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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일 Jul 06. 2020

23. 마디

“능인(能忍) = 잘 참는 사람”

“엄마 집을 정리하면 좋을 것 같아!”

일요일 오후 엄마를 뵙고 같이 점심을 먹은 후 병원 근처 카페에서 누이들에게 말했다. 갑작스러웠는지 누이들은 조금 놀란 듯했다. 빈집으로 두고 있지만 엄마 집은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병원에 계시지만 언제든 좋아져서 다시 집으로 가실 거라는 희망에 그대로 두고 있었던 것이다. 작은 누이는 매달 각종 명세서를 가져오며, 집도 둘러보고 혼자 엄마 집을 챙기고 있었다. 집을 챙긴다기보다는 엄마의 모든 것이 담긴 엄마만의 공간을 챙기고 있었다. 덩그러니 비어있는 집에서 귓가에 맴도는 엄마의 목소리에 취해 홀로 눈물짓고 나오는 날이 많았다. 그런 엄마 집을 정리하자는 말에 누이들이 놀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왜 갑자기 정리하고 싶어 졌어?”
이미 마음이 안 좋은지 먹먹한 목소리로 작은 누이가 물었다.
“그냥 정리할 때가 된 것 같아서... 냉정하게 생각해봤어. 엄마가 좋아지신다 해도 내가 모시던가 해야지 엄마 집에 홀로 계시게 할 수도 없잖아.”
차가운 커피 한 잔에 각자의 빨대를 꽂아 놓은 누이들은 번갈아 커피를 마시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마음을 정한 듯 큰누이가 말했다.
“그래. 정리하자. 다른 의미 두지 말고”
맘이 안 좋기는 큰누이도 마찬가지다. 자식들에게는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휴식처를 없애는 마음이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격려받을 수 있고, 마음 놓고 위로받을 수 있는 요람을 없애는 일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미룰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큰누이와 내가 가장 마음을 쓰는 건 작은 누이였다. 20여 년 엄마를 옆에서 챙겨 온 작은 누이의 마음이 가장 힘든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은 누이는 결정을 한 듯 시원스레 말했다.
“정리하자. 그냥 두면 뭘 하겠어. 세금만 나가는데. 그리고 오래 비워두니까 바퀴벌레만 느는 것 같더라. 언제 정리할까?”
내성적이면서 순수한 소녀 같은 작은 누이지만 큰 결정에 항상 대담했다. 정리를 결정한 우리는 내가 집에 대한 행정 처리를 마치는 데로 주말에 집을 정리하기로 했다.



누워계신 엄마를 대신해 서류를 발급하고 아파트 계약을 해지하는 것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계약해지를 위해 필요한 서류를 모두 챙겨 관리사무소를 방문했다. 서류를 제출하자 몇 가지 질문을 하고는 퇴거 일정을 확인했다. 이런저런 조율을 마친 나는 10월 중 주말로 퇴거일을 정했다. 사무소 문을 나서자 아름드리나무들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문득 고개를 들었다. 선명한 파란 하늘이 나뭇잎 사이로 빛나고 있었다. 가느다란 빛줄기가 쏟아져 내린다. 빛의 샤워 속에 20여 년 전 기억이 떠오른다.

어려운 형편에도 수년간의 노력 끝에 아파트가 당첨되었다. 엄마는 포장마차 손님이 없어 차비를 빌리는 일도 허다했다. 그 와중에 마련한 새로 지은 작지만 깨끗한 임대 아파트였다. 어렸던 나는 어떻게 이사를 했는지 조차 기억이 없다. 월세집을 전전하다 마련한 집에서 기뻐하시던 엄마의 모습만이 선명하다. 어쩌다 새벽에 엄마를 마중 나가면 아파트 입구부터 아들의 마중에 기분 좋게 덩실덩실 엉덩이를 흔들며 걸어오시던 모습이 선했다. 그 장소가 바로 여기였다. 관리사무소 앞길. 저 멀리 가로등 아래 아들을 보며 환하게 웃으며 춤추듯 걸어오시던 엄마의 모습이 선했다. 내 기억 속 건강하던 엄마의 마지막 모습인 듯했다. 손에 든 아파트 계약서가 눈에 들어왔다. 최초 계약일이 20여 년 전 10월이었다. 묘한 시간의 퍼즐을 느낀다. 아파트로 이사 후 얼마 안 되어 병상의 투쟁을 시작하신 엄마는 마치 당신이 누울 것을 예상이라도 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엄마의 기나긴 병상의 시간을 마무리하듯 아들인 내가 계약을 해지했다. 자식들이 아플 것까지 홀로 다 겪으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전화벨이 울리며 나는 빛의 샤워를 마쳤다. 작은 누이다. 행정처리가 걱정되었는지 일하던 중에 전화를 했다. 누이와의 통화를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8층 복도 끝에 있는 엄마 집을 걸어 들어가는 순간부터 엄마의 모습이 홀로그램처럼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 현관문 앞에서 서울로 가는 아들을 차가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곤 하셨다. 아파트가 떠나갈 듯 조심하라는 말씀을 외치던 밝은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현관문을 열고 쌓여있는 세월의 향기를 가르며 들어갔다. 그대로였다. 좁디좁은 집에 엄마의 체취가 여전했다. 햇살을 한가득 머금은 베란다 커튼이 바람에 나풀거린다. 더 이상 감상에 젖는 것을 스스로 멈춘 채 집안을 둘러보았다. 서랍장과 침대, 작은 방의 옷장, 쌓여있는 책들. 문득 빈 침대가 눈에 들어온다. 얼마 전 보게 된 또자 할머니의 빈 침대가 겹쳐져 보였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엄마 건강히 잘 계신데 뭔 생각을 하나, 지금!’ 스스로 생각을 가다듬었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남겨두고 싶었다. 여기저기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은 나는 겉옷을 벗어 침대에 던져놓았다. 다음날 작은 누이와 함께 정리하기로 했지만 손에 닿는 데로 나는 정리를 시작했다. 커다란 쓰레기봉투에 이불과 옷들을 담기 시작했다. 버리려 넣었다 아쉬움에 다시 빼놓길 반복한다. 결국 버리는 것보다 보관하자고 박스에 담은 양이 많아지고 있었다. 옷가지와 이불을 정리하고는 방바닥에 앉아 서랍을 열기 시작했다. 오래된 엄마의 소지품들과 노트, 핸드백, 약 들이 한가득이었다. 종류별로 쌓아놓던 중 엄마의 노트를 펼쳐보았다. 꾹꾹 눌러쓴 엄마의 필체가 따스해 보였다. 가족들의 연락처가 보인다. 이름만 들어본 외가 친척들의 오래된 전화번호가 가득했다. 건강 상식도 적혀있다. 혈압으로 고생하던 엄마는 고혈압에 좋다는 음식 정보를 꼼꼼히 적어 놓으셨다.
‘이그, 살이나 뺐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에 홀로 생각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노랗게 변해버린 노트 페이지를 넘겼다. 정성껏 써놓은 잔잔한 일상의 기록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노트 중간 정도 페이지에 다다르자 장문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일기였다. 엄마의 일기였다.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고뇌, 그리고 어떻게든 이겨내기 위한 결심. 어려움 속에 삼남매에 대한 사랑스러운 감정과 감사함이 묻어났다. 자기 격려서였다. 현실의 어려움 속에 지지 않으려 발버둥 치고 일어서는 엄마의 외침이었다. 그 와중에 유일한 희망이고 행복을 주는 존재가 자식들이었다. 솟구치는 눈물에 한참을 울었다. 이어서 적힌 몇 페이지의 일기도 마찬가지였다. 오로지 자식들에 대한 감사함이 노트 가득히 물들어 있었다. 흐릿해진 시야를 비벼가며 깨끗한 종이 박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하나하나 노트와 메모들을 정성껏 담았다. 노트들을 다 담을 때쯤 커튼을 열고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움츠린 나를 달래듯 가을바람이 등줄기를 시원하게 토닥여 주었다. 어린아이의 상처가 아물도록 정성껏 불어주는 엄마의 입김처럼 가을바람이 위로가 되었다. 가만히 일을 멈추고 창 밖을 보았다. 어느새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삶의 마무리를 자식들을 위해 병상에서 격렬하게 불태우는 엄마처럼.




엄마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정리하며 막연했던 기억의 조각들이 선명하게 자리를 잡아가는 기분이었다. 병상의 엄마를 두고 집을 정리하기로 결정한 후부터 왠지 모르게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 내 무거운 마음에 빛바랜 엄마의 노트는  가슴 뭉클한 감동과 힘을 주었다. 한참을 창밖을 자라보다 작은누이의 문자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함께 저녁을 먹고 누이집에서 잘 예정이었다. 약속 장소를 정하고 짐 정리를 서둘렀다. 다음날 누이와 함께 할 것들을 놔두고 서울 집으로 가져갈 물건들 위주로 정리했다. 대부분이 노트와 메모들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편히 입으시던 옷가지들을 같이 넣었다. 하나 둘 쌓여가던 박스가 승용차 한 가득 실을 만큼 쌓였다. 차에 꾸역꾸역 짐을 싣고 아파트 통로를 올려다보았다. 20여 년을 살아오며 쌓아온 짐 치고는 참 소박하다는 마음이었다. 마음에 쌓인 거대한 엄마의 존재와 대비되었다.

‘참! 검소하게 참으며 사셨네...’

스치는 생각에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바퀴벌레 많지?”
식당에 마주 앉아 커다란 불판에 닭갈비를 섞으며 누이가 말했다. 
“생각보다 적던데. 누이가 자주 챙겨서 눈치보나 봐”
“자주 가긴. 한 달에 한 번 갔는데. 엄마 없는 집은 들어가기 싫더라”
“그렇긴 하지...”
마음은 다 똑같은 듯했다. 불판을 내려보던 누이와 나는 동시에 고개를 들고 눈이 마주쳤다. 순간 웃음이 터졌다. 
“엄마가 우리 보면 무슨 드라마 찍냐? 참 청승도 잘 떤다고 하시겠다”
“하하. 정말 그래. 멀쩡히 잘 계신 엄마 두고 뭐가 그리 울적한 지. 술 한 잔 할까?”
익어가는 구수한 닭갈비 냄새에 술을 주문했다. 시원한 맥주를 시원하게 마셨다. 
“짐은 얼마나 돼? 정말 사람 안 불러도 돼?”
“괜찮을 것 같아. 가전제품 몇 개 하고 가구 몇 개야. 냉장고 옮길 때만 누이가 조금 도와주면 될 것 같아. 손수레 빌려 온 거로 천천히 하면 돼”
“막내가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다칠까 걱정이다”
“걱정은 무슨. 큰누이는 내일 몇 시에 온데?”
“아마 점심때쯤 올 것 같은데. 거리가 있잖아”
“버스로 오려면 오래 걸리긴 하지. 그냥 내가 하면 되는데 굳이 내려온다고 무리하네”
“그래도 와야지. 우리 삼남매 같이 정리하는 것도 의미가 있으니까”
“허긴, 정든 집인데..”
“고생도 많았고, 한편으로는 그 집 들어가고 엄마 누우셔서 싫기도 해”
“엄마가 아셨나 봐! 꼭 알고 마련하신 집 같아”
“신기하지 정말. 막 싫다가도 딱 엄마 생활하시기 좋았던 집이라 고맙기도 하고”
“누이가 생각이 많겠다. 아쉬움도 제일 클 것 같고”
“아쉬울 것 있겠어. 그냥 저렇게 누워서라도 우리 곁에 있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지”
“그나저나 혼자 드라마 찍을 곳이 없어져서 어쩌나?”
장난스래 나는 말했다. 엄마 집을 들릴 때마다 엄마 생각에 홀로 울다 오는 작은 누이를 보며 큰누이와 나는 드라마 찍는다는 표현으로 달래곤 했다.
“드라마는 무슨... 내일 봐봐! 언니는 더 찍을걸?”
“우리 셋이 같이 찍겠다. 내일은. 오늘 나도 정리하다 보니 가슴이 먹먹하더라고”
“어쩔 수 없지. 다른 분들 얘기 들어보니 돌아가시고 나서 정리한다는데 우리는 미리 하는 거니까”
“이것도 엄마가 배려해 주시는 것 같아”
“참 이쁜 엄마야!”
도란도란 술잔을 기울이며 오랜만에 누이와 둘이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일찌감치 누이와 나는 엄마 집으로 향했다. 남아 있는 짐들을 함께 둘러보며 정리를 시작했다. 전날 보관하려 차에 실어 놓은 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버릴 것들이었다. 누이는 주방을 정리하고 나는 나머지 짐들을 정리해서 1층 쓰레기장으로 옮겼다. 점심때쯤에는 정리가 대부분 마무리되었다. 텅 빈 집에 나란히 서서 멍하니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 얼마 안 있어 큰누이가 시원한 음료수를 사들고 뛰어들어왔다.
“미안 미안. 아무리 빨라도 이 시간이네. 뭐야! 벌써 다 정리한 거야?”
“언니 어서 와. 오느라 고생했네”
“고생은 무슨. 우리 동생들이 고생했네. 엄청 빨리 정리했네!”
“막내가 짐 내리느라 고생했지”
“아니야. 짐도 많지 않아서 금방 했어”
“둘 다 고생했다. 정말. 텅 빈 집을 보니 마음이 이상한데?”
“이상하지? 엄마는 도대체 어디 가신 거야! 집 나두고”
“그러게, 노인네 정말 왜 거기서 누워 계신다니.”
모두 말문이 막혔다. 어느새 누이들은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어떤 말도 필요 없는 때가 있는 듯했다.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들이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겪어가야 하는 일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잠시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름의 추억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으리라. 고맙게도 마음에 새겨진 그 시간들은 지우려 한다 해도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엄마는 최고의 추억들로 채워주셨다. 사이좋게 삼남매가 엄마의 공간에 함께 서있는 것이 엄마가 노력해 온 결과물이었다. 소소한 쓰레기들을 정리하고 우리는 집을 나섰다. 쓰레기장에 쌓아놓은 폐가전과 가구들을 보며 누구라 할 것 없이 멍하니 마음을 추수렸다. 엄마의 손 때 묻은 물건들이 거리에 쌓여있는 모습에 무거운 마음이 우리를 짖눌렀다. 그리고 나는 기억해두고자 여기저기 사진을 찍어두고 출발했다.


삼남매는 커다란 마디를 새겼다. 눈 앞에 있던 엄마의 공간을 모두 마음속으로 새겨 넣은 것이다. 그리고 모두의 결심이기도 했다. 자식의 욕심으로 엄마를 고생시키지 말고 언제든 보내드리자는 결심. 손 끝으로 느껴지는 사랑하는 이의 체온을 더 이상 느낄 수 없게 된다는 것은 정말 커다란 아픔이었다. 하지만 언제고 겪을 아픔을 삼남매는 스스로 정해서 마주했다. 서울로 올라가는 차 안에서 찍어둔 엄마의 살림살이들을 보며 생각했다.


‘엄마가 친구들을 통해 때를 만드셨나 보네... 자식들이 더 성장할 수 있는 마디를 스스로 새길 수 있도록...’


그렇게 엄마가 쌓아온 사랑의 궁전은 삼남매의 성장을 위한 마디를 새겨주고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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