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다'로 치환되는 빈 시간의 간격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 혹은 사람을 지나치게 경계하는 사람은 대부분 사람을 좋아하던 사람들이었다. 적어도 내가 봐 온 사람들은 그렇다.
언제부턴가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귀찮았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사람을 만나는데 내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한다는 것, 사람이 달라져도 무의미한 계획이 반복되는 것을 알고 난 후. 물론 사람을 만나 유의미한 것을 할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친한 지인이 아니면 내가 많이 어색해하고, 그렇지 않은 척 가면을 쓰는 것을 안다. 서로가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가까워지지 않는 것 같다. 으윽
그리고 아날로그를 좋아해서일까. 연락이 귀찮은 게 대부분이지만, 이 이유도 없진 않은 것 같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라는 말이 있다. 내 주변에서 항상 자리를 지키는 소중한 것이 익숙하다고 해서 가치를 잊지 말자는 뜻이다. 내 입장에서 이 말은 이렇게 해석된다. 소중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익숙해지지 말자. 친해지고 싶어서 잦은 연락을 하다 보면 상대방 쪽에서 다른 의미를 갖고 있었거나, 상처받거나, 멍청하게 이용되거나.
정말 오랜만에 지인에게 전화가 왔었다. 서로가 빈 간격의 시간들을 마구 떠들었다. 또 며칠 전에는 동네 도서관에서 우연히 동창을 마주쳤다. 졸업 후에는 연락도 잘 안 하는 사이였는데 3년 만에 만나니 얼마나 반가웠는지! 친구가 손에 든 책을 이리저리 보더니 “오 아직도 책 좋아하는구나!”라고 했다. 오랜만이어서인지, 그 말이 감성적이어서인지. 왠지 모를 뭉클함을 느꼈달까.
학창 시절에는 일상에 그저 있던 사람들이 어느새 연락 자체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는 걸 느낀 시점부터 나는 관계 맺기가 부담스러웠다. 동시에 오랜만이라는 단어를 굉장히 좋아했다. 학창 시절에 9년 동안 지내던 친구들을 뒤로하고 이사를 갔었다. 뭐, 인스타그램도 있고 카카오톡도 있으니까, 라며 인터넷 속 세상만 믿고 친구들이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르긴 다르더라. 아무 때나 전화하던 사이에서 용건 있으면 전화하는 사이로 바뀌었고, 그러다 전화 걸기도 뻘쭘해졌고, 음 얼굴을 보지 않으니 용건도 없어지더라.
‘시작’이 시작에 머무르지 않고 지속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매일 같이 연락을 하는 것은 마음이 불편했다. 예전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영양가 없는 짧은 연락이 횟수가 많아지는 게 싫다고. 그땐 어려서, 사람이 좋아서 몰랐던 건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그렇다. 언제부터 영양가 있는 내용을 따지기 시작했는지.
연락이 드문드문하면 살짝 투덜대긴 하지만 그래도 이 편이 낫다. 전화도 좋지만 편지도 좋아한다. 예전에는 많이 썼던 것 같은데 지금은 특별한 날이 아니면 쓸 날이 없는 것 같다. 이 글을 쓰다가 졸업하는 동생에게 편지를 써봤다. 동생에게는 처음 써 보는 것 같은데.
그거 기억나? 그때 기억나냐? 따위의 말로 시작되는 높고 낮은 소리는 알 수 없는 울림을 준다. 빈 시간의 간격은 복잡한 내 세상을 조금이나마 단순하게 만들어준다.
(어쩌다 보니 자조적인 냄새가 나는 글이 되었다.)
<그거 기억해?>
오랜만에 쓰는 스물둘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