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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ㅇ Jan 10. 2016

행복의 계산법

11번 마을버스

"언니, 세상은 왜 이런 걸까요? 나는 맨날 독거노인, 사회복지, 이런 단어들과 씨름하다가 어제 오늘 너무 다른 세상을 만난 것 같아요.  오늘 하루 밥이랑 반찬을 넣어드리지 않으면 돌아가실 것만 같은 노인들이 많은데, 그 분들을 챙기느라 몸도 마음도 맨날 너덜너덜한데 어제는 상류층 체험에 오늘은 음악회에..여기 있는 사람들은 전부 럭셔리해보여요, 언니 저 오늘 진짜 즐거웠는데 기분은 이상하네요"

"뭐가 그렇게 복잡해, 아무 생각 하지 말고 그냥 즐겨! 그럼 되는거야"

"그렇긴 한데..."


지하철역까지 가는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줄에서였다. 내 뒤에 선 여자 두명이 나누는 대화를 엿들을 생각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계속 듣고 싶었다. 그녀의 어제와, 그녀의 눈에 비친 '럭셔리해 보이는 사람들'이란 어떤것인지 좀더 자세하게 펼쳐놓아 주었으면 했다. 슬며시 나 자신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로로피아나의 코트를 살 돈이면, 독거노인 100분이 일주일은 거뜬히 드실 아침밥을 마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긴 한데..."에 이어질 말은 아마도 이와 비슷한 계산에서 비롯되었겠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야속하게도 버스는 도착했고 줄지어 있던 인파는 불규칙하게 버스에 올라 각자의 공간을 찾아 흩어졌다. 


같은 음악회를 감상하고, 같은 마을버스를 탔지만 버스를 꽉 채운 모든 개별적인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일상과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알겠는데, 충분히 알겠는데, 괜히 울적했다. 타인의 기분, 타인의 삶 그뿐이야,라고 넘길 수도 있지만 마음 한켠이 쓸쓸했다. 적어도 마르쿠스 슈텐츠의 떡매같은 지휘봉 아래 알알이 으스러지던 말러 교향곡, 그 음표들에서 터져나오던 환희를 품고 이 버스에 올라탄 것은 같지 않은가, 라는 생각마저 나의 편협한 독선일지 모른다, 고 생각했다. 하긴, 같아봤자 얼마나 같고, 다른다 한들 무엇이 문제랴,에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나는 연주를 듣고, 회화를 감상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언젠가부터 물건을 사는 것보다 경험을 사는 것의 한계효용이 훨씬 덜 체감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 사람에 치이고 사회에 분노하며 뜨거워진 마음이 아예 화르르 녹아버리거나 삽시간 차갑게 굳어버리는 체험을 여러번 하고나서부터는, 감상에 쏟아붓는 시간과 돈이 그다지 아깝지 않았고 한계효용은 '덜 체감'에서 아예 나아가 '체증'의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예술을 향유하는 그 시간만은 오롯이 혼자만의 것이고, 그 안에서 천천히 천천히 부유하며, 어떤 시인의 표현처럼 '초 단위로 조용히 늙고 싶다'. 그렇지만 역설적이게도, 벅차 흘러넘치는 감동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는 열망은 감동이 클수록 더욱 강렬해진다. 너와 내가 한 공간에서 한 시간에 틀림없이 예술의 소나기를 같이 맞았다는 그것만으로 유대감이 쑥쑥 솟아난다. 혼자 즐기는 게 좋아 예술을 부지런히 쫓아다니지만 그러면서 그 감정을 공유하는 누군가를 찾는다. 그리고 '난 이런게 좋았어, 넌 어때?' '난 다른곳에 주목했어, 그 표현 정말 기가 막히지 않았니?' 라는 대화 속에는 예술이 준 환희 그 이상의 기쁨이 흐른다. 그 기쁨에는, 계산이 없고, 그렇기에 '다르다'는 것이 결코 비정하지 않다,


라고, 여자가 '언니'라고 불렀던 사람이 응수한 '그냥 즐겨 그럼 되는거야' 라는 말 속에 내 멋대로 각주를 달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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