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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 Nov 09. 2020

3천 원치 그리움

Tostada con aguacate


퇴사하고 시간이 많아져서, 잠시 멈추었던 스페인어를 다시 연습하는 걸 노력하는 중이다.

재미있긴 해도 공부는 공부인지라 Netflix보다 쉽게 손이 가지는 않는다. 흑흑흑

과테말라에서 친했던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내본다.


Como estas??? ( 어떻게 지내? )


카를로스와 저녁 먹었냐며 대화를 나누던 중, 그가 먹었다는 Tortillas 라는 단어에 눈이 번쩍한다.

토르티야와 깃든 몇 달 전 기억이 번뜩하고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글로 한 글자 한 글자 쓰면서 그때의 기억을 붙잡아 두고 싶다. 글을 쓰러 간다 총총.


토르티야는 과테말라의 주식이다. 우리로 치자면 흰 쌀밥 같은 거랄까? 

길가 좌판에서 무슨 음식인지도 모르고 이것저것 손가락질해서 사도 토르티야는 함께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가난한 동료 여행자들을 위한 꿀팁은 토르티야는 무한 리필이다!) 

가끔 옆으로 보나 앞으로 보나 너무 티 나게 외국인일 수밖에 없는 동양인 생김새 때문에 

토르티야를 좀 아껴보고자 주지 않는 주인 할머니들도 있지만, 달라고 하면 군말 없이 준다. 

기본 4장부터 시작되는 무한 리필 땅땅땅.


내가 가장 좋아하던 토르티야 음식은 '토스타다 콘 아구아카테' 이다. 

또르띠야를 튀겨낸 토스타다위에 아보카도를 얹어먹는 과테말라식 길거리 음식

어학원 가는 길목에 오른쪽 코가 찌그러진 검붉은 차 트렁크를 열어두고 토스타다를 파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단돈 5 케찰(!)이면 바삭바삭하게 튀겨진 토르티야 위에 싱그러운 아보카도소스가 잔뜩 올려진 토스타다를 먹을 수 있다. 

한 손에 휴지 한 장을 올리고, 토스타다를 집은 뒤 아보카도 소스를 듬뿍 떠서는 척하고 얹어서 건넨다. 

앗, 무조건 "con dodos! (소스 전부 다 얹어 주세요)"라고 외친다.

핫소스에 다진 고수와 마늘까지 찹찹 얹어서 파사삭하고 깨물면 행복을 보장하는 맛이다.


마트에서 쉽게 (그리고 매우 저렴하게) 살 수도 있지만, 

카를로스 이 친구는 토르티야는 토르티야 가게에서만 사는 친구였다. 

카를로스의 쪼꼬마난 딸과 함께 카를로스 집에서 또박또박 걸어가면 토르티야만 파는 가게가 있다. 

모르는 사람은 그냥 지나쳐갈 것 같은 낡은 쇠창살 사이로 토르티야를 부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아니, 이렇게 작은 곳에 사람이 셋이나 들어갈 수 있다고?

퍽 좁은 공간에서 비효율적인 움직임은 허용하지 않는다. 원주민 전통 의상인 색색깔의 옷은 기름때가 바랐다. 세 명의 아주머니들은 빠르고 정확하게 옥수수 반죽을 퍼내고, 동그랗게 말아 촥촥 펴낸 뒤 절절 끓는 철판 위로 탁 반죽을 붙인다.


동글동글 촥촥 탁!

리듬이 생명이다.


세 명이 도란도란 이야기도 할 법한데 토르티야 구워내는 소리 말고는 쇠창살 사이로 바람이 드나들 뿐이다.

계속 바라보다간 없던 환 공포증이 생길 것만 같은 50장은 펼쳐져 구워지고 있는 토르티야를 바라본다. 

그렇게 리드미컬한 토르티야 만드는 소리와 토르티야 구워지는 냄새에 멍 때리다보면 

카를로스가 주문한 30장도 푸르스름한 비닐봉지에 10장씩 착착 포개져 포장된다. 

한 봉지에 10장 들었는데 2 케찰. 하하하하. 

토르티야만 먹으면서 연명하면 곧 부자가 될 것 같지만, 30장을 한 끼니에 먹기 때문에 또 딱히 그렇지도 않다.


과테말라에서는 10장에 2 케찰(300원 정도)인 데다 가는 곳마다 무한 리필이니, 줘도 안 먹었는데.

한국에 돌아오니 문뜩 문자에 쓰인 Tortilla(토르티야) 글자만 읽는데도 토르티야가 그립다.


집 앞 롯데마트에서 냉동으로 사면 5장에 4천 원은 할 텐데, 에잇 

4천 원치만큼은 안 그리운가 보다 흐흐흐.

4천 원치만큼은 안되지만 그래도 한 3천 원치만큼은 그리운 토르티야.



PS. 아보카도 올린 토스타다는 4천 원이면 먹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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