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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XIDERMIED GENIUS May 14. 2020

아웃사이더의 구차한 변명

한병철 <시간의 향기>, E-SENS <Sleep tight>를 읽고듣고

텍스트와 사운드는 어떻게 완벽한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기존에 우리가 접해 온 텍스트와 사운드의 결합은 주로 '낭독'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좋은 텍스트 작품을 듣기 좋은 목소리로 읽어내려갔을 때 발생하는 효과적인 전달력이 그 핵심이다. 물론 이러한 결합에는 분명한 위계가 존재한다. 여기서 분명 텍스트는 하나의 본질이자 소재이지만, 사운드는 단지 수단에 불과할 뿐이거나, 소재를 더욱 부각시켜주는 도구로써 작용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어쨌든 한국의 현대 예술에서 책과 음악이 별개의 작품으로 동등하게 존재하면서도, 같은 메시지를 내뿜으며 어우러지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물론 음악을 기반으로 하는 작품에 영감을 받아 쓴 텍스트라든지 반대로 문학 작품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음악들이 있겠지만, 이를 엄밀한 의미에서 '별개의 작품'이라고 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암울한 시대 상황 혹은 사회를 관통하는 문제들이 메시지의 주류를 차지했던 한국사의 '격동의 시대' 들과 달리, 이제는 텍스트와 사운드가 존재하는 장르적인 독립성이 각각 점점 뚜렷해지며, 그에 따라 전달하는 메시지의 방향성 역시 명확하게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철학자 한병철 선생의 <시간의 향기> 를 꾸역꾸역 읽던 중 무심코 꽂은 플레이리스트에서

 E-SENS의 <Sleep Tight>가 흘러나왔다. 

(물론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그때부터 책이, 그리고 음악이 나의 삶에 조금 더 잘 스며들고 있음을 강렬하게 느꼈다. 


한병철, <시간의 향기> 


에서 가장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용어는 ‘시간의 원자화’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 쉽게 말하면, 이제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빨리 살아간다는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바쁘게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시간 그 자체가 빨라졌다는 것이다. '바쁘게 살아가려고 바쁘게 사는 것'과 '빨라지는 시간에 몸을 맡겨 바쁘게 살아가는 것'의 차이를 알겠는가? 삶을 순례자의 길에 비유하자면, 빨라진 시간은 '길 사이의 공간'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린다.  바쁘게 지나쳐버리는 길(시간)에 더 이상 향기는 없다. 사람들은 쉴새없이 뛰어다니고, 함께 천천히 걸어갈 길이 점점 사라진다. ‘시간의 원자화’는 결국 '시간의 향기'를 앗아간다. 향기가 사라진 길들 사이에 남는 것은 결국 ‘공허(void)'뿐.



E-SENS, <Sleep Tight>

는 자전적인 음악이다. 주인공은 가사를 쓰고 노래하는 래퍼 이센스지만, 한편으로 '인생이 뭐 어째 편하게 

흐른 적 없는' 평범한 20-30대의 우리들이기도 하다. 향기가 사라진 시간들 사이에 무의미하게 남겨졌을 때 

나름대로 우리가 선택하는 자가 치유의 방법은 무엇일까. ‘힐링’, ‘감성’ 같은 것들?

 가사에서처럼 오래된 친구와  만나 술 마시며 똑같은 이야기만 계속 반복하고 집에 돌아오고 나면, 삶에 안개처럼 짙게 깔려 있는 그  무지막지한 공허들이 조금 사라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어떤 이들에게는 매우 불편하게 들릴 수 있겠으나, <시간의 향기>를 읽고 나면 우리가 현대 사회에서 그토록 갈망하는 ‘감성’이나 ‘힐링’, ‘느리게 살기’ 같은 것들이 우습게도 그 얼마나 무의미한지  뼈저리게 알게 된다. 이제 세상의 시간이 너무나 빨라져서 걸음을 떼자마자 내 발자취마저 사라지는데 도대체 어떻게 느리게 살며, 또 그 잘난 감성이란 것을 느낄 틈이 없는데 어떻게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거냐고. 

이 문제에 대해 한병철 선생은 정확히 ‘그냥 멈추어 서라’고 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라보아야 한다고.
 갑자기, E-SENS가 노래한 또다른 곡 <독> 이 훅 치고 들어온다.

 “급히 따라가다 보면 어떤게 나인지 잊어가” “멈춰야겠으면 지금 멈춰, 우린 중요한 것들을 너무 많이 놓쳐” 

<시간의 향기> 는 “노동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노예로 만든다.” 라고 주장한다. 노동이 풍족한 삶을 가져다 준다고? <Sleep Tight> 두 번째 verse에서 주인공은 열심히 설명한다. “나사 하나 빠진 삶일지언정 난 다 책임졌다고. 후회도 많이 해 봤다고.” “하지만 결국 돈이면 다 해결되는 것들이더라.” “그래서 나는 돌고 돌다 또 방향을 잃어” 결국 방향을 잃어버린 주인공이 향하는 건 술 몇 잔에 걸쳐 세상에서 겪은 아픔들을 한꺼번에 길바닥에 다 토해내고, 터덜터덜 집에 가서 마주하는 ‘깊은 잠’이다. 누군가는 노동이 가져다주는 보람과 그 열매들에 대해 열변을 토해내지만, 사실 고된 노동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휴식이다.  

이것이 공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종의 해결책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시간과 시간 사이의 빈 공간에서 취하는, 죽음처럼 아름다운 깊은 잠.

살아가며 수없이 마주하는, 알 수 없는 우울함을 지니고 길 위를 배회하는 수많은 이들을 떠올린다. 

예전에 학교 대나무숲 페이지 같은 것들이 한창 활성화되었을 때, 바쁘게 살다 보니까 너무 우울하다고. 힘들다는 글들이 참 자주 보이곤 했다. 흥미롭게도 같은 처지에 놓인 이들의 반응을 자세히 살펴보면, 동질감과 함께 같은 감정들을 공유하는 이들이 꽤 있다는 데에서 비롯되는 안도감, 그리고 그것들을 더 넘어서면 오히려 우울이나 무기력함과는 굉장히 동떨어진 즐겁고 신나는 감정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 “어 저도 그래요” 하는 것만으로는 모자라는지 친구를 불러온다. “이거 너 아니냐” 하면서 @ tag. 그리고 다음 휴일에 술 마시러 놀러가든가, 어디 가까운 곳에 여행이라도 떠나 인스타에 hash tag 그리고 '힐링'이나 'FLEX' 를 외치는 것이다. 


아이고, 나는 '인싸'들의 그런 모습이 꽤 신기하기도 하다. 

술 마시고 여행 다니면 돌아와서 더 피곤하지 않을까. 

어차피 다시 돌아오면 막막하게 빠른 세상인데. 차라리 집에서 한 숨 푹 자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Sleep tight. “피곤하면 화만 더 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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