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빌려준 건 나인데, 왜 욕까지 먹어야 하나?
Q. 결혼을 앞둔 33살 예비신부입니다. 세 자매 중 막내이고, 우리 자매는 친구 사이로 오해할 만큼 사이가 돈독해요. 그런데 얼마 전 큰언니에게 얻어맞고 충격에서 못 벗어나고 있습니다. 결혼 준비도 많이 도와준 언니가 말이죠. 예전 신용불량자였던 큰언니한테 제 신용카드 석장을 빌려줬죠. 일 때문에 필요하다고 해서요. 제가 결혼하면 돌려받기로 했고요. 카드대금을 연체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얼마 전 카드를 돌려달라고 했죠. 딱 부러지게 얘기한 것도 아닌데 언니는 “날 가지고 노는 거냐”며 불같이 화를 내더군요. 아버지도 제가 나쁘다고 하셨어요. 부모님은 큰언니를 무한신뢰하고 의지하십니다.
이틀 뒤, 다른 일을 핑계삼아 큰언니에게 연락했죠. 난 가지고 노는 게 어떤 건지 모른다, 그렇게 느꼈다면 미안하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답은 없었고요. 저녁에 집에 온 언니는 “그게 사과냐”며 또 폭풍같이 화를 냈어요. 자신을 빚쟁이 취급했다며 카드 정리해 주겠다고 욕을 퍼붓고 제 얼굴을 때리고 가버렸어요. 부모님은 자기들끼리 알아서 하겠지 하면서 가만히 계시더라고요. 그날 밤 저는 목매고 죽을 생각까지 했어요. 모두에게 충격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울고 다닙니다. 제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빌려주고도 욕먹는 제가 한심하더라고요. 가족들은 화해시키려 애쓰는 듯하지만 언니를 볼 자신도 없고 보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냥 결혼해서 그 누구의 간섭도 없이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제가 이기적인 건가요?
C. 결혼을 먼저 축하드려야 할텐데. 딱한 마음이 먼저 앞서네요. 원가족의 문제는 새로운 가족에서도 다시 나타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래서 내가 결혼을 한다해도 이 문제는 나를 계속 따라다닐거라는 거.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알아채실거예요. 제가 이문제의 핵심을 당신이 아니라 당신 가족으로 보고 있다는 거.
첫 번째, 개인. 질문이 매우 구체적이어서 좋기는 합니다. 질문에 대한 답. 님이 이기적까지는 못 가도 개별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족한테도 말이지요. 그런데 왜 질문을 이렇게 하셨을까요? 님은 가족에게 인정받는 것으로만 자기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던게 아닐까요? 모두에게 충격을 주고싶어서 자살을 생각하셨다니, 그렇게 자살한다고 칩시다. 자살하고 난 다음에의 가족들. 충격? 당연히 받습니다. 그런데, 님은요? 님은 그 때 존재하나요? 그런 취급을 받은게 억울해서 복수를 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 키득키득 웃을 자기가 없다면. 흠...
두 번째, 가족. 가족 내에서 언니의 역할은 언니가 아닌 아버지였던 같습니다. 언니에게 버림을 받음으로써 가족에게도 버림을 받는 모습이니, 언니의 역할은 극심한 가부장적 가족 내에서 아버지 역할이었던거죠. 그러한 아버지에게 가족의 정당한 권리주장은 반항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게다가 욕설과 폭력이 일어났는데 가만히 있는 가족이라니, 어쩌면 그것들이 일상화되어있었다고도 보여집니다. 그런데 돈독한 자매 사이라. 충분히 가능합니다. 서로를 독립된 개체로 인정하지 않는만큼, 서로의 일을 내 일처럼 챙겨줄테니까 말이죠.
세 번째, 어린 시절. 이러한 가족 내에서 님의 어린시절은 어땠을까요? 사람의 자존감은 어린시절에 형성이 됩니다. 자존감이라는 말, 얼마나 스스로를 가치있게 여길 수 있느냐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 전제조건이 붙습니다. ‘내 존재 자체만으로’ 혹은 ‘아무런 조건 없이’라는 조건입니다. 결국 한 인간이 가지는 자존감의 강도는 그의 어린시절 가족에게서 얼마만큼 많은 무조건의 사랑을 받느냐로 결정이 됩니다.
여기서 또 생각해봐야 할 것이 ‘역할’입니다. 역할은 책임은 수반하며, 모든 이가 이야기하듯 인간은 관계적 동물이라, 어느 곳에 있던 역할을 가지게 되고 그에 따른 책임도 집니다. 그런데. 어린시절에 역할이 강조됐다면요? 어린아이는 하얀 도화지와 같아서, 자존감이 형성되기도 전에 역할이 강조되면, 자신을 지탱해주는 건 스스로가 아니라 역할이 되어버립니다. 결국 성인이 되어서도, 그 생존이 누구도 알 수 없는 외부환경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는 것이죠.
질문으로 다시 돌아갑시다. 어린시절 혹시 ‘이 세상에 믿을 건 가족밖에 없어’라는 가족분위기는 아니었나요? 그래서 가족끼리는 서로 싸워서도 안되며, 못 마땅한게 있어도 참아야하며, 그래서 평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해야만 하는 가족은 아니었나요? 혹시 적어도 님에게 있어서만은 그러한 막내딸의 역할이 강조되지는 않았나요?
님께서는 결혼해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홀가분하게 살고싶다고 했는데, 왜 전제가 결혼일까요?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독립은 생각하기 힘들어서였을까요? 그 이유는요? 혹시 미안해서, 혹은 그러면 안 될거 같아서? 결국 님이 안고있는 가장 큰 문제는 자기자신과 가족이 분리되지 않아 있다는 겁니다.
가족과 자신을 분리된다는 것은 이기적인 것도 개인적인 것도 아닙니다. 나와 가족을 가족이라는 덩어리 하나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인식하고 사랑하며 서로에게 좀 더 구체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는 전제 작업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자존감의 시작입니다.
* 몇 년 전, 한겨레에서 토요섹션으로 <3D 입체 마음테라피>라는 제목으로 지면상담을 꾸린 적이 있습니다. 독자가 하나의 고민을 보내오면, 세 명의 전문가들이 각자의 답을 하는 컨셉이었습니다. 여차저차한 이유로 저는 그 고민들에 대해 개인적인 답을 블로그에 포스팅하기 시작했습니다. 브런치를 시작한 기념으로 그 때 쓴 글들을 여기에 옮겨 연재합니다. 참고로 이번 고민이 실린 원기사는 <문제는 자격지심, 화해는 천천히>(누르면 이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