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Film Biography
‘미화 영화’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미화 영화’라는 것은 ‘어떤 특정 대상이 실제보다 더욱 아름답게 꾸며지는 영화’라는 의미이다. 가령 ‘조폭 미화 영화’, ‘전쟁 미화 영화’와 같은 것은 많은 현대 영화들이 달고 있는 이름이다. 하지만 미화 영화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전기 영화이다. 전기란 어떤 실존 인물에 대한 일대기를 기록을 토대로 후대의 사람이 서술한 이야기로, 이 전기를 영화화한 것이 전기 영화이다.
전기적 인물을 영화에서 다시 재현하는 것은 허구적인 캐릭터를 만들어서 재현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전기 영화에는 필연적으로 윤리적이고 성찰적인 문제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 또한, 전기 영화는 감독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전지적 인물의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전기 인물의 삶에 대한 역사적 성찰과 이를 영화로 만들기 위한 영화적 성찰이 동시에 요구되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식 전기 영화는 크게 인물을 신화화하는 문제와 영화의 시각성을 통해 자극하는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전기 영화의 서술은 전기 영화의 시초격인 전기의 서술과 필연적으로 비슷하다. 그러므로 전기 영화의 서술 구조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분석해보기 위해, 전기 서술의 문제를 간단히 살펴보려고 한다. 전기는 실제로 역사의 한순간에 살았던 인물에 대한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자료로 여겨지며, 많은 독자의 삶에 영향을 끼쳐 왔다. 전기는 전기 인물의 탄생과 죽음, 성장 과정, 주요 사건, 인간성 등 요소가 들어가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교훈성이다.
전기 요소에 가장 중요한 것이 교훈성이라면, 전기는 대체로 전기 인물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전제로 써지는 것이다. 전기는 교훈성이라는 깃발 아래에서 전기 인물의 삶의 주요 사건들을 연대기처럼 유기적으로 정리한 후에 최종적으로는 전기 인물의 삶을 통해 우리의 삶을 비평하는 식으로 마무리하는 성향이 많다.
이러한 전기 서술 구조는 전통적인 전기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전기 영화 역시 전기 인물의 일생을 통하여, 관객에게 감동과 교훈을 전하는 것이 목표이고, 이를 위해서 전기처럼 전기 인물의 삶을 유기적으로 재구성해 나간다. 이렇게 시나리오 작가에 의해 치밀하게 구성된 전기 서술 구조는 관객이 작가의 정확성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전기 영화의 근본적인 신뢰도 때문에, 투 그대로 받아들인다. 관객은 ‘사실적으로’ 구성된 전기 영화에 대해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예시로 박정희의 전기를 보자.
“우리도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인물이 있다. 그가 바로 박정희라는 인물이다.... 한국 사람들의 눈에는 그가 희미하게 보일지 모르나 분명 세계 사람들의 눈에는 찬란한 태양과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 정재경, <위인 박정희> (집문당, 1992, p.5)
이처럼 전기에서는 전기 인물을 영웅화, 신화화한다. 전기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관객(독자)는 ‘역사적인 근거’에 기반한 전기의 서술 구조라는 말 때문에 이 전기를 사실되게 받아들이게 되며 대체적으로 작가의 의도에 따라갈 수밖에 없는 위치에 서 있다.
우리가 히어로 영화를 볼 때, 가령 마블의 <어벤져스> 시리즈를 볼 때 우리는 영화에 나오는 영웅들이 아무리 영웅적인 존재라 하더라도 관객들은 일단 그들이 허구적 인물이라는 전제 하에 받아들인다. <어벤져스>처럼 판타지 기반 영화가 아니더라도, <다이하드>, <007 시리즈>와 같은 영화에서 활약하는 영웅들에 대해서 관객은 허구적 존재라고 기본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단지 하나의 유흥으로 즐긴다. 그러나 전기 인물을 재현하는 전기 영화인 경우에는 그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전기 영화 속 인물은 과거 또는 현재에 실제로 현존했던 인물이기 때문에, 관객들이 이들을 마치 <어벤져스>의 아이언맨을 보는 것과는 현저히 다르게 느낄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허구의 운동 선수가 시련을 딛고 일어나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서술 구조보다는 실존했던 운동선수가 어떤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서술 구조가 훨씬 더 강력한 정서적 요동을 주며, 더 사실적으로 인물의 삶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은 전기 영화에서 등장한 전기 인물의 삶이 실제 삶은 아니더라도, 비슷한 삶을 살았다고 인식하게 되고 그 ‘진실된’ 삶을 받아들이게 된다.
2017년 개봉한 <위대한 쇼맨> 또한 그 주인공 P.T.바넘의 삶을 영웅화했다고 볼 수 있다. 영화에서는 그가 마치 차별받고 무시 받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주며 시련을 딛고 일어나 끝내 성공하는 서술 구조를 가지고 있음으로 실제 인물을 영웅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이 영화는 뮤지컬의 포맷에 맞춰 각색하고 타임라인이 단축되고 스토리에 가상이 더해졌지만, 영화에서도 바넘이 무조건 긍정적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바넘의 초창기 엽기적 행각(공개 부검)이 생략되거나 돈벌이에 수단을 안 가리는 모습 등을 긍정적인 메시지로 포장해서 보여주거나 동정받을만한 개인사를 집어넣은 부분도 존재한다. 아무래도 전기영화로 보여주기에 민감하거나 자극적인 부분을 전부 잘라 내버리고 각색해버린 결과 원래 P.T 바넘보다 너무 착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 문제다. 심각한 영웅화는 없었지만, 전기 영화의 영웅화를 잘 보여주는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할리우드식 전기 영화의 서술 구조는 상당히 성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전기 영화는 관객의 감각을 자극하고, 관객에게 전기 영화에 나오는 전기 인물이 실존 인물과 같은 인물로 받아들이게 하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전기 인물을 허구로 변형시키지 않으면서 인물의 고유성과 역사적 진실, 그리고 본질에 어떻게 더 가깝게 다가갈 것인가의 문제를 성찰해야 한다.
하지만, 전기 영화는 전기 영화의 서술 구조뿐만 아니라, 영화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시각적, 청각적 특성에도 있다. 영국의 비평가인 존 버거는 ‘본다는 것은 말에 선행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본다는 것 즉, 시각적인 것이 언어적인 것보다 훨씬 강력하다. 그렇기에, 전기와 전기 영화가 비록 동일한 서술 구조로 되어 있을지라도, 전기 영화는 전기보다 더 강렬하게 관객과 반응하며 설득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마르크스 전기보다는 영화 <청년 마르크스>에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를 직접적으로 듣는 것이 더욱 깊이 와닿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적인 전기보다 시각적인 전기 영화에서 전기적 인물의 재현에 훨씬 더 성찰적인 접근이 요구되는 것이다.
72기 김현호
- 이 글은 Google Play 스토어에서 무료로 열람하실 수 있는 도서 <Feelm: 2권>(서강영화공동체, 2021)에 수록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