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일반인의 책 출간은 밥 한끼로 결정되었다

<우리의 시간은 공평할까> 책 출간노트 : 출간 권유를 받다.

by 양승광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책을 쓰고 싶어 석 달간 참석했던 책쓰기 강좌도, 그토록 읽어댔던 책쓰기 방법론도 다 헛 거였다. 단지 밥 한 끼였다. 밥 한 끼로 책 출간이 결정되었다. 출판기획안도 없이, 완전 원고도 없이, 단지 몇 년 전에 썼던 A4 열 장 분량의 미간행 에세이 하나로 단행본 출판을 권유받은 것이다.



밥이나 드시죠. 편집자로 있는 그는 내게 신간을 주겠다고 했으며, 나는 몇 달 전 나온 박사논문을 주겠다고 했다. 결혼하기 전에 본 것이 마지막이니, 근 5년만의 재회였다. 그는 단행본 편집자로 변신했으며, 나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육아휴직 중 가끔 잡히는 점심식사는, 반가웠다. 소풍이며 나들이였다. 출근을 할 때는 일부러 점심약속을 비워놓고 쉬는 날들도 있었으나, 육아 휴직 중 혼자 하는 점심식사는 온전히 나의 노동을 요하는 일이었다.


“올라 오실래요?”


대표도 자리를 비웠으니 사무실 구경이나 하라는 것이었다. 출판사라... 궁금했었다. 으리으리한 사무실을 상상하지는 않았지만, 공간은 열 평 안쪽, 생각했던 것보다 아담 했으며 포근했다. 중앙에는 네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 있었으며, 실내 구석들을 찾아 책상이 배치되어있었다. 의외로 출판사라는 느낌을 줬던 건 책장이었다. 같은 책들이 수십권씩 좌르륵 책장에 꽃여 있는 것. 분명히 팔려는 것일테니까.

이야기의 시작은 별 게 없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는 뻔하니까. 하지만 신상 변화에 관한 것은 짧게 끝났다. 개인사는 모르면 모를수록 할 말이 없는 것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소개팅하는 자리도 아니기에 개인을 많이 드러낼 필요도 없었으며,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계속 물어봐야 할 부담감 또한 없었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일에 관한 이야기, 논문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는 이 단행본 편집 일이 재미있다고 했다. 나 역시 논문 쓰는 일이 재미있다고 했다. 그가 만들어 낸 책 이야기를 듣다가, 자연스레 화제는 나의 학위논문으로 넘어갔다.


내용은 이래요. 이래 뵈도 블라블라...

논문을 펼쳐 슬슬 넘겨보던 그의 손이 멈췄다.

"이건 뭐예요?"


각주에는 내 이름이 달려있었고 그 마지막에는 “(미간행)”이라는 표시가 되어 있었다. 몇 년 전에 썼던 에세이. 내가 작가도 아니고, 글이 논문도 아니어서 게재할 곳을 못 찾았던 원고. 논문에나 써먹자 해서 2/3면 분량을 인용했었다.

관심을 가져주는 이가 있다니! 반가웠다. 왜 그런 말이 튀어나왔을까?

"전체 원고 있는데... 메일로 보내드릴까요?"


이 말이 마법의 주문이 될 줄은! 사무실의 공기가 바뀌었다. 사무실에 있던 두 명의 친구는 사라지고 편집자와 예비저자가 생겨났다. 둘의 정서적 관계가 거래적 관계로 바뀌었다. 그는 내게 책을 낼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고, 나는 갑작스런 제안에 쭈뼛댔다. 그는 상대의 쭈뼛댐을 무력화시키는 가장 좋은 태도를 알고 있었다. 확신을 주는 것이었다.

“대표님과 상의하고 말씀드릴게요.”


그 다음 날 오전.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표님이 이 원고 불려서 책 내자고 하세요.”


제 첫 단행본 <우리의 시간은 공평할까>가 2019년 12월에 씽크스마트에서 출간됩니다. 출간 결정부터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하나씩 풀어볼까 합니다. 책을 준비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커버 이미지 : Photo by Matt Seymour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지옥철에서 보는 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