗏목들이 많았습니다. 마크 트웨인도 증기선의 기술자가 되어 배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강 주변에 형성된 마을은 독특한 문화를 갖고 있었습니다. 강을 타고 끊임없이 사람과 물자가 이동했습니다. 낯선 사람들, 떠돌이들, 범죄자들, 그리고 홍수로 집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미시시피 강의 물처럼 흘러넘쳤지요. 헉과 짐 역시 그런 떠돌이 생활을 합니다. 소설은 허클베리 핀의 유쾌한 목소리로 서술되었지만 이 두 인물은 당시 미국 사회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헉은 친아버지에게서 학대를 당하는 13세의 아동이고, 짐은 백인에게 붙잡히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도망친 노예입니다. 그들이 강의 타고 내려가면서 만난 사람들도 사기꾼에 좀도둑들입니다. 헉과 짐은 살인 사건의 현장을 목격하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기도 하면서 겨우 살아남습니다. 수차례 죽음의 위기를 만나지만 이들은 기가 막힌 꾀를 부려 위기에서 벗어납니다. 



버림받은 소년과 도망친 노예의 우정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무엇보다 빛나는 이야기는 헉과 짐의 우정입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가는 미시시피 강을 미국의 역사에 비유한다면, 그 험난한 여정을 헤쳐 나가는 헉과 짐은 미국인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크 트웨인은 언젠가 백인과 흑인이 친구가 되리라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두 사람의 여행, 모험, 우정은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로 남았습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언제나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 1위를 차지합니다. 


미시시피 강가에는 늘 거친 욕과 거짓말, 범죄와 폭력이 도사리고 있지만 그 모든 위기에서 두 사람을 구해 주는 것은 둘의 우정과 신뢰입니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유도 그것입니다. 우정과 신뢰,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그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소설의 두 주인공 헉과 짐은 요즘 기준으로 볼 때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먼저 소설의 주인공 허클베리 핀을 봅시다. 헉의 나이는 13세이지만 오늘날 아이들처럼 똑똑하지도 않고 별로 배운 것도 없습니다. 겨우 글자를 깨우쳐 읽는 정도입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헉이 나이보다 훨씬 어린 아이처럼 느껴지는 것은 헉의 어리숙한 말과 행동 때문입니다. 13세 정도면 사회 규범에 대한 이해를 어느 정도 갖추고 있습니다. 도둑질이 법률에 위배된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알 나이죠. 그런데도 헉은 도둑질을 ‘물건을 빌려가는 행동’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기꾼의 행동을 보고도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 사기꾼의 일을 거들어주기도 합니다. 이런 점을 미루어 짐작해 보면 헉은 8~9세 정도의 사고력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사춘기를 겪으며 반항을 할 나이에, 헉은 왜 여전히 어린 아이의 특징을 보이고 있을까요?


헉은 극심한 아동 학대를 겪었습니다. 친아버지에게 기절할 만큼 매를 맞았습니다. 술주정뱅이에 떠돌이인 헉의 아버지는 아이의 돈을 가로채려 하는 아주 나쁜 사람입니다. 그러니 정신적, 신체적 학대를 당한 헉이 제대로 자랄 수가 없었겠죠. 정서적으로 큰 상처를 입은 헉은 요즘으로 치면, 사고력 발달 장애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흑인 노예 짐 역시 문제가 있습니다. 짐은 무식하고 어리석을 뿐 아니라 미신과 주술에 빠진 한심한 사람입니다. 헉과 톰의 장난에도 쉽게 속아 넘어 갑니다. 짐은 겁도 많고 소심한 성격입니다. 문제를 만나면 숨거나 도망치기에 바쁩니다. 아주 무기력하여 자기 운명과 싸울 힘조차 없습니다. 



미국의 분열기에 나온 매우 위험한 소설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어리숙하고 바보 같은 아이와 힘없고 용기 없는 흑인 노예를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 둘을 미시시피 강의 험난한 여정 속으로 던져 넣습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헉과 짐을 가만 내버려두지 않지요. 여러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떠돌이 노동자들의 구슬픈 삶과 사연, 이유도 모른 체 서로를 미워하고 총으로 쏘아 죽이는 두 집안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 이 마을 저 마을로 쫓겨 다니면서 사기 행각을 벌이는 사기꾼들, 도망친 흑인을 잡으러 돌아다니는 백인들의 이야기가 그려집니다. 사람들은 거친 남부 지방의 사투리와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지껄여대지요. 


마크 트웨인은 이 두 주인공을 통해 미국 사회를 풍자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진 나라였지만 사랑의 정신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19세기의 미국은 필리핀을 식민지로 삼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었고 노예 제도도 여전했습니다. 짐은 가축처럼 여기저기 팔려다니는 게 두려워 도망을 칩니다. 


주인공 허클베리는 이 문제로 괴로워합니다. 법대로 하자면 도망친 노예인 짐을 신고해야 마땅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갈 테니까요. 하지만 짐은 마음이 따뜻하고 착한 친구였습니다. 헉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아껴주었지요. 고민 끝에 헉은 왓슨 아줌마에게 보낼 편지를 한 통 씁니다. 「아슬아슬한 고비였습니다. 나는 편지를 집어 손에 쥐었습니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둘 중에서 어느 하나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어느 쪽을 택할 것인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생각 끝에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좋아. 난 지옥으로 가겠어!” 그러고는 편지를 북북 찢어버렸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조각상. 흑인과 백인의 우정을 꿈꾸었던 킹 목사는 1968년 인종차별주의자가 쏜 총에 머리를 맞고 숨졌다. 워싱턴 D.C.



미국 문학의 위대한 전통을 세운 소설


이 통쾌한 장면은 소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멋지고 우아하고 아름답게 생긴 위선자들보다는 무식하고 나약하지만 참되고 선량한 사람의 편에 서겠다는 겁니다. 헉이 말한 지옥은 법과 교회의 가르침을 어겼을 때 받게 될 형벌을 말합니다. 헉은 그 형벌을 달게 받겠다고 선언합니다. 사고력 발달 장애를 가진 헉이 보기에도 짐과 같이 선량한 사람을 노예로 부리는 법은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문학의 전통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믿음을 품고 있지요. 마크 트웨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출판 이후 미국 국립도서관 금지 도서 목록에 오랫동안 올라 있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뼈아픈 진실을 품고 있는 훌륭한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인간을 편견 없이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따뜻한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의 동상. 미국, 미주리주, 한니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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