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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상지 Dec 02. 2024

앉아서 마늘 까면 눈물이 나요

  잠깐만요 나눠 먹읍시다

     중년의 부부가 거실 바닥에 앉아 마늘을 깐다.

먼 나라 태국 방콕이다. 텅 빈 거실 바닥에 앉아 눈물 훌쩍이며 마늘을 까고 있다.  

    

태국에 온 지 한 달이 지났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여기서 어떻게 적응하며 살아갈지 탐색했다.

한국 음식은 어떤 재료를 사서 어떻게 해 먹을까? 궁리도 했다. 다행히 한국 음식 K-food는 태국까지 널리 알려져 있다. 집 앞 마크로 (태국 대형마트)에는 간장, 된장, 참기름, 만두, 순창고추장, 부산어묵까지 거의 모든 재료를 살 수 있다. 웬만한 한국 음식은 집에서 해 먹을 수 있겠다. 심지어 ‘비비고 김치’도 발견했는데 조금 비싸고 익어서 신 상태였다.

      

방콕에 온 지 2주일 만에 수쿰빗 한인타운에 있는 ‘낙원식당’에서 김치찌개를 사 먹었다. 김치가 아주 맛있어 계산하며 물었다.

“사장님, 김치 좀 살 수 있을까요?”

“그럼요.”

바로 김치 한 포기를 팩으로 포장해 준다. 집에 가지고 와서 조금씩 아껴 먹었다.


아침 식사는 빵과 과일, 삶은 달걀, 커피로 했다. 점심은 태국식으로 간단하게 사 먹었다. 오직 저녁 한 끼만 한식으로 먹었는데 김치 한 포기를 일주일 만에 다 먹어버렸다.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의 김치를 남편이 젓가락으로 든 순간 재빠르게 말했다.

“잠깐만요. 김치를 그렇게 많이씩 먹으면 어떻게 해요? 나눠 먹읍시다.”

얼른 부엌으로 달려가 가위를 가지고 왔다. 한 조각의 김치를 반으로 잘랐다. 우리는 잘린 반 조각의 김치를 들고 마주 보며 웃음이 터져버렸다.


한국에서는 김치 말고도 다른 반찬들이 많았다. 이곳에서는 밑반찬이 없고 오로지 김치밖에 없으니 김치를 더 많이 먹는 것 같다.     


태국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마다 맛있는 나물이 나오면 이름을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분들은 영어를 못하고 나는 태국어를 못한다. 번역기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얼마 전 태국 식당에 초록 나물이 나왔는데 맛있었다. 식당 주인에게 번역기를 동원해 물어보았다.

“사장님, 이 나물 이름이 뭐예요?”

“모닝 글로리(Water Morning Glory. 공심채)입니다.”

“어떻게 요리하면 돼요?”

“굴 소스를 넣고 볶으세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모닝글로리 한 단을 사 왔다. 사장님의 레시피에 마늘 세 쪽을 추가해 넣었더니 정말 맛있다. 다행히 태국 나물 한 가지를 배웠고, 나물이 먹고 싶을 때마다 자주 해 먹고 있다.    

  

며칠 뒤, 마크로에 갔는데 우리나라 ‘김치 배추’를 팔고 있었다. 반가운 나머지 큰 통으로 세 포기를 골랐다.


김치 배추는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서 이미  ‘김치 캐비지’(Kimchi cabbage) 라는 정식 명칭으로 2013년에 인정받았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나라들에서는 아직도 ‘차이니즈 캐비지’(Chinese cabbage)라 쓰고 있다.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매니저에게 말을 해볼까? 생각했지만 영어로 소통이 어려울 것 같아 포기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이곳에서는 많이 움츠러들어 답답하고 소극적으로 살고 있다.

2020년 우리 정부는 한국 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11월 22일을 ‘김치의 날’로 제정했다. 김치 소재 하나하나가 (11월)가 모여 22가지(22일)의 효능이 있다는 뜻이다.  

    

이 기회에 김치를 담아 보기로 했다. 마늘과 생강, 양파, 쪽파, 당근, 부추, 사과도 샀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김치를 담기 위해 각자 맡아서 일을 했다. 남편은 배추를 절이고 나는 버무릴 양념을 만들었다.

남편과 둘이 앉아 마늘을 까고 있자니 ‘이진명’ 시인의 시가 떠오른다.    

      


“앉아서마늘까’ 면 눈물이 나요’    

                                          이진명


처음 왔는데, 이 모임에서는 인디언식 이름을 갖는대요

돌아가며 자기를 인디언식 이름으로 소개해야 했어요

나는 인디언이다! 새 이름 짓기! 재미있고 진진했어요

황금노을 초록별하늘 새벽빛 하늘누리 백합미소 한빛자리

(어째 이름들이 한쪽으로 쏠렸지요?

하늘을 되게도 끌어들인 게 뭔지 신비한 냄새를 피우고 싶어 하지요?)

순서가 돌아오자 할 수 없다. 처음에 떠오른 그 이름으로 그냥

‘앉아서마늘까’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세상 어디에 살아도 우리는 밥을 먹어야 하고, 마늘을 까야한다.

마크로에 없는 굵은소금과 찹쌀가루는 한국 마켓 ‘지두방’에서 사 왔다.      

방콕에 와서 처음 담는 배추김치에 우리는 온갖 정성을 다했다. 성공이다.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맛있게 되었다. 그러면 수육이 있어야 한다. 돼지고기 한 덩이를 삶았다. 막 담은 김치를 손으로 쭉쭉 찢어 막걸리 한 사발과 같이 먹는다.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 부러울 게 하나도 없다.

김치를 다 먹고 나면 우리는 또 앉아서 마늘을 깔 것이다.





     

         

*이진명 시집 <세워진 사람> 중 ‘‘앉아서마늘까’ 면 눈물이 나요’ 부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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