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의 포근한 냄새와 기준
“말 만한 가시내가 부끄라븐줄 모르고, 응댕이는 까고 댕길라카나-”
더블에스오공일이 엘리트 교복 모델이었던 06년도,
중학교 첫 교복부터 할머니는 치마 길이 단속을 시작하셨다.
부모님의 맞벌이로 엄마 딸보다는 할머니 딸처럼 자랐다.
할머니는 계집애는 시집가버리면 남의 집 식구라며 국민학교도 보내주지 않던 시절,
악착같이 고등학교까지 다니셨다.
그분만의 생각과 기준이 분명하셨고, 나는 그 기준 속에서 자라났다.
마시는 물은 정병산 약수터에서 길어와 보리차로 끓여 먹어야 하고,
정월 대보름 부럼은 호두 대신 땅콩도 괜찮은 대신,
동짓날 팥죽에는 지름 1cm로 동글동글하게 빚어낸 새알이 빠져서는 안 됐다.
아무리 절절 끓는 여름날에도 배에는 이불을 꼭 덮어줘야 한다.
손녀딸이 ‘말 만해’진 이후로는 치마 길이에도 명확한 기준이 생겼는데, 바로 무릎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중학교 1학년 때 나의 세로 성장은 멈추었다.
할머니와 함께 산 중학교, 고등학교 교복은 무릎선에 맞추어 구매하고 무릎선에 맞추어 입고 다녔다.
교문을 지나 교실 문을 열기 전 치마 허릿단은 말고 다녔다.
둘둘둘둘둘
무릎선 교복들과 함께한 6년과 재수가 지나고 대학생이 되었다.
벚꽃 흐드러진 분홍빛 대학 교정을 밟게 된 여대생이 되어 꼭 갖고 싶었던 치마가 있었으니,
바로 테니스 스커트였다.
5월 18일 성년의 날 장미를 받고 마법처럼 성인이 되었다고 믿었던 나는,
하루빨리 한 뼘이라도 더 어른에 가까워지고 싶어 동동거렸던 그때의 나는,
할머니의 기준들이 '발바닥에 물린 모기' 같았다.
거슬리고 짜증 나고 종종 생각나지만, 신경 쓰지 말고 싶은 것 말이다.
어른-춘기 동안 시키는 것은 따르지 않는 것이 어른이 되는 지름길이라 믿었다.
있는 복도 달아난다기에 멈칫 하고 멈추던 다리 떨기는 오른발에서 왼발로 번갈아가며 더 강하게 떨어본다.
덜덜덜덜덜.
할머니의 기준들은 “다리 몽뚱이 분질러뿐다-”와 같은 위협이 되어 나를 퍽퍽 쳐댔다.
우리의 전쟁은 치열했다.
결국 ‘무릎’ 저지선은 '테니스 스커트'라는 강적을 만나 ‘속바지’로 휴전을 맺었다.
길이가 아주 긴 회색 속바지 3벌을 손에 쥐여 주셨다.
많이 짧은 치마를 입으면 존재감을 드러내 짧은 치마를 입지 못하게 할 요량이셨으리라.
속바지를 꼭 입고 치마를 입기로 할머니와 약속하였다.
그리고
속바지를 허리 끝까지 치켜올려 입은 뒤, 바짓단을 접어 올렸다.
돌돌돌돌돌.
어른-춘기를 지나와 머리가 조금은 더 영글고 나니,
할머니가 왜 '말 만한' 손녀를 다그치셨는지 문뜩 알게 되었다.
어린 나는 밤에 배앓이를 종종 하곤 했는데, 할머니는 자신의 밝은 잠귀를 허울 좋은 핑계로
따듯한 수건을 가져다 이불속 배 위에다 덮어주곤 하셨다.
그렇게 잘 때 배를 덮는 것은 할머니의 기준이 되었다.
침대 밑에 사는 괴물이 나오는 동화를 읽었던 어린 나는
괴물의 손이 닿지 않는 문지방에서 뛰어 침대로 들어가곤 했다.
몇 번 넘어지고 나니 문지방은 도움닫기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 할머니의 기준이 되었다.
새알을 둥글게 모여 앉아 동글동글 빚는 것이 좋고 팥죽보다는
팥죽에서 건져 먹는 새알이 백배는 더 좋았다.
그렇게 팥죽에는 새알이 들어가는 것이 할머니의 기준이 되었다.
이렇게 할머니를 생각하고 있노라니, 할머니 냄새가 맡고 싶다.
킁킁킁킁
할머니에게서는 냄새가 난다. 향기는 아니고, 고소하고 포근한 냄새다.
내가 아주 좋아라하는 할머니 무릎팍에서 나는 냄새.
감자를 가득넣은 된장국을 보글보글 끓여 뚜껑을 딱! 열었을 때 솔솔 올라오는 포슬포슬하고 포근한 냄새.
나보다 빠르게 산을 타던 할머니의 무릎이 이제는 머리를 들이밀어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앙상하게 변했다. 그래도 어린 밤 할머니 무릎을 베고 함께 수목 드라마를 보던 그때 그 냄새가 난다.
그래서 아직도 종종 맡아보곤 한다, 후웁!
포근하고 편안한 할머니 냄새.
할머니의 기준은 익숙하고 따뜻하다.
할머니의 기준 속에서 자랐기에 한겨울 하우스 딸기처럼 달달하게 차오를 수 있었다.
이번 주말에 할머니를 찾아뵈면 할머니 냄새를 한껏 마시고 와야겠다, 후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