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시간은 공평할까> 출판노트 : 출판계약을 하다
편집자가 출판을 권유하고 출판사 대표도 그러자고 했지만, 무명에게는 이 말이 현실로 와 닿을리 없다. 말로 이루어지는 출판 권유, 단순히 좋은 말로 끝날 수도 있다. 물론 편집자를 믿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그는 충분히 조심스러운 사람이었고, 상대방의 기분에 따라 말을 만들어내는 사람 역시 아니었다. 그렇다고 출판사 대표를 믿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기에, 믿지 않을 근거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책을 쓴다는 것이, 이 원고가 다 되면 책으로 묶여 나온다는 것이 현실성 있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런 이유로 원고작업이 지속되다가도 며칠에 한 번씩 의구심이 생겼다.
“괜한 헛수고 하는 거 아니야?”
브레이크가 밟히는 순간을 없애야 했다. 그래서 편집자에게 출판계약을 졸랐다. 말 그대로였다. 졸랐다.
하지만 출판계약을 위한 미팅은 쉽사리 잡히지 않았다. 출판사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 할 일이 아니었다. 무명인과의 출판계약, 완전원고도 없이 자비출판이 아닌 기획출판 계약을 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기도 했다. 기초가 되는 원고가 있다고는 하지만 A4 10매짜리를 가지고 출판계약을 한다는 건 모험이었다. 완전원고가 나오리라는 것도, 그 원고의 퀄리티가 괜찮으리라는 것도 단순히 믿어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출판계약 미팅은 출판 권유를 받고 두 달 쯤 지나서야 잡혔다.
대표는 내게 출판계약 체결을 서두르려는 이유를 물었다. 책 원고라는 것이 공장에서 주형물을 찍어내듯 서두른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여기에 대한 나의 답변은 다음이었다.
“그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다른 의뢰를 거부할 수 있는 명분이 필요해요. 학위를 받은지 얼마 안 되는 박사로서, 발표나 토론과 같은 학술세미나 의뢰가 왔을 때 출판계약이 없다면 그 일을 먼저 수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출판계약이 체결되어 있다면, 저는 의뢰하신 분들에게 양해를 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좋은 원고가 숙고하는 시간 속에서 완성되는 데에는 동의합니다만, 대표님은 이 원고가 3년 뒤에 완성이 되어도 괜찮겠습니까?”
마지막 말이 대표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와 나는 인세와 계약금을 조율했고 완전원고 납품의 일정을 못 박았다.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서는 출력되었으며, 내 인생 첫 번째의 출판계약이 체결되었다.
만일, 이 때 출판계약을 맺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음, 원고가 제시간에 끝나지 못 했을 확률... 훨씬 더 높았을 것이다.
누군가가, 경험에 근거해, 책을 내려는 무명 예비작가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해달라고 한다면 아래 정도가 아닐까?
“당신의 글이 출판사를 필요로 하듯, 출판사 역시 당신의 글을 필요로 한다.”
제 첫 단행본 <우리의 시간은 공평할까>가 2019년 12월에 씽크스마트에서 출간됩니다. 출간 결정부터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하나씩 풀어볼까 합니다. 책을 준비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커버 이미지 : Photo by Matt Seymour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