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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일 Jul 31. 2020

29. 여행

“능인(能忍) = 잘 참는 사람”

서울 강남의 오래된 병원 장례식장. 엄마의 빈소가 차려졌다. 어디선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보내준 조화가 입구를 장식한다. 일 년 넘게 함께 지내온 엄마의 영정 사진이 자리를 잡았다. 사진을 감싸고 하얀 국화들이 수북이 모여 활짝 핀 얼굴들을 서로 비벼대며 날개 모양을 하고 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활짝 웃는 엄마가 날개짓 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유의 향냄새가 빈소를 가득 채우고 있다. 가족들은 모두 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장례를 도와주는 상조 회사 직원은 한편에 자리를 잡고 이것저것 챙겨주느라 바쁘다. 덩그러니 비어있던 빈소에 필요한 것들이 하나씩 자리 잡았다.

삼남매는 영정 맞은편 벽에 기대앉아 멍하니 엄마의 사진을 보고 있었다.

“엄마가 참 이쁘게 주무시는 것처럼 가셨어. 뽀얀 얼굴로...”

침묵을 깨고 작은 누이가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다 나는 대답했다.

“정말 이쁘더라. 우리 엄마. 일어나서 부를 것 같은 데 가셨네”
“좀 틀려 보였어. 예전에 돌아가시는 분들을 몇 번 봤었는데 그때 본 모습이랑 뭔지 모르게 틀려 보였어”
“그래? 어떤 게?”
“음... 정말 편해 보이셨거든. 엄마는. 다른 분들은 좀 경직된 것처럼 보였었거든”

혼자 눈물 흘리며 듣고 있던 큰누이가 눈가를 닦으며 말했다.

“노인네. 피부가 끝내주잖아. 이그. 뭐 그리 급하게 가신데...”
“언니도 못 말려. 얼마나 고마워. 자식들하고 손주까지 모두 기다려주시고 가셔서. 나는 정말 고마워. 누구 하나라도 엄마 가실 때 얼굴 못 보고 보내드렸으면 한 맺혀 제대로 살았겠어! 정말 고마운 엄마야!”
“그럼 그럼. 고맙지... 그래도 빨리 가셨어! 노인네 웃기는 이쁘게도 웃고 계시네”

엄마에게 앙탈 부리듯 던지는 큰누이의 말에 무거웠던 삼남매의 마음이 풀리는 듯했다. 말은 어떻게 해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영정 사진을 바라보며 앉아있는 현실이 믿기지 않는 것이 사실이니까. 오후부터는 앉아있을 틈이 없었다. 가족 친지들과 조문객들이 밀려왔다. 아들인 나는 상주로서 오는 분들께 하나하나 설명을 하고 인사드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후 늦은 시간 예정되어있던 입관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입관을 20분 남기고 상조 회사 직원이 준비할 것을 알려주었다. 입관식에 함께 할 가족들과 지인들은 직원의 안내를 받아 이동했다. 참관실에 들어서니 유리창 너머에서 의전팀들이 입관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안내를 받아 나와 누이들은 입관실 안으로 들어갔다. 평온한 표정의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눈물을 훔치며 누이들은 엄마에게 인사했다. 언제나처럼 나는 엄마에게 입을 맞추고 인사를 드렸다. 의전팀의 안내로 입관식이 진행되었다. 노란색 수의가 엄마를 감싸기 시작했다. 아들인 나는 틈틈이 엄마의 얼굴을 쓰다듬고 비벼가며 의전팀의 안내에 따라 수의 입혀드리는 것을 도와 드렸다. 수의를 모두 입혀드리고 얼굴을 감싸기 전 의전팀은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게 안내해주었다. 가족 친지들 모두 마음을 다해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인사를 드렸다.

“엄마. 고생 많으셨어요! 우리들 걱정 마시고 신나게 시작하세요. 이 아들 성장시켜주시느라 참 오랜 시간 참고 참으면서 고생 많으셨어요. 너무나 고맙고 사랑해요. 엄마. 멋지게 원하시는 데로 행복하게 살고 계세요. 아들 열심히 행복하게 잘 살고 다음 생에 또 엄마 아들로 만날 거니까... 엄마 사랑해. 사랑해요...!”

그토록 덤덤히 장례를 치르고 있었지만 순간 눈물이 고였다. 여기저기 엄마의 얼굴에 입을 맞추고 얼굴을 가렸다. 의전팀은 차분히 관으로 모시겠다고 말했다. 의전팀의 지시에 따라 관으로 모시는데 엄마의 상체가 들어가질 않았다. 당황한 의전팀들이 서로 마주 보며 곤란해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말했다.

“그러게 진작 살 좀 빼시라니까. 우리 엄마 튼튼해서 관도 작네..”

엄숙한 분위기 속에 엄마의 모습과 나의 말에 입관실에 웃음이 번졌다.

“팔을 가슴 쪽으로 모으면 안 되나요?”

나의 질문에 의전팀은 괜찮다고 그렇게 해보자고 말하며 다시금 관으로 모셨다. 다행히 편안히 관 속에 엄마는 누우셨다. 가시는 순간까지 자식들 마음을 풀어주시려 하는 것 같았다. 진땀을 빼고 입관을 마친 의전팀이 말했다.

“고생하셨어요. 그나저나 어머님이 오래 누워계셨다고 들었는데 신기하게도 체구가 그대로 세요. 대부분 장기간 누워계시면 살이 많이 빠지시는데...”
“그쵸. 3년 넘게 누워만 계셨는데 얼굴도 몸도 너무 이쁘게 지내셨어요. 관에 껴서 고생시켜드렸네요!”
“아니에요. 입관실에서 매번 무거운 분위기로만 하다가 오늘은 덕분에 즐거운 마음으로 모신 것 같아 감사합니다”
“저희가 감사하죠. 고생하셨어요”

마지막 인사를 잘 마무리했다. 나는 항상 마음으로 다짐했었다. 즐겁게 행복하게 엄마를 보내드리겠다고. 그리고 입관식의 에피소드는 내게 고마운 추억이 되었다.

입관 이후의 장례 일정은 빠르게 지나갔다. 찾아주신 손님들을 분주히 대접하고 인사를 나누며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발인 전날 밤 조용해진 빈소에 홀로 앉았다. 식탁들 사이로 쪽잠을 자고 있는 가족들을 바라보다 엄마 사진에 시선이 고정됐다. 사진 옆 국화들은 마지막 힘을 다해 활짝 피어있었다

‘엄마! 대단한 인생을 사셨어. 그러고 보면 엄마가 아들 가르치느라 20년 넘게 병과 싸우셨네. 대단하세요. 엄마 덕분에 아들이 마음도 바꾸고 감사함이 뭔지도 알게 되고. 참 고마운 우리 엄마. 이제는 아프지 말고 가르쳐주셔요. 참는 것이 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엄마는 너무 참으셨어. 몸도 마음도... 이제 자유자재로 사셔요... 그나저나 새끼들 배웅이 맘에 드셨는지 모르겠어요...!’

마음이 울렸다. 정적 속에 엄마의 미소가 마음 깊숙이 손길을 뻗어왔다. 푸근한 피로감이 몰려와 잠시 눈을 붙였다.

오전 일찍 발인식을 마친 우리는 빈소를 정리하고 화장터로 향했다. 화장터는 장례식장에서 30분 거리에 있었다. 맑은 하늘 아래 피곤한 눈을 비벼가며 가슴에 엄마의 영정사진을 안고 화장장에 도착했다. 미끄러지듯 전진하는 관을 따라 로비로 들어갔다. 우리에게 배정된 나름의 이름이 적힌 화장로 입구로 들어간다. 화장기를 볼 수 있게 작은 유리창이 있고 그 옆으로 커다란 문이 있다. 그 공간에서 엄마를 모신 관을 중앙에 자리하고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잠깐의 인사를 마치자 커다란 문이 열리고 화장로 안으로 모셔졌다. 유리창 너머로 엄마의 관과 화장을 진행하는 직원들이 보인다. 우리에게 예를 갖춰 인사를 하자 거대한 화장기에 관이 들어가고 화염이 일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불길은 엄마를 감싸버렸다. 거대한 불꽃을 내뿜으며 우주선이 출발하 듯 엄마는 꽉 끼는 목관에 몸을 싣고 불길에 감싸여 어딘가로 떠나셨다. 그야말로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여행을 가신 것처럼 보였다. 70여 년의 위대한 역사를 만든 엄마의 육체는 불길에 공기 속으로 스며들고 두 시간 후 하얀 뼈가루만이 우리에게 전해졌다. 이 엄마의 유골은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인생 여행의 거점이 되고, 원점이 될 것이다.

자그마한 유골함을 소중히 품고 서울 근교의 평화공원이라는 납골당으로 향했다. 입구부터 개화를 앞둔 벚꽃의 행렬이 화려하다. 밝은 대리석 건물에 들어서서 안치용 유골함에 옮겨 모셨다. 안치 장소는 건물 뒤편의 유리창 바로 옆으로 선택했다. 엄마를 모셔 놓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활짝 핀 개나리가 길게 늘어서 있고, 그 뒤로 울창한 소나무들이 즐비하게 숲을 이루고 있었다. 삼남매는 만족스러웠다. 맑은 하늘과 녹음, 노란 개나리에 감싸여 엄마를 모시게 되어 너무나 감사했다.

며칠에 걸친 배웅이 마무리되었다. 햇살이 눈부신 주차장 옆 벤치에 가족들과 함께 잠시 앉아 멍하니 엄마를 모신 납골당 건물을 바라보았다. 따뜻함이 맴돈다.

엄마도 우리들도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었다. 십수 년을 트라우마로 고민했던 3월의 봄날은 엄마 덕분에 새로운 시작의 마디로 전환되었다. 참 잘 참아오셨다. 그만큼 행복한 여행이 되실 것은 분명하다. 엄마의 여행을 마음껏 응원해드리고 싶다. 나도 병상 수업으로 배워온 마음의 가치를 소중히 해서 여행을 시작한다.

언젠가 만날 그 날!
행복한 여행의 기록을 엄마와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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