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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코치 Feb 03. 2020

자기발견 DAY 3_손바닥 자서전 특강 제 3강

지금의 당신을 있게 만든 최초의 기억은 무엇인가요?


<어릴적 키우기를 좋아했다>

: 성장, 발전, 개선, 분석


딸래미를 키워서 여왕으로 만들어내는 육성시뮬레이션 '프린세스 메이커', 유소년 야구클럽부터 시작해서 글로벌 스타 야구선수로 키워내는 '실황파워풀프로야구', 다양한 직업선택부터 연애, 결혼, 아이, 내집마련의 꿈까지 이뤄낼 수 있는 인생시뮬레이션 '심즈' 등 어릴적부터 유난히 키우는 게임을 좋아했다. 심지어 RPG게임에서도 주인공 캐릭터 외에 조연까지 모두 균등하게 만렙으로 키워냈었다. 다마고치나 심시티, 문명 같은 게임은 그다지 흥미가 없는걸로 봐서 난 사람을 키우는게 좋았던 것 같다.

어린 딸을 오지로 무사수행보내는 빡쎈 아빠의 게임 <프린세스 메이커>


게임과 농구는 학창시절 유일한 취미였다. 보통 시합하는걸 좋아하는데 나는 연습하는 걸 더 좋아했다. 연습하면 할수록 실력이 나아지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그냥 무작정 연습하기보다 이론을 공부하고 동작을 분석하면서 연습하는 편이었다. 게임에서 캐릭터별 특성과 스킬들을 분석하고 캐릭터간의 상성을 숙지하고 게임을 했다. 그러다보니 어떤 게임이든 조금만해도 금방 핵심을 파악하고 곧 잘했다. 농구도 개인의 움직임과 팀의 움직임에 따라 어떻게 움직이는게 효율적이며 신체적인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분석하면서 연습했었다. 이론을 이해하고 동작에 적용하면 훨씬 숙달이 빨라졌기 때문이다.


요즘 유일하게 하고 있는 모바일게임 <브롤스타즈>



게임속 캐릭터를 키우기를 좋아하는 성향은 곧 나를 성장시키는 습관으로 이어졌고 늘 무언가 새로운걸 배우는 것을 좋아했다. (뭐 하나만 진득하게 배웠으면 지금 이러고 있지 않았을텐데... •᷅  ͟ʖ •᷅  ) 본격적으로 직장생활이 안정화되면서 생활비를 충당하고 남은 잉여월급이 발생하기 시작할 때부터 각종 세미나랑 강연 들으러가는건 내 일상이었고 배움에는 아낌없이 돈을 쏟아부었다. (내가 지금 많이 못배운건 돈이 없어서... • ͟ʖ• )


언제부턴가 나를 키우는 걸 넘어서 누군가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보통은 가르치는 사람이 지쳐서 그만두는일이 많은데 내 경우엔 가르치면서 지치는 일이 없었다. 게임을 가르쳐 줄 때는 전체 게임 스토리부터 주인공의 미션이 무엇인지, 처음 시작하면 뭐부터 해야하고 니 성향에 맞는 캐릭터는 무엇인지 등등 너무 잘가르쳐줘서 무뚝뚝한 내가 친절한 성격으로 종종 오해받기도 했다. 골대에 슛만 더 많이 넣으면 이기는 농구의 룰에서 도대체 패스는 왜 필요한건지부터 상대 선수와 거리에 따라 어떤 움직임을 가져야 유리한건지 등등 농구도 동작 한가지를 이해 시킬 때까지 친구들을 놓아주는 적이 없었다. 코칭할 때도 3~4시간동안 쉬지않고 집중해서 에너지를 쏟아부을 때가 부지기수다. 이렇다보니 오히려 배우는 쪽이 지치거나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가진 능력을 나누는게 좋다기보다 나로인해 누군가가 발전하고 성장하는게 좋다. 내가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된 것 같고 그만큼 가치있게 느껴지는 기분이 좋다. 그래서 그동안 그렇게 책을 읽고 강연을 들으러 다녔던 것 같다. 함께 성장하고 싶어서.




<화가가 되어야 하는 줄 알았다>

: 관찰, 상상, 집요


미술학원에 딸려있는 유치원에 다녔었다. 울엄마는 어릴적 내가 그린그림을 아직도 자랑스럽게 말씀하곤 하신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걸 그려내는 영특한 아이라고 학원쌤이 칭찬섞인 말투로 영업했기 때문이다. 그때 내가 그렸던 그림은 나무 밑 개미굴이었다. 들판에 나무를 그리라고 했는데 다른 아이들은 선생님이 시킨대로 나무를 그리는 와중에 나만 나무 뿐 아니라 땅속에 있는 개미굴과 또아리를 틀고 있던 뱀, 정체모를 돌맹이들, 지층구조까지 그렸더니 다들 나를 신기하게 생각했었다. 그렇게 나는 미술 영재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유년시절 2년동안 선생님이 그리고 만들라는걸 따라한게 전부인데 학창시절 내내 미술실기는 언제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래서 영재교육이 중요한걸까. 그러다 중3때 사생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을 때 나의 미술적 우쭐함은 절정에 이르렀다. 우리 학교의 대표로 서울시 중학생 사생대회에 나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는 내가 어릴적부터 미술학원에 다닌 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다니 정체모를 우월감에 고취되었다.

창경궁 전경 (출처: 구글링)

서울시 사생대회 날, 다들 창경궁으로 모였다. 서울 전지역에서 그림 좀 그린다는 학생들이 다 온 것 같았다. 갑자기 긴장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게, 아무리 똑같은 자격으로 뽑혔다해도 난 미술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에 왠지 쫄렸다. 게다가 사생대회는 제한시간 안에 그림을 완성해야했다. 생각이 많아 느렸던 나는 그림을 완성못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심장이 쫄려왔다. 어디에 앉을까 고민하다 직선과 곡선이 조화로운 창경궁과 저 멀리 보이는 북한산까지 잘보이는 구도로 자리를 잡았다. 자리를 잡는데만 30분이 걸렸다. 부랴부랴 연필로 스캐치를 마치고 채색을 하러 물을 뜨러 가면서 보니 이미 채색을 마치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수돗가에서 눈이 마주친 아이들의 표정은 '시작한지가 언젠데 이제서야 물뜨러오는거지' 라는 표정으로 보였다. 괜한 자격지심에 얼굴이 발개져 물을 뜨려고 물통을 펼쳤다.


'도도독'


물통 펼치는 소리가 나자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한꺼번에 나를 쳐다봤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소리가 나서 쳐다본거겠지만 그땐 예민하고 소심했던터라 쳐다보는 눈길에 몸이 얼어붙었다. 가만보니 '도도독' 소리가 난 내 물통은 아코디언처럼 접혀지는 접이식 플라스틱 물통이었지만 다른 아이들 물통은 달랐다. 양철 양동이, 구획이 나뉜 플라스틱 양동이, 천으로 된 물통 등(구글에서 미술 바케스라고 검색하면 나온다.) 미술 전문가용 이었다. 적어도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아이들 손에 들려진 고급 일제 미술전문가용 붓도 눈에 확 들어왔다.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지면서 도망치듯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림을 차마 그릴수 없었고 작품은 제출하지도 못한채 집으로 와버렸다.


어린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던 접이식 물통


자아가 형성되며 남들과 비교하기 시작했던 사춘기 시절이라 그러려니 하지만 훗날 그때를 생각하면 도망쳐온 걸 다행이라 생각한다. 중학교 졸업하기 전에 미술쌤이 나보고 예고에 진학시켜보는게 어떻겠냐고 부모님께 물어보셨는데, 안가기로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사건이기 때문이다. 어릴적 미술을 잘했던건 예술적 감각이 있어서가 아니라 관찰하고 따라그리길 잘했기 때문이다. 굴곡과 선, 색상을 구분해서 섬세하게 관찰하고 그걸 집요하게 똑같이 배껴내려 노력했다. 그렇게 따라그린 소묘는 좋은 평가를 받은 반면 새롭게 창작하는 작품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창의적 발상과 표현은 부족했던 것이다. 화가로 돈을 벌려면 나만의 그림을 그려야할텐데 나는 그렇진 못했다. 관찰력과 상상력, 집요함이라는 내 강점이 우연하게 어릴적 미술유치원의 경험을 통해 그림으로 발현된 것 뿐이었다.


"자기 삶의 기록은 결국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그 기억이라는 것은 정작 불완전해서 사실과 다릅니다. 아이러니 합니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이것이야말로 자기 기록의 매력입니다. 철저히 자기만의 이야기를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손바닥 자서전 특강, p81)


나는 그 강점으로 그동안 마케팅기획을 해왔고 지금은 비즈니스 코칭을 하고 있다. 사회문화와 사람들을 관찰하고, 상상력으로 가설을 세우며, 가설을 집요하게 검증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쓰면 나는 기획자로 타고났다고 보일진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써내려가는 삶의 기록은 기억에 의존할 수 밖에 없고, 그 기억이라는 것은 불완전하며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기억이라 내 맘대로 짜깁기 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이렇게 나는 또 자존감을 한껏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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