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GPF동문회 Jun 16. 2020

에코데믹 시대와 (인)문학의 책무

정선영 영문학 박사

작성자 성명: 정선영

GPF 분과: 어문학

GPF 선정연도: 2012년


#1. 21세기 환경전염병그리고 문학     

  2020년 초, 인류는 신종 전염병의 급속한 확산으로 인한 사회생태 시스템의 전복 위기에 맞닥뜨려 있다. 급기야 글로벌 시대라는 말이 무색하게 장기간의 국경 폐쇄와 동일 집단 격리(cohort isolation)까지 경험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마크 월터스(Mark Jerome Walters)는 "신종 전염병들"(Six Modern Plagues)에서 20세기 후반 이후의 전염병은 생태환경의 파괴, 생태적 교란 그리고 인간의 이동성 증가로 인한 환경 전염병(ecodemic)이라고 명명했다.[1] 그리고 라임병, 사스, 광우병 등은 단기간에 급속도로 넓은 지역에 전파된 것으로 이들을 흑사병이나 스페인독감과 같은 기존의 전염병과는 다른, 즉 생태/환경전염병으로 구분한 바 있다. 

  여전히 비주류이기는 하지만, 1970년대 이후 문학비평계에는 자연문학, 자연기 문학, 환경문학, 생태문학 등으로 불리는 생태문학을 대상으로 하는 생태비평(ecocriticism, 또는 환경비평 environmental criticism)이 등장한다.[2] ‘자연’이 문학인들의 예찬의 대상이던 오랜 역사에서 이제는 자연 또는 환경의 역습을 준비해야 한다는 의식이 문학계에서도 일기 시작한 것이다. 

  소로우(Henry David Thoreau)가 "월든"(Walden: Life in the Woods)에서 환경에 대한 관찰자의 입장을 사상가이자 정치가의 사고로 대변했다면, 카슨(Rachel Carson)은 "침묵의 봄"(The Silent Spring)에서 화학 살충제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무분별한 이기(利器)의 사용에 대해 과학자의 입장에서 신랄하게 비판한다.[3] 이로 인해 미국 사회에서는 ‘침묵의 봄’ 파장으로 때 아닌 논쟁과 함께 환경 위기의식이 촉발되었다. 이후 문학가들은 찬사와 관찰 대상으로서의 자연과 창작물로서의 환경문학에 대한 관심을 넘어, 환경위기 시대에 문학의 역할을 고심하고 논의를 개진하기에 이른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났지만 생태문학계의 논의들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환경문제는 아직도 사회적 화두이다. 

  그렇다면 (인)문학은 생존의 기초를 흔드는 생태전염병의 시대에 어떤 역할을 해 낼 수 있을까.  



그림1. 카슨의 "침묵의 봄" 초판본 표지 그림

#2. 심층생태론의 기저와 생태적 인식의 함양     

  2020년 현재 우리가 (인)문학, 그리고 비평의 한 갈래인 생태비평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정체되어 있는 생태문학계의 한계와 반성의 차원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이 혼돈의 상황이야말로 시대를 아우르는 인문학적 진리가 필요해 보이는 시점이기에 시의성을 갖는다. 

  생태비평은 20세기 중반 이후 인류가 처한 환경위기의 근원이 무분별한 환경 파괴와 이용에 있다고 진단하고 인류가 자연을 대하는 인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였다. 논점에 따라 사회 생태론(Social Ecology), 심층생태론(Deep Ecology),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 등이 있지만 그 핵심은 모두 같다. 인간과 자연, 모든 생명체간의 평등과 공존을 추구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 중 심층생태론의 핵심은 자연의 내재적 가치(Intrinsic Value)를 인정해야 하고 일명 “유기적 전체성(Organic Wholeness)”[4]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문학비평의 차원이 아니라 생물학적, 윤리적, 그리고 문학적 가치와 영향을 모색하는 인류를 위한 일종의 철학적 담론이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간섭과 무분별한 개발의 양상은 인간을 포함하는 자연 전체의 질서를 파괴해 왔다. 그리고 기후변화의 문제 등 보다 큰 환경적 문제를 야기하면서 지구의 질서를 유지해 온 모든 유기체에까지 위협을 가하고 있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변화는 없다"  

  (Now or Never) 

 - Henry D. Thoreau -     


  사실 ‘생태학’은 생물학의 한 분과이지만 인류의 삶을 이루는 환경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그 자체로 큰 범위에서의 사회학적 성격을 지닌다. 따라서 생태학의 관점은 인류의 생명 유지와 무관하지 않은 이유로 이론으로서의 과학이기보다 사회학이자 철학적 성격이 짙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존재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필요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환경, 자연, 생명에 대한 접근이기보다 전체론적인 관점으로 견지하는 확장된 논의를 추구하는 분야인 것이다. 

  그러므로 기본적으로 생태비평은 인문학의 하위 분야에 속하면서도 사회학으로서의 생태학적 위기의식과 생태적 인식(environmental awareness)의 함양이 시급한 문제라는 인식이 그 기저에 있다. 

  생태문학이 (더) 필요한 시대는 생태계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바로 지금과 같은 시기일 것이다. 좁은 의미의 생태적 환경이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인간과 자연, 생명체 전체의 공생을 위한 의식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미래의 시민들을 양성하는 일은 (인)문학의 역할이다. 

  비평가들은 이미 현재의 생태적 위기 상황에서 문학이 해야 할 역할과 책무를 강조해 왔다. 러브(Glen Love)는 “오늘날 문학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위협받는 자연 세계 속에 존재하는 인간의 존재에 대하여 충분히 고려할 수 있도록 인간 인식의 방향을 돌리는 것이다”[5]고 주장했고, 슬로빅(Scott Slovie)은 “근래의 자연문학(nature writing)의 현안은 문학을 통해 자연에 대한 독자들의 인식 변화를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지, 환경적으로 건전한 행위를 어떻게 주지시킬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6]라고 지적하며 문학의 역할과 책무가 분명 존재함을 강조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전염병 연구자나 백신을 개발하는 의학, 의료 전문가들의 역할이 우선 중요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대중들의 불안을 잠재우며, 국가적 위기에 대해 빠르게 대응하려는 노력 등 모든 분야에서의 노력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실감하고 있다. 

  그리고 시민의 참여, 생각의 전환, 공동체의 상생을 위한 협력, 미래 세대를 위한 준비 등 인류가 ‘다음’을 위해 할 수 있는 노력들은 모든 개개인의 협력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단적으로 응급환자를 싣고 달리는 앰뷸런스에 길을 내어주는 일도 그 날 그 길 위에 있는 모든 운전자들의 협력이 필요한 일이 아닌가. 인류 전체의 생존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는 인종적, 정치적, 문화적 차이를 막론하고 힘을 합쳐야 한다. 그리고 이 힘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생태적 인식의 발로에서 비롯되는 부분이다. 



실천은 곧 행동의 변화를 의미하며 

이것은 변화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모든 변화는 

그 결과가 단숨에 드러나지 않을 수는 있으나 

의식의 변화가 시작되는 순간은 

실천으로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임계점(critical point)이 된다. 

- "자연이 표정을 바꿀 때" [7]



#3. 인문학인문학적 사고그리고 우리의 책무     

  결국 생태문제는 사회공동체의 모두의 문제이다. 코로나-19 사태도 인류전체의 생존에 관한 문제임은 당연하다. 생태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은 사회 전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심층생태론이 표방하는 내재적 가치의 핵심인 인간과 자연, 동물과의 교감과 공동체 의식은 각국의 지도자와 그 하위 관리자들이 시행하는 물리적인 정치력을 통해 어느 정도 선도가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행동 양식을 변화시키는 첫 단계는 언제나 ‘의식의 전환’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생각’이나 ‘상상력’, ‘의지’ 등은 사실 인문학적 사유에 속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협조와 협력이 결국 공동체의 환경전염병의 확산을 더디게 할 수 있다. 

  에코데믹의 시대에 인문학자, 인문학 연구자, 인문학도들, 그리고 인문학적으로 사유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원론적인 결론이지만, 결국 우리는 우리 각자의 몫을 우선 해 나가야한다. 각자의 생활을 이어가면서 상황을 주시해야만 한다. 인간의 역사에서 위기를 극복했던 시기에는 언제나 시민들의 참여와 헌신이 있었다. 지금 한국 사회 공동체의 단면처럼, 병원에서, 공항에서, 관공서에서, 그리고 모든 일터에서, 가정에서... 프랑스 혁명사에서도 그랬고, 조선이 독립하는 과정에서도 이름 없이 큰 뜻에 합류한 시민들의 힘은 언제나 가장 컸다. 

  학문후속세대인 초보연구자로 ‘감히’ 생태비평을 운운하지 않더라도, 사실 우리 모두는 언제나 인문학적 사유를 하는 ‘인문학도’이다. 늘 생각하고, 늘 고민하고, 늘 선택하며 살아간다. 영국의 시인 셸리나 한국인이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와 같은 시민들은 시대의 변화가 필요할 때 저항의식을 드러내는 시와 산문의 창작에 몰입했다. 소로우는 부당한 세금 납부에 대해 비폭력 저항으로 의지를 드러냈다. 전염병 퇴치를 위한 백신 연구에 참여하지는 못하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인문학적인’ 일이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다. 

  생태비평을 공부한 연구자로서는 문학생태계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일이 우선이겠지만,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부분은 사실은 인문학적 사고의 단면이다. 인류를 지속시켜 온 변화의 핵심은 인간의 상상력과 의지, 그리고 실천의 힘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다. 결국 인문학의 책무는 각자의 소시민적 의지를 발동시켜 생태적 인식의 변화를 가능하게 하려는 노력에 착수하고 참여하게 하는 일이라는 의미이다. 


참고문헌

[1]  Walters, Mark Jerome. Six Modern Plagues: How We Are Causing Them. Island. 2003. Print.

[2] 강용기는 뷰얼(Lawrence Buell)이 이 용어 대신 환경비평(environmental criticism)을 사용한다는 것을 밝힌 바 있다(2010 47). 생태학에서 파생된 환경과 관련한 용어들이 아직 대부분 ‘eco-’로 쓰이고 있기에 기존의 생태비평(ecocriticism)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강용기. 「실용주의 환경론과 근본주의 생태론의 접점 모색」. 영어영문학 56.1(2010): 47-64. Print.

[3] Carson, Rachel. Silent Spring (Anniversary) (40TH ed.). Houghton Mifflin, 2002. Print. 카슨에 대해서는 인물사전 등을 참고할 수 있다.

[4] 직접적으로 논의한 생태문학분야의 연구물 참고. 정선영. 「유기적 전체의 지향: 제퍼스와 스나이더의 생태의식」. 문학과환경 12(2), 2013. 239~278. Print. 이 외에 생태문학 이론에 대한 저명학자들의 논의와 저서들이 있다.

[5] Love, Glen A. “Revaluing Nature: Toward an Ecological Criticism.” The Ecocriticism Reader: Landmarks in Literary Ecology. Ed. Cheryll Glotfelty and Harold Fromm. Georgia: Georgia UP, 1996. 225-40. Print. p.237

[6] Slovic, Scott. “Nature Writing and Environmental Psychology: The Interiority of Outdoor Experience.” The Ecocriticism Reader: Landmarks in Literary Ecology. Ed. Cheryll Glotfelty and Harold Fromm. Georgia Georgia UP, 1996. 351-70. Print. p.364

[7] 정선영. 자연이 표정을 바꿀 때: 에코데믹의 시대, 셸리, 제퍼스, 스나이더를 읽다. 북랩. 2020. Print. p.196.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 바이러스로 본 바이러스와 철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