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방콕 안 사는데 방콕 사는 이야기
실행
신고
라이킷
105
댓글
75
공유
닫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브런치스토리 시작하기
브런치스토리 홈
브런치스토리 나우
브런치스토리 책방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루미상지
Dec 09. 2024
나는 토요일 보라색
월요일엔 노랑
비행기에서 내린 여성 승무원들이 지나간다. 노랑, 주황, 보라색 블라우스에 검정 바지를 입었다. 연보라 블라우스에 진보라 스커트를 입은 직원들도 보인다.
‘우와, 뜨거운 나라여서 색감이 이렇게 열정적일까? 정말 과감하네.’
이런 승무원들의 옷은 지금까지 어느 곳에서도 본 적이 없다. 눈이 휘둥그래졌다.
호텔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 아침, 어젯밤 늦게 우리를 마중 나와준 프래우 교수가 호텔 로비로 왔다. 우리가 살 집은 지금 수리 중이어서 일주일 후에야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점심 먹으러 가는 길, 알록달록한 택시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노랑, 빨강, 파랑, 주황, 초록, 연두, 연파랑, 연분홍, 진분홍, 하양, 노랑과 초록 투톤 등 아주 다양하다.
“오, 택시 색깔이 정말 화려하네요.”
내가 탄성을 지르자, 그녀가 웃으며 말한다.
“노랑과 초록 투톤은 개인택시고, 나머지는 회사 택시들이에요. 한국 택시 색깔은 어떤데요?”
“서울 택시는 눈에 잘 띄는 주황색이 많아요. 태국 어플 택시 ‘그랩’이나 ‘볼트’ 같은 ‘카카오’ 택시는 노란색이에요. 개인택시는 색깔이 다양하지만 태국처럼 화려하진 않아요.”
“그러고 보니 세계 여러 나라 택시 색깔들이 다양하네요. 뉴욕은 노랑 옐로우 캡, 신사의 나라 영국은 블랙 캡, 홍콩은 빨간 택시로 유명하지요.”
방콕시내 교통
화려한 택시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 사람들의 알록달록한 옷 색깔이 눈에 확 들어온다. 이제 내 눈은 휘황찬란한 원색 옷에 꽂혔다. 사람들은 택시 색깔만큼이나 다양한 원색 옷을 많이 입었다. 노랑 옷이 정말 많다. 지금 우리랑 같이 걷고 있는 프래우 교수도 노랑 정장을 입었다.
“태국 사람들은 노란색을 좋아하나 봐요. 노란색 옷을 참 많이 입었네요.”
“오늘은 월요일이니까요.”
“네? 월요일이요? 월요일과 노란색에 무슨 연관이 있나요?”
오래전 인도 힌두교 신화에서 영향을 받았다며 그녀가 설명해 준다.
“요일마다 색깔이 있어요. 자기가 태어난 날의 요일을 알면 자기 색깔을 알 수 있지요.”
월요일 노랑: 달을 상징. 권위와 신뢰.
화요일 분홍: 화성. 사랑과 우정
수요일 초록: 수성, 발전과 성장
목요일 주황: 목성. 희망과 번영
금요일 파랑: 금성. 사랑과 평화
토요일 보라: 토성. 권력과 권위
일요일 빨강: 태양. 열정과 용기
월요일엔 노랑
“그럼 이 모든 색깔을 기억하고 있어야겠네요. 잊어버리고 다른 색 옷을 입으면 어떡해요?”
“걱정마세요. 꼭 그렇게 입어야 하는 건 아니에요.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자연스럽게 배웠기 때문에 저절로 알게 되었어요. 태국 국민들도 모두 나처럼 다 알고 있어요.”
이런 풍습은 꼭 실천하지 않아도 되지만 맞는 색의 옷을 입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운이 찾아올 것만 같다고 한다.
그날의 날씨와 기분, 참석하는 모임의 성격과 장소에 따라 옷을 선택해서 입었던 나에게는 독특한 경험이었다. 한편으로는 뭘 입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내 색깔은 무슨 색일까? 태국에서 나는 무슨 색으로 살아갈까?’
핸드폰을 열어 내 생년월일을 검색했다.
“우와, 나는 토요일 보라색이에요.”
내가 보라색이라고 하자 프래우 교수가 보라색은 아름다움과 고귀함의 색이라고 말해 준다. 현재 라마 10세 왕의 네 번째 부인인 수티다 왕비의 색이란다.
옆에 있던 남편도 언제 찾아봤는지 우리 대화에 끼어든다.
“나는 화요일 분홍색이네.”
“어머 그래요? 나도 분홍색인데 우리는 같은 색이네요.”
갑자기 프래우 교수가 좋아하며 손을 내밀어 남편과 하이파이브를 한다.
이 색은 이래서 좋고, 저 색은 저래서 좋다. 결론은 모든 색이 다 좋다.
한국에서 내 옷은 무채색이 많았다. 주로 검정과 하얀색이었고 색깔은 연한색 계열이었다. 그나마 60살이 넘어서부터 꽃무늬 옷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주 어렸을 때는 빨강, 노랑, 파랑 원색의 옷을 입었을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복을 벗은 뒤로는 한 번도 원색의 강한 보라, 주황, 노랑, 초록은 입어 본 적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색깔과 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색깔이 맞지 않는 것 같다. 어떡하지?
방콕에 왔으니 이 기회에 희끄무레한 옷을 벗고 열정적인 보라 원색으로 살아볼까?
내일은 토요일, 노분초주파보빨 원색 옷을 사러 살라야 시장에 가야겠다.
keyword
토요일
태국
보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