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미하 Apr 15. 2022

창작자의 페르소나

나-창작물 관계 맺기와 규정하기

  나의 작품은 내 페르소나가 될 수 있을까? 창작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쯤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다.




  '나'와 '작품'은 구분되어야 하는가? 최근 전공 강의에서 이런 주제의 질의응답이 이뤄졌었다. 춘원 이광수를 주제로 한 발표 직후 진행된 자유토론이었다.


  친일을 했다고 해서 그의 문학에 작품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저항시인들의 자리가 무의미해지는 것 또한 아니다. 다만 우리는 역사에 기록된 사람들에게 당위성을 던질 뿐이다. 그들의 행적이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문학상에서는 작가의 생애를 필수적으로 반영한다. 수능 문제에는 더 이상 고은 시인의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 신인 작가들을 장려하고 그들에게 본보기가 되며 학생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목적성을 가졌기에 그러하다. 특히 대중에게 드러나는, 그야말로 '대중적인' 문학은 그럴 수밖에 없다.







  시대는 계속해서 움직인다. 그 속의 인물 형태 또한 다양한 양식으로 분화된다. 우리는 작가를 객관성에 기인해 바라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작품의 내재적인 부분에서 미학적인 예술성을 살필 줄 알아야 하고, 또한 시대적 상황이나 작가 개인의 경험과 연관 지어 작품이 창작된 배경을 헤아릴 줄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작품의 창작자를 '평가'하고 싶다면, 진행성이 결여된 상태의 창작자를 고려해야 한다. 현존 작가의 행적을 파악하고 평가하기에는 아직 유동성이 방해를 한다는 말이다. 그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정의를 내려야 하지만, 그 틀에 갇히는 것은 어떠한 낙인과 같은 것이다.


  객관성이 떨어지는 판단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 삶의 행적과 문학 작품을 함께 논하려면 객관적 시선이 필수적이다. 시대와 인간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유동적이다. 따라서 작가와 작품을 구분지어야 하며, 작가의 생애는 작품을 이해하는 도구이다. 객관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세상을 떠난 작가만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조들은 이름이 여러 개였다. 호, 아명, 자, 아호, 별호, 택호, 당호, 군호 등 상황이나 부르는 대상에 따라 달라진다. 심지어 추사 김정희는 호가 최소 500개 이상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다양한 이름이 있지만 본명은 정말 특별한 경우에만 사용했다. 지금 우리가 본명처럼 부르고 불리는 일상적인 이름은 옛날에는 '호'가 대신했다. 또한 우리 조상들은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이런 점은 또 다른 페르소나를 말한다거나, 혹은 나를 역할별로 구분한다고 볼 수 있겠다. 중고등학교에서도 배우는 사회 용어로, 지위와 역할이 있다. 태어날 때부터 갖는 귀속지위, 그리고 후천적인 노력으로 형성되는 성취지위가 그것이다. 역할갈등이라는 용어도 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다양한 집단의 구성원으로 행동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개인의 지위와 관련된 역할들이 충돌하는 경우는 사회의 급격한 변동, 역할 내용의 변화 등이 원인이 된다.


  현대 사회에서는 수많은 집단이 존재하고 그 속에 '나'의 위치와 역할은 각기 다르다. 신생 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에서는 모두 영어 이름을 사용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회사라는 집단에서 본명 대신 불리는 영어이름이 직장인이라는 페르소나에게 붙여진 이름인 것이다. 연예인들도 작품활동에 필요한 분위기나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해 예명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것 또한 연예인이라는 페르소나에 붙여진 이름이다. 아무래도 창작자들이 다른 이름을 많이 쓰고는 한다. 예명을 사용하는 작곡가나 필명을 사용하는 작가, 유튜브나 틱톡 같은 인플루언서 및 크리에이터 등 '창작하는 나'라는 페르소나를 '명명한다'. 이름 석 자 내세우며 작품활동을 하는 것도 멋지지만, 이름을 붙여주는 것도 역할간 정체성 확립에 도움이 된다. 물론 멋지다.





  최승호 시인의 <빵가게 주인>이 생각난다.


(전략)
"이 빵 좀 상한 거 아니에요?"

하는 말을 자신이 부패한 게 아니냐는 질문으로 여기며 불쾌해했다.

나중에 빵가게 주인은 사람들이 돈을 내고 자신을 뜯어 먹으러 온다는 피해망상에 사로잡혔고 결국 빵집 문을 닫아버렸다.

"빵이 맛있다고 말해줄 걸."
손님 하나가 닫힌 빵집을 보며 섭섭해했다.


  빵집 문을 닫고 나서 가게 주인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무지개색 음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