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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ㅇ Jan 10. 2016

그대의 빈틈

서울 택시_학동역

나는 그대의 

빈틈이 있었다면

사랑했을 것이다

사랑했을 것이다

어둠은 내려 앉는데

그대 들려줄

한줄 시도  못쓰고

기억속으로

차가운 안개비

안개비만 내린다


홑이불처럼

사각거리며

가슴 저미는

그리움 쌓이고

세상이 온통

시들었어도

깊고 고요한

그대 품에서

잠들었으면

잠시라도

잠들었으면


박정수, <그대 품에서 잠들었으면>, 1991


오래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흘러나온 옛날 노래를 듣다보면 가사의 아름다움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차라리 시라고 해도 좋을 노랫말들이 멜로디의 흐름과 어우러져, 그 자체로 완결적인 하나의 작품이 된다. 쾌적함과는 거리가 한참 먼 택시의 뒷자리에서, 잦은 브레이크로 끽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거의 멀미를 할 지경이다가도, 한순간에 깨끗하게 정화되는 순간이 있는데 바로 이 노래의 가사 중 '홑이불처럼 사각거리며' 라는 표현이 귀에 꽂혔을 때였다. 


노래의 전체 가사를 살펴보면 더욱 기가 막히다. '기억 속으로 차가운 안개비만 내린다' 에서도 한차례 놀라웠는데, 그대의 '빈틈'을 사랑의 필요조건으로 선언하고 있기까지.. 

내가 사랑에 빠진 순간은 항상 상대방의 빈틈과 맞닿아 있다. 얼음길에서 미끄덩 하며 중심을 못잡고 넘어질 뻔 하는 모습도, '진검승부'를 '진담승부'로 거듭, 게다가 확신에 찬 얼굴로 진지하게 말하는 것도, 멋대로 구겨진 셔츠의 소매도 나를 반하게 한 빈틈들이었다. 나 아니면 모를 것 같은 이 빈틈이, 적막한 우주를 유영하는 존재의 외로움을 달래줄 것만 같았다.  


애처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눈빛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잊어버릴 것이라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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