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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상지 Dec 16. 2024

집에 부엌이 없다고요?

여자의 로망, 부엌 없는 집

    우리가 살 집으로 들어가는 날이다. 일주일을 호텔에서 지냈다. 

호텔에 머무르는 동안 핸드폰 유심을 사서 끼웠다. 2023년 이후에 나온 핸드폰은 유심을 끼우는 공간이 두 개 있다. 한국 것 유심은 그대로 두고 비어있는 곳에 태국 유심을 사서 끼우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내 핸드폰은 오래되어서 유심을 넣는 공간이 하나밖에 없었다. 한국 유심을 빼내고 태국 유심을 사서 넣었다. 데이터는 무제한으로 쓰고 한 달 8,000원의 요금은 매월 내거나 일 년 걸 한꺼번에 내면 된다. 핸드폰이 해결되니 바로 태국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앱을 깔았다. 그랩과 볼트(택시), 라인 (메신저), BKK Rail(방콕 지하철 노선도)등.      

방1, 방2


유니버시티 콘도는 대학교 캠퍼스 안에 있는 기숙사로 학교와 관련된 사람들과 학생들이 사는 곳이다. 15층 콘도의 12층이 우리집이고 우리는 여기서 일 년을 살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버튼에 13층이 없다. 태국 사람들은 13이라는 숫자를 싫어해 12층 위는 바로 14층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4층을 싫어해 F층이라 하는 것과 비슷하다. 12층에 내려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넓고 밝은 거실이 환하게 들어온다. 남향으로 방이 두 개, 화장실도 두 개다. 방마다 에어컨이 있고 붙박이 장과 책상, 침대가 있다. 화장실도 아주 넓다.

12층에서 바라본 창밖 전망은 정말 아름답다. 주위에 높은 산과 건물이 없기 때문에 끝없이 펼쳐진 전망에 가슴이 뻥 뚫린다. 천정에는 실링 팬도 돌아간다. 

아주 마음에 든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뭔가가 빠진 것 같다. 부엌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저기 문을 열고 부엌을 찾았다. 있어야 할 부엌이 어디에도 없다. 앞 테라스도 텅 비어있다. 집을 안내해 준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부엌이 안 보이는데 부엌이 어디 있어요?”

“부엌은 없어요. 태국 집은 부엌 없는 집이 많아요. 이 건물 그라운드에 식당이 있어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요. 바로 옆에 세븐일레븐도 있고요,”

‘아니 이건 또 무슨 말이야?’

집에 부엌이 없다니 갑자기 내 머릿속도 텅 비어버렸다. 

내 마음은 전혀 모르겠다는 듯이 그가 말한다. 

“부엌이 필요한가요? 부엌이 필요하면 부엌 가구를 사서 사용하고, 원래대로 다 치워 놓으면 돼요. 홈프로에 가보세요.”

아무렇지 않은 듯 가볍게 말한다.      

부엌이 없는 집에 산다는 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부엌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공간이다. 세 아이를 키우는 동안 부엌은 가족 공동공간 역할을 톡톡히 했다. 식사를 준비하고 있을 때 아이들은 부엌으로 달려와 물었다. 

“엄마, 오늘 저녁 메뉴 뭐에요? 맛있는 냄새가 나요. 우와 맛있겠다.”

다 같이 모여 음식을 먹고, 간식을 만들고 차를 끓였다.

친구가 놀러 오면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가족들이 모두 나가고 나면 식탁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내 책상이 있었지만 부엌 식탁이 편하고 좋았다. 거실 소파에 앉아있는 시간보다 부엌 식탁에 앉아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이곳에서도 음식을 해 먹고 살아야 할 텐데 어떡하지?

나에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안 되겠어, 우리 돈으로 집세를 내더라도 나는 부엌이 필요해’

이 집은 대학에서 제공 해준 집이다. 부엌이 있는 다른 집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그런데 둘러본 집 상황도 거의 비슷했다. 부엌이 있다고 했지만 있으나 마나였다. 작은 개수대 한 칸과 작은 냉장고가 있을 뿐이다. 내가 생각한 한국 집의 안락한 부엌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학교 안의 콘도라 학생들이 음식을 해 먹지 않아서일까?’

음식을 사 먹는 태국에서는 부엌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것 같다. 

‘아무리 문화가 다르다지만 집에 부엌이 없다고?’


홈프로 (전자제품과 가전제품을 파는 백화점)에 가서 알아보기로 했다. 그랩을 불러 타고 갔다. 

기본적인 싱크대 1칸, 개수대 1칸, 냉장고와 선풍기를 봤다. 일 년만 사용할 건데 LG와 삼성 제품은 비싸서 통과했다. 제일 싼 일본산 SHARP 제품으로 골랐다. 모두 다 골랐는데 한국 돈 100만 원이 채 안 든다. 정말 싸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배달을 시키고 집으로 돌아왔다.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휑한 거실이 보인다. 

‘아, 맞다. 부엌이 없지? 오늘 저녁은 어디서 뭘 먹을까?’ 

다시 G층 그라운드 식당으로 내려갔다. 몇 가지 음식을 사 들고 올라온다. 

길거리에서 투명한 비닐봉지를 하나씩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그들은 한 끼 식사를 들고 학교에 가고 출근도 한다. 나도 투명한 비닐봉지를 들고 올라온다. 부엌이 없어도 잘 사는 태국 아줌마가 된 것 같다.


냉장고, 싱크대, 개수대

     

잠시 후, 부엌이 없어서 황당하다고 보낸 내 카톡 메시지에 친구의 답장이 왔다.

‘부럽다. 모든 여자의 로망인 부엌 없는 집에서 맘껏 누리다 오길.’     

일주일을 호텔 음식과 태국 음식만 먹었다. 아무리 태국 음식이 맛있다지만 일주일 이상은 힘들다. 한국 음식이 먹고 싶고, 김치도 먹고 싶다. 조그만 내 부엌에서 김치찌개도 끓이고, 된장국도 끓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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