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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하 Apr 11. 2022

무지개색 음표

비를 흠뻑 뒤집어쓰고

너를 만난 그때

 비가 올 때마다 웅크려 앉아 있는 너를 봤다. 어찌어찌 비를 피해 웅크려 있는 널 계속 보고만 있었다. 며칠을 그냥 지나치다 장마는 끝났고 난 비가 오는 날만을 기다렸다. 그날을 넌 기억할까. 그렇게 흐리고 습할 수가 없었다. 여전히 쪼그려 앉아 있는 너를 봤다. 다른 점은 비를 그대로 다 맞아 푹 젖어 있었다는 것. 왠지 모르게 물기 있던 네 눈망울을 보며 나도 같이 울었다. 나도 네 옆에 앉아 비를 맞았다. 처음으로 빗속에서 온기를 느꼈다.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어

 이제 우리 웃으면서 사랑하자,라고 말해주던 너를 떠올린다. 너는 따뜻한 비 같았다. 나를 빈 곳 없이 온전히 덮는 따스한 기운.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어. 우산을 쓰고 있던 내게 빗방울 하나가 튀자 나는 우산을 버리고 네 속으로 뛰어들었다. 너는 언제나 파도처럼 밀려오곤 한다.



우리가 사랑하던 여름은

 우리가 사랑하던 그 여름은 어디로 숨은 걸까, 커다란 우산을 쓰고서 비와 눈물로 얼룩진 내 볼을 닦아주던 손길을 잊을 수가 없다. 이젠 차가워진 비. 찬비를 맞으면서도 네 온기가 나를 감쌌다. 너의 시선과 음성과 미소는 오로지 나를 향했었다. 그래, 그럴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시간이 꿈이었던 것만 같이 허공에서 흩어진다.



그토록 뜨겁게

 나는 오늘도 축축하게 남아있는 눈물 자국을 지운다. 그게 볼이 아니라 심장에 있었던 건지, 아무리 지워도 아무리 문질러도 축축함이 가시질 않는다. 너로 온통 젖어 있다. 하염없이 내리는 빗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저 쏟아지는 빗물을 맞고 서 있을 수밖에 없다.



네 웃음은

 너는 나를 향해 항상 웃어줬다. 네 웃는 얼굴은 여름날의 먹구름을 걷어냈다. 무지개가 뜨고 솔솔 들려오는 흥얼거림. 그래, 네 웃음은 무지개색 음표와도 같았다. 사실은 너의 눈에 흐르는 게 빗물이 아니라 눈물이었다는 것을 지금에야 알았다. 오늘도 비가 온다.














열 여덟 어느 날, 무언가를 처음 기획하며 썼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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