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능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선일 Jul 29. 2020

28. 경칩

“능인(能忍) = 잘 참는 사람”

차도가 없었다. 달이 차오르 듯 엄마의 온몸이 노랗게 물들어갔다. 가슴으로부터 연결된 기계는 일정한 소리를 울리며 몸 상태를 알려주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있었다. 3월 5일 저녁 엄마를 뵙고 들어온 나는 방에 조용히 홀로 앉았다. 책상 옆에 놓인 엄마의 사진이 밝게 웃으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1년 전 준비한 엄마의 영정 사진이다. 휴대전화의 사진들을 정리하다 보게 된 사진이었다. 노트북에 저장해 놓은 가족사진들을 다 둘러봐도 이만한 사진이 없었다. 뭐에 홀린 듯 인터넷을 검색해서 영정 사진 제작을 의뢰했다. 희망이의 돌 때 찍은 엄마의 사진이 영정 사진이 되었다. 아이의 건강한 삶의 시작을 축하하는 돌잔치 때 찍은 사진이 엄마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한 영정 사진으로 쓰일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그렇게 만든 사진은 1년이 넘도록 방 한편에서 우리 가족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혼자 있을 때 사진 속 엄마를 바라보며 말을 걸곤 했다.

‘고생 많으시지. 우리 엄마. 많이 힘들텐데 잘도 웃고 계시네...’

이쁘게 웃는 모습에 어떤 일이 있어도 마음이 풀리곤 했다.

주치의로부터 일주일이라는 얘기를 듣고 난 후로 매 순간 긴장의 연속이었다. 가까운 친지분들께도 소식을 전했다. 지인들을 잠시 만나는 자리에서도 나는 엄마가 가실 것 같다는 소식을 전했다. 달빛 아래 시원하게 홀로 울고 난 후로는 이상할 정도로 차분한 마음이 유지되었다. 영정 사진을 바라보며 여기저기 장례 준비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알아보고 정리했다. 어느 정도 정리를 마치고 사진 옆 달력에 시선이 갔다. 3월 6일 칸 안에 작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경칩(驚蟄)’이라는 글자였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 다음 날이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일 가시려나!’

분명 몇 시간 전 간호사에게 일주일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주치의의 진단을 전해 들었지만 경칩이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가시겠구나!’라는 생각이 밀려왔다. 경칩은 기나긴 겨울을 보내고 새로운 봄날을 여는 때였다. 긴 인내의 겨울을 이겨내고 힘차게 새로운 삶을 시작하시기 좋은 날이라는 생각이 밀려왔다. 홀로 생각이 깊어졌다. 긴장 속에 차분히 나를 챙겨주고 있는 아내에게 나는 말했다.

“자기야. 내일이 경칩이네!”
“경칩? 개구리 깨어난다는 그 날?”
“어. 내일이 경칩이야. 엄마 내일 가시겠다!”

거실에 있던 아내는 방으로 걸어 들어와 말없이 듣고 있었다. 어떤 말을 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기운 내.... 자기가 힘내야지”

아내는 나를 격려해 주었다. 서로 말을 아끼고 함께 조용히 엄마의 사진과 달력을 번갈아 보았다. 아내는 가만히 내 어깨 위에 손을 얹고 토닥거려주었다. 갑자기 희망이가 뛰어 들어온다. 엄마, 아빠가 안 보이자 거실에서 혼자 춤을 추다 뛰어온 것이다. 애교 넘치는 희망이 덕분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푸근한 긴장감 속에 잠을 청했다.

경칩인 3월 6일 오전. 아내와 희망이가 먼저 집을 나서고 나는 11시경 병원으로 향했다. 간호사에게 상황을 물으니 아직은 괜찮다고 했다. 엄마에게 입을 맞추고 침대 옆에 앉았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문득 침대 옆 기계에 시선이 향했다. 산소포화도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서둘러 간호사를 호출했다. 혈압을 체크하고 간호사가 이상하다는 듯 바쁘게 움직였다. 간호사의 호출에 달려온 주치의가 말했다.

“갑자기 떨어지네요. 위험합니다. 생각보다 빠른데요”
“모두 연락할까요?”
“.... 네 그러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잠시 생각하던 주치의는 연락을 취하는데 동의했다. 오전에 이미 연락을 했던 누이들에게 다시금 연락을 했다. 생명의 묘한 끈을 느꼈다. 누이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조카들을 데리고 이미 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누이들은 오전 연락을 받고는 고민하다 바로 직장에 얘기를 하고 준비를 시작했던 것이다. 마음을 쏟는 만큼 울리는 뭔가가 있는 듯했다. 아내에게 연락을 했다.

아내에게 소식을 들은 장모님이 제일 먼저 오셨다. 친구처럼 형제처럼 마음을 나눠 온 엄마와 장모님이었다. 장모님은 결혼 후 십수 년을 온 마음을 다해 엄마를 챙겨 오셨다.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옷부터 몸에 좋은 보약까지 때를 가리지 않고 수시로 택배를 보내셨다. 두 살 차이의 장모님은 매번 “사돈이 아니고 우리는 자매 같은 관계야!”라며 엄마의 병환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하셨다. 애틋한 두 엄마가 얼굴을 마주하고 눈물짓는 모습이 가슴 깊숙이 명화처럼 새겨졌다.

“고생하셨어. 정말 고생하셨어. 아들은 내가 잘 돌볼 테니 걱정 말고 쉬세요. 사돈!”

한참을 마주하고 조용히 눈물짓던 장모님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성껏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그렇게 인사를 나눈 장모님이 가시고 한참을 엄마 옆에 앉아 있었다. 장모님이 오신 순간부터 엄마는 신기할 정도로 또렷한 눈빛으로 고개를 돌려가며 바라보고 계셨다. 두세 시간 동안 엄마에게 하고픈 얘기들을 모두 쏟아냈다. 나의 요청에 엄마는 중간중간 눈을 깜빡거리며 대답을 해주셨다.

“엄마! 이제 새로 시작하실 때가 되었나 봐. 아들 많이 아쉬워. 정말 많이 아쉬워. 그래도 괜찮아. 엄마가 원하시는 데로 신나게 행복하게 새로 시작하세요.... 그리고 너무너무 사랑해. 엄마!”

조용히 또박또박 엄마의 눈에 빨려 들어가듯 바라보며 말씀드렸다. 맑은 눈빛으로 엄마는 내 눈을 비추며 들어주셨다.

오후 4시경 아내와 희망이가 도착했다. 희망이는 할머니를 안고 비벼대며 한껏 마음을 표현했다. 손주의 애교가 좋으신지 엄마는 고개를 바쁘게 움직이며 받아주신다. 잠시 아내를 두고 희망이를 데리고 1층 로비로 내려왔다. 어느새 시간은 5시가 넘었다. 병원 로비의 커다란 시곗바늘을 보며 나는 혼자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식구들과 인사 나누고 8시쯤 가시려나!?’

문득 드는 예감과 함께 나는 장례업체와 연락을 취했다. 절차에 대한 설명을 다 듣고 로비에 희망이와 앉아있을 때 작은 누이와 조카들이 도착했다. 그리고 30분 후 큰누이와 조카가 도착했다. 누이들은 이미 오는 차 안에서 한바탕 눈물을 쏟아낸 뒤라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애써 웃으며 인사를 하고 저녁 7시가 조금 넘어 온 식구가 다 모였다. 누이들이 오기 전 아들의 수다를 다 듣고 난 뒤 엄마는 며느리가 읽어주는 평소 좋아하던 책 이야기를 한참 동안 들으셨다고 했다. 좌우로 누이들은 엄마를 감싸고 사랑을 표현하느라 바빴다. 조카들도 한 명씩 할머니와 눈빛을 마주하고 사랑을 표현했다.

가만히 천정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이 의연하다. 평온함 속에 맑은 눈빛이 가슴을 뚫고 들어올 듯 빛나고 있다. 평소에 느끼던 힘겨움이 아니었다. 후회 없이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치고, 모든 두려움을 이겨낸 듯한 상쾌함이었다.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모두가 인사를 드리고 차분히 서로를 느끼며 어느새 8시가 되었다. 침대 옆 기계가 보인다. 떨어진 채로 일정하게 유지되던 산소포화도가 조금씩 더 떨어지고 있었다. 간호사를 불렀다. 간호사는 기계를 확인하자마자 주치의를 호출했다. 다가온 주치의가 엄마를 살피고는 조용히 내게 말했다.

“준비하셔야 할 것 같아요!”

눈물을 한껏 머금은 눈으로 가족 모두가 엄마를 애워쌌다. 온 힘을 다해 사랑을 표현하는 자식들을 한 명 한 명 따스한 눈길로 바라보시고 엄마는 평온하게 눈 감으셨다. 입가에 푸근한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기계 화면의 파동들이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하얀 커튼이 쳐졌다. 엄마를 감싸고 있던 황금빛 달빛은 사라졌다.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새하얀 도화지를 펼쳐놓은 것처럼 뽀얗고 하얀 혈색으로 평온히 누워계셨다. 커튼 속에서 주치의와 마지막으로 사망시간을 확인하는 순간에도 엄마의 손끝에 따스함이 느껴졌다. 금방이라도 일어나실 것 같은 모습이었다.   
 
사랑을 듬뿍 머금은 채 엄마는 기나긴 인내의 얼음을 깨고 새로운 세상으로 출발하셨다. 꿈에 본 그 아름다운 바다가 떠오른다. 빛나는 바다 위. 눈부신 햇살보다 더 빛나는 미소로 사랑하는 자식들과 손주들의 배웅을 받으며 항해를 시작하는 엄마의 모습이 그려진다.

“사랑한다 얘들아! 너무너무 고마워!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한다!”

드넓은 바다에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듯 커다란 엄마의 목소리가 울리는 듯했다.


그렇게 봄이 시작되는 경칩에 엄마와 우리 모두의 새로운 항해가 시작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27. 달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