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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승광 Apr 30. 2019

지옥철에서 보는 희망

소득에 따라 줄어드는 여가시간

공식적인 노동시간, 은폐된 노동시간 외에도 노동을 위한 시간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노동이 아니라면 소모할 필요가 없는 시간. 출퇴근시간이 바로 그러합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의 평균 출퇴근 시간은 1시간 56분입니다. 하루 전체로 따진다면 10분의 1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이며, 잠자는 시간을 뺀다면  10분의 1이 넘어가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여가시간은 출퇴근시간만큼 줄어듭니다. 


여가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서는 주거지를 직장 근처로 옮겨야 하지만, 이게 상당히 어렵습니다. 어느 지역이나 직장들이 몰려있는 곳은 시내 한 가운데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반대일 겁니다. 직장들이 옹기종기 밀집해 있으니 시내 중심가가 된 것입니다. 자연스레 그 곳에 가까울수록 땅 값, 집 값은 올라갑니다.


몇 년 전, 이사를 하려고 전세가, 매매가, 경매가를 알아본 적이 있습니다. 인터넷 포탈의 부동산 사이트를 통해 서울 시내 전역을 쓸며 가격대를 확인했습니다. 자기 전 한두 시간씩 매일매일 꽤 오랜 기간을 그리 했었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했던지, 아내님에게 부동산 해도 되겠다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서울 안에 있는 주택 가격을 다 꿰뚫고 있다는 쓸데없는 자부심도 생겼습니다. 그런데 회사 동료들과 집 이야기를 하다가 ‘아차!’ 싶었습니다. 그 자부심은 착각이었음을 뒤늦게 알아차린거죠. 저는 강남 3구와 목동 등의 집 값에 대해서는 까막눈이었습니다. 포털에서 가격대를 필더링했기에, 그 동네의 물건들은 아예 검색 대상에서 빠졌었습니다. 제게 있던 돈으로는 아예 들어갈 생각조차 못하는 동네였던거죠.

다음 부동산 캡쳐

출퇴근 시간을 얼마나 줄이느냐, 그리하여 나의 여가시간을 얼마나 늘리느냐는 소득이나 자산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가진 돈이 적다면 출퇴근 시간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감정원의 통계에 따른다면 2019년 2월 현재 아파트 1 제곱미터 당 평균 전세가격은 서울이 540만 6천원이며 경기도가 305만 6천원입니다. 한 가족이 59 제곱미터 아파트에 거주한다고 할 때 필요한 금액은 서울이 3억 2천만원 정도, 경기도는 1억 8천만원 정도가 됩니다.  2018년 도시근로자 3인가구의 월 평균 소득이 약 494만원임을 고려하면, 전세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서울의 경우는 5년 5개월치의 월급을 모두 저축해야 합니다. 경기도의 경우에도 3년치 월급의 저축이 필요하지만 서울에 비하면 사정은 훨씬 나은 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먼 곳에 주거를 두고 출퇴근하는 것, 이건 여가시간과 주거공간을 맞바꾸는 일입니다.     


장거리 출퇴근이 여가시간만을 줄일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합니다. 삶 전체의 기간을 단축시키기도 합니다. 미국 워싱턴대학의 연구팀은 장거리 출퇴근이 신체활동과 심장혈관 적합도(CRF)를 떨어뜨린다고 지적합니다. 스웨덴 우메아대학의 연구팀 역시 장거리 출퇴근 여성의 사망 비율이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54 퍼센트나 높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러한 위험은 우리나라에서 이미 현실화되었습니다. 2013년에 공립학교 영양사가 뇌출혈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의 나이는 많지도 않았습니다. 39세에 불과했으니까요. 원인은 짐작하셨던 장거리 출퇴근이었습니다. 법원 역시 뇌출혈의 원인을 용인에서 이천까지 각 한 시간 이상 소요되는 출퇴근에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Photo by Eddi Aguirre on Unsplash

우리는 꽉 찬 지하철에 몸을 싣습니다. 노동을 하기위하여 좁은 지하철을 버티는 노동을 합니다.  유급 노동을 하기 위하여 무급 노동을 하는 셈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적을수록 매일 아침에 일어나는 무급 노동의 시간은 길어집니다. 지옥철을 내린다 해도 다른 노동이 버티고 있지만 우리는 실망하지 않으며 지하철에서 내리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먼저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미안해하면서도, 지하철에 몸을 구겨 넣습니다. 누군가가 꽉 찬 지하철의 열린 문 앞에서 발을 동동거리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면, 더 이상은 없을 것 같은 공간에 틈을 내어 우리는 그를 받아들입니다. 


저는 여기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품에 안는 것을 봅니다. 연대를 찾아보기 힘든 때라고, 나 하나 살기도 힘든 시대라고 하지만, 저는 여기서 사람 간의 연대를 봅니다. 


나의 출근이 소중하면 너의 출근 역시 그러하다. 


나의 생계가 중요하면 너의 생계도 마찬가지다. 


지옥철이 지옥으로만 끝나지 않는 것, 헬조선이 헬로만 끝나지 않는 것은 다 나 때문입니다, 다 너 때문입니다, 모두 우리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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