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지키는 시간
어렸을 때 영어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여러분, 하루 15분이면 인생을 바꿀 수 있어요!”
그의 말인즉슨 하루에 15분씩 영어 단어를 외우면 놀라운 성적 향상이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15분이면 1시간의 4분의 1이고 어린이 단편 만화영화 한 편을 방영하는 시간이고 아버지가 화장실에 들어가셨다가 나오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15분은 영어 단어를 스치듯 외웠을 때 약 20개를 건드릴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대체로 어른들의 말씀을 처음에만 잘 듣는, 착한 듯 보이는 아이였기 때문에 영어 선생님의 말씀을 약간 실천했다. 약간의 성적 향상이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15분 가지고는 ‘택도’ 없었다. 하루에 한 시간씩 외워도 부족할 판이었다. 그런데 커서 생각해 보니 15분은 꽤 유용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독서와 글쓰기를 가르친다. 수업 중에 아이들에게 독서의 동기부여를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데, 이 때 나는 ‘15분의 법칙’을 말한다.
“여러분, 15분에 할 수 있는 일에는 뭐가 있을까요? 그렇지. 밥 먹을 때 적당한 시간이 15분이에요. 똥 쌀 때는 15분이면 너무 길어요. 그건 한 방에 그냥 뿡야 하는 거고. 15분 동안 운동을 할 수 있어요. 줄넘기를 하면 아마 500개 정도는 거뜬히 할 수 있을 거고 달리기를 하면 1킬로미터는 달릴 수 있을 거예요. 그럼 책을 읽으면 15분 동안 몇 쪽을 읽을 수 있을까요?”
정답은 20쪽이다. 실은 그것보다 많이 읽을 수 있지만 천천히 읽는다고 가정했을 때 국판(A5) 20쪽 정도는 충분히 읽을 수 있다. 15분 독서 활동을 매일 한다고 가정하면 일주일에 140쪽을 읽는다. 초등학교 3~4학년 어린이 권장도서들의 쪽수가 150쪽이므로 일주일에 한 권 정도는 읽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청소년이나 어른들의 경우 이주일이면 300쪽 분량의 책 한 권을 읽을 수 있다. 한 달이면 두 권의 책을 읽게 된다.
실제로 아이들에게 쪽수 계산을 해 주면 150쪽 책을 보고 “벌 거 아니네?” 하는 반응을 끌어낼 수 있다. 하루에 너무 많은 분량을 읽으려 하면 어른들도 질린다. 내가 생각하기에 독서가 몸에 배지 않은 사람들이 읽기에 가장 적당한 시간이 15분이다. 왜냐하면 독서는 의외로 어려운 활동이기 때문이다. 독서를 하는 동안 우리는 자세를 바꿀 수 없다. 눈이 고정돼 있어야 하고 내용을 파악하면서 읽으려면 딴짓을 해서는 안 된다. 또 침대나 소파에서 독서를 한다면 15분쯤 지나면 잠이 온다. 잠들기 전까지 딱 15분 정도 걸리니까, 15분은 매우 경제적인 시간인 셈이다.
전자책이 처음 등장하여 시중에 퍼지기 시작한 2010년대에는 그런 우려가 있었다. 가까운 미래에는 종이책이 사라지고 전자책이 그 자리를 대신할 거리는 걱정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우리나라의 도서 시장 자체가 줄긴 했으나 (그건 책이 SNS와의 경쟁에서 밀려난 걸로 봐야 하고) 종이책은 여전히 건재하다. 나는 책이 사라지지 않은 이유가 그 질감에 있다고 본다. 종이책은 글자를 만나기 이전에 만나는 하나의 상품이다. 환하게 장식된 표지를 넘기면 그 속에 글자들이 숨어 있다. 마치 겉포장을 벗겨내 먹는 초콜릿 상자 같다 할까? 책은 품 안에 품을 수 있고 얼굴을 기대어 잠들 수도 있다. 인쇄 용지에 향수를 뿌리는 걸까? 책에서는 향기로운 냄새도 난다. 거기다 책은 나무로 만들어졌기에 인간에게 매우 친숙한 느낌을 준다.
하루 15분의 법칙은 다른 데도 유용하게 적용된다. 15분 동안 뭘 할 수 있을까? 편지를 쓸 수 있다. 이메일도 되고 종이 편지도 된다. 만약 만난 지 얼마 안 된 남녀분이 계신다면 지금 당장 하루 15분씩 편지를 쓰라고 권하고 싶다. 가급적이면 이메일이 아닌 종잇장 위에 편지를 쓰라고 말이다. 하루 한 통 씩 편지지에 쓴 편지를 받는다고 상상해 보라. 그 정성에 감복할 것은 물론이요, 하루, 이틀 쌓여가는 편지들은 그대로 특별한 기념물로 남는다. 그 추억들이 모여 마음이 되고 사랑이 된다.
하루 15분 동안 우리는 부모님과 지인들에게 연락을 할 수도 있다. 지나간 시절의 사진을 보면서 추억에 잠길 수도 있다. 심지어 가족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기에도 15분은 적당한 시간이다. 각자의 시간을 지키면서 가족들의 시간이 되기에 15분은 아담하다. 아까 말했듯이 가벼운 운동이나 산책을 하기에도 좋고(그러면 15분은 건강을 지키는 시간이 된다), 과일을 깎아 먹는데도 15분 정도면 적당하다.
하루 15분의 법칙은 시간을 분절하기도 하고 연속적으로 묶어 주기도 한다. 1시간을 네 개로 나누는 단위이니까 ‘1시간 동안 나는 네 가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자.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뭐든지 15분씩 하면 되니까 별로 지루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렇게 15분은 우리의 몸과 마음, 관계와 삶을 지키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여러분은 15분 속에 무얼 담고 싶은가? 무얼 하든 하루 15분이면 충분하다. 그 시간이 여러분을 지켜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