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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일 Jul 25. 2020

27. 달빛

“능인(能忍) = 잘 참는 사람”

2월의 시간은 짧았다. 불과 2, 3일 차이지만 너무 짧게 느껴졌다. 뭔가 하다 만듯한 기분마저 든다. 배고파 할머니와의 대화 후 나는 마음을 정했다. 언제든 엄마가 원하실 때 새롭게 시작하실 수 있도록 힘껏 응원하겠다고.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난 뒤 차분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나의 마음을 아내에게 얘기했다. 며칠 뒤 아내는 장모님께서 들려주신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우리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일을 엄마가 말씀해주셨어”
“어떤 얘기?”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기억하지?”
“그럼. 당연히 기억하지”
“할머니가 90세가 넘어서 돌아가셨잖아?”
“오래 사셨지. 장모님이 고생 많이 하셨잖아? 할머니 거동을 못하셔서”
“고생하셨지. 근데 엄마가 그러시더라. 할머니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지인들과 대화를 하셨는데 그런 말을 들으셨데”
“어떤 말?”
“엄마가 붙잡고 있다고. 보내드리라고”
“정말?”
“첨에는 엄마가 뭐라 하셨나 봐. 멀쩡히 잘 계신 어머니를 왜 보내라 마라 하냐고”
“그럴 수 있지. 나 같아도 그랬겠다”
“근데 자꾸 그 얘기가 머릿속에 맴돌았나 봐”
“장모님이 힘드셨겠네!”
“힘들지. 수발드는 것도 힘들지만 그런 생각하는 것이 좀 그렇게 느껴질 수 있잖아. 근데 할머니 돌아가 시기 전날 엄마가 마음을 정하셨데”
“마음을 정하셨다고?”
 
마음을 정하셨다는 아내의 말에 순간 나는 놀랐다.

“어. 돌아가시기 전날 할머니 우유 챙겨드리고, 목욕시켜드리고 하면서 문득 생각이 드셨나 봐. ‘어머니 건강히 잘 사시다 언제든 원하실 때 새로 시작하세요. 이 며느리가, 아니 이 딸이 언제나 응원할게요’라고”
“그런 생각을 하셨구나...”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나니 엄마도 편해지셨다고 하시더라. 그리고 그날 밤 잠자리에 드셨는데 새벽에 기분이 이상해서 서둘러 할머니 방으로 가보니 돌아가시기 직전이었던 거야”
“그래 맞아. 그때부터는 나도 기억하지. 장모님 전화받고 새벽에 달려갔으니까”
“엄마에게도 신기한 일이었나 봐. 당신이 마음을 그렇게 정하고 기다렸다는 듯 할머니가 가셔서 많이 놀라기도 하셨고”
“신기하네. 그나저나 장모님은 며느리지만 딸 이상으로 지극 정성 모셨지”
“그럼. 엄마가 할머니 때문에 너무 시집살이를 많이 하셨지. 근데 나중에는 할머니가 딸들 다 필요 없고 엄마랑 살고 싶다고 하셨다고 그랬거든. 진짜 모녀지간으로 사신 거야”
“정말 대단해! 장모님 정성은”
“그러게. 어느 하나 소홀히 하지 않으셨으니까. 할머니가 또 얼마나 깔끔한 성격이셨는지. 자기도 알지”
“정말 깔끔하셨지. 90세가 넘어서도 그러기 쉽지 않을 거야”
“그걸 엄마가 다 챙기신 거니까. 삼시세끼에 목욕에 대소변도 다 챙겨드리고... 대단해. 대단해”
“그나저나 장모님도 할머니 가실 때 그런 일을 겪으셨다니 소름 돋네”
“그러게. 자기 얘기 듣고 엄마랑 통화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말씀드렸는데 갑자기 그런 얘기하셔서 나도 놀랐지”
“아무튼 고마운 얘기야”

아내가 전해준 장모님의 경험담에 나는 조금 용기가 생겼다. 같은 고민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격려가 되는 것 같다. 편안히 계신 엄마를 내 마음에서 보내드리니 마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고민스러웠으니. 어렵지만 속깊은 이해는 마음을 움직였고 나는 마음을 정할 수 있었다.

삼일절 휴일을 보내고 학생들은 새 학기로 설레는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풋풋한 향기가 온 세상을 뒤덮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새로 시작하듯 싱그러웠다. 희망이가 학교를 가고 가만히 방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마시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기 화면에 햇살요양병원이라고 표시되었다. 두 번째 병원 전화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아드님. 지금 좀 오셔야 할 것 같아요!”
“어디 많이 안 좋으신가요?”
“네. 좀 심각해요. 지금 오실 수 있을까요?”
“바로 갈게요...”
어디서 오는 침착함인지 모르겠지만 차분히 통화를 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두근거리는 심장소리에 운전을 하며 연거푸 담배를 입에 물었다. 가라앉질 않는다. 마음이 고동쳤다. 부랴부랴 도착한 병원. 하룻밤 사이에 엄마의 얼굴이 노랗게 변해 있었다. 병실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주치의가 보였다. 나를 보자마자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다급히 설명을 해주었다.

“황달이에요. 좀 심각해요. 이런저런 조치를 하겠지만 많이 어려운 상황이에요”

멍하니 듣고 있었다. 지난 연말에 겪으신 열병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최대한 조치하기 위해 수혈 동의서도 작성했다. 덤덤히 간호사실 너머 엄마를 바라보다 나는 물었다.

“얼마나 사실 수 있을까요?”

주치의와 수간호사는 서로를 바라보며 머뭇거리다 주치의가 말했다.

“수혈도 하고 항생제도 투여하겠지만 일주일 정도 생각해요”

일주일. 황달과 장내 출혈, 고열까지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다.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와 함께 엄마 곁으로 갔다. 온몸이 노랗게 변해있었다. 침대 옆으로 매달린 소변통에는 검붉은 피가 소변 속에 의미심장하게 맺혀있었다. 언제나처럼 엄마에게 입을 맞추고 물휴지를 꺼내 닦아 드렸다. 힘겹게 눈을 뜨시며 아들을 보시고는 다시 잠드셨다. 수액과 항생제 링거가 바쁘게 엄마의 몸속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었다. 고마움이 느껴졌다. 덕분에 엄마가 조금이라도 편히 계시는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병원을 나섰다. 주차장에 서서 누이들과 아내에게 소식을 전했다. 깊은 한숨 속에 모두와 연락을 마치고는 집으로 향했다.

정신없이 오후가 지나갔다  황달이 뭔지, 해결방법이 있는지 인터넷에 검색해가며 분주히 알아봤지만 의미 없는 일이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늦은 오후 다시금 병원을 찾았다. 엄마를 물들인 노란빛은 색을 더하고 있었다. 잡티 하나 없이 뽀얗고 하얗던 엄마의 피부라 노란빛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침대 옆에는 자그마한 기계가 설치되었다. 심장박동과 산소포화도 등을 보여주는 기계였다. 나도 모르게 자꾸 바라보게 되었다. 다행히 정상적인 신호가 반복되고 있었다. 가만히 엄마를 바라보다 나는 말씀드렸다.

“고생 많으셨어요. 엄마. 힘내서 잘 이겨내셔요. 아들 걱정 말고. 엄마 하고 싶은데로 마음껏 하세요. 이제... 사랑해 엄마! 사랑해...”

몇 번이고 사랑한다는 말씀드리고 솟구치는 감정에 앉아있을 수 없어 병원을 나섰다. 가족들에게 상황을 전하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멍하니 스치는 가로등 불빛을 가르며 집으로 향했다. 집 옆 공원을 지나다 신호를 기다리는데 동그랗게 떠있는 보름달이 눈에 들어왔다. 밝게 빛나는 달빛에 엄마의 얼굴이 맺혔다. 순간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어떻게 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에 비상등을 켜고 차를 세웠다. 달빛에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울었다. 온몸이 마를 것처럼 많은 눈물이 흘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정신없이 울고는 차에서 내려 달빛에 취해 가만히 바라봤다.

‘저 보름달이 지면 타오르는 태양이 떠오르겠지. 엄마가 저 보름달에 몸을 싣고 잠시 쉬셨다가 눈부신 태양처럼 떠올라 새로 시작하시려나...’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엄마는 강렬한 석양에 세상이 붉게 물들어가 듯 온몸을 고열로 붉게 물들였다. 그리고 이제 황금빛 달빛으로 물들어 온 힘을 다해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계셨다.


잊지 못할 달빛 추억 하나가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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