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보더라도 이닐 것이다. 아니다.
그런데 나는 나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해 주고 싶다.
이건 자족하고자 쉰 소리 하는 것도 아니고 허세를 부리는 것도 아니다.
정말이지 여기까지 오느라 죽는 줄 알았다. 문득 그런 생각도 든다. 정신 병원에 가지 않은 것만도 어딘가라고...
나르시시스트에게 수 십 년을 휘둘려 살다 그 사실을 깨닫고 현실을 직시하게 되면 누구라도 "휴!~'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될 것이다. 그 사이 제 명을 다하지 못할 수도 있었겠구나 라며...
그래서 이제라도 사슬에서 풀려나 인형의 집에서 탈출하게 된 것만으로도 그렇게 말해 주고 싶다.
여기까지 잘 왔다.
기내용 여행 가방 하나만 들고 집을 나올 때 현관문을 닫는 순간부터 다시는 이 문고리를 잡지 않을 것이란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문을 닫고 등을 돌리는 순간 곧바로 정이 떨어지고 암울하고도 적막한 기운이 감돌았기 때문이다. 다만 금쪽같은 아들을 그런 곳에 남기고 와야 한 다는 사실에만 가슴이 미어질 뿐이었는데
그 와중에 위로가 된 것은 아들이 이미 성인이라는 사실이었다. 만약 아이들이 어렸다면 그런 용기를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들을 희생양으로 만들기도 싫었고 아이들이 그들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이혼 가정에서 살게 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그래서 젊었을 때는 늘 속으로 "나만 참으면 된다. 나만 참으면 여러 사람이 행복하다."라며 이를 악물었다.
지금, 그랬던 선택에 대해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위해 내 삶을 포기했던 것에 대해...
그 당시 이혼하고 아이들과도 헤어지거나 아니면 아이들이 한 부모와 사는 상황이 되었더라면 내가 큰 성공을 했더라도 힘들었을 것이다.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을 것인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으므로...
난 회피형 인간이다.
고난 앞에서 언제나 무릎을 꿇거나 도망쳤다.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그래서 이룬 것이 하나도 없다. 뚫고 나아 간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현실의 문제든 인간의 문제든...
난관에 부딪히면 주저앉고 포기하고 나쁜 인간을 만나면 절연하면서 피해 나갔다.
잘했다 못했다 나쁘다 좋다를 떠나 그렇게 타고난 기질대로 살았다.
그러나 비록 이룬 것은 없어도 인생을 한 순간도 가볍게 산 적은 없다.
항상 무겁게 받아들였다.
지금은 누군가가 나를 짓밟았다고 해서 내 인생 자체가 구겨지는 것은 아니란 사실을 입증하고 싶을 뿐인데
쓰잘데 없는 짓이지만 말이라도 해 주고 싶다.
너희의 운명대로 살아라. 지금 너희가 선택한 삶이 바로 너희들 인생 그 자체이다. 그런 밑바닥 허접한 인생이 바로 너다라고. 그것도 인연이라니 제발 시절인연으로 끝나지 말길...
나르시시스트에게 너무 차원 높은 바람인가?
나르시시스트와는 외계인과 대화라는 거 같기 때문이다.
난 누구보다 나르시시스트에 관해 많이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