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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Mar 26. 2019

남자는 얼굴 여자는 옷, 동방불패

환상의 의미와 가치

남자는 얼굴 여자는 옷동방불패     

고리타분한 이야기들 말고, 재미있고, 내용 있고, 짧은 이야기 좀 해 달라는 요청이 많다. 직업이 이야기 선생이다 보니 그런 요구에 신경이 많이 쓰인다. 글쓰기는 본디 ‘글이 글을 부르는’ 속성이 있어 쓰다 보면 길어지기 십상인데 독자들은 늘 바빠서 짧고 재미있는 글만 원한다. 독자가 왕이니 가급적 줄여보려고 노력은 하지만 매번 성공할 수는 없다.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이번 이야기는 무협지다. <소오강호(笑傲江湖)>(호금전, 1990)와 <동방불패>(서극, 1992)는 워낙 유명한 무협지(영화)다. 매니아 층도 두텁다. 두 영화는 전편과 속편의 관계다. 줄거리, 제목, 여자, 남자 순으로 이야기를 정리해보자.    

 

줄거리들 : <소오강호> : 영화의 스토리는 명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황궁 도서관에 보관된 ‘규화보전’이라는 절세의 무공 비급이 분실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절대 무공을 담고 있는 이 규화보전의 행방을 두고 조정의 무사들과 강호의 무사들이 뒤엉켜서 혼전을 벌인다. 최근 사직을 한 황제의 호위무사 임진남은 이 비급을 가지고 나와 자신의 안위를 보장 받으려고 하지만, 조정의 한 실세인 서창(西廠)의 총관 내시(유순)는 이 사실이 동창에 알려질 것을 두려워 해 심복 황보천호(장학우)와 강남 맹주 좌냉선(원화)을 불러들여 ‘규화보전’을 되찾으려고 한다. 여기에 화산파의 야심가인 영호충의 사부 악불군(유조명)이 가세를 한다. 사부의 명을 받고 군사들에 포위된 임진남의 저택에 도착한 화산파의 수제자 영호충(허관걸)과 그의 사매 악영산(엽동)은 사부 악불군의 편지를 전하려다 분실하고 그들의 분란에 말려들게 된다. 이후의 사건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이 좌충우돌, 영화는 인간의 욕심이 빚어내는 온갖 갈등과 배신의 파노라마를 펼쳐낸다. ‘소오강호’는 그런 헛된 욕망들을 비웃는다는 뜻이다. 여기서 ‘강호’는 ‘욕망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동방불패> : 화산파 수제자 영호충은 절세의 무공비급을 얻기 위해 제자들을 배신한 사부 악불군을 떠나 사부의 딸인 사매 악영산과 몇몇 사제들과 함께 강호를 유랑한다(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전설의 유토피아인 우배산이다). 연전에 맺은 일월신교의 교주 임아행의 딸인 임영영과의 재회 약속을 지키러 가던 영호충은 도중에 정체불명의 여인 동방불패를 만나고 그 미모에 매혹된다. 한편 임영영은 행방불명된 아버지 임아행을 찾고 있었다. 누가 아버지를 납치했는가? 현재의 일월신교 교주인 의(義)삼촌, 동방불패가 유력한 용의자다. 그녀는 영호충의 도움을 얻어 동방불패의 거처를 습격한다. 이미 동방불패는 규화보전을 손에 넣은 후 신의 경지에 가까운 무공을 습득한 상태, 다만 거세(去勢)를 전제로 한 무공의 영향으로 급격히 여성화하여 양성 공유의 심리상태를 보이는 상태다. 임아행은 영호충의 도움을 받아 풀려나지만 그 역시 음험하고 잔인한 강호의 인물로 영호충은 그의 야심을 알고 그를 떠나려 한다. 그러나 자신이 시시(동방불패의 애첩)와 동침하던 중 그의 사제들은 동방불패에게 죽임을 당한다. 뒤늦게 아우들의 죽음을 안 영호충은 복수를 위해 임아행과 함께 이제 막 중원 출진을 앞둔 동방불패를 토벌하러 나선다. 거기서 영호충은 동방불패의 정체를 비로소 알게 된다.   

  

영화 제목들 : 이 영화들의 영어 제목은 <swordsman>이다. <소오강호>가 그렇고 <동방불패>는 <swordsman2>다. 어쨌든 둘 다 ‘검객’이라는 뜻이다. 그 영어 제목을 놓고 보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영호충이다. 그는 강호 9대문파 중의 하나인 화산파의 수제자로서 실제적인 화산검법의 제1인자다. 정의도 알고 도(道)의 의미도 깨친 전형적인 백도(白道) 무림의 엘리트 검객이다. 당연히 그가 주인공이다. 1편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2편이 제작되면서 무언가 변화가 있었다. 그래서 제목이 바뀌었다. 한자문화권에서는 제목이 ‘동방불패’다. 이를테면, 동방불패를 주인공으로 봐 달라는 이야기다. 동방불패가 주인공이 되면, 이른바 종래의 무협지가 선호하는 ‘전형적인 패턴들’이 무력해 진다. 선과 악의 대립, 불의를 징벌하는 정의, 불패의 가족주의(영원한 사랑) 등의 정통 무협 스토리텔링이 힘을 잃는다. 이제, 보다 복합적인 상황(선과 악의 경계가 해체되는)과 인간의 양면성이 부각된다. 동방불패라는 캐릭터는 시쳇말로 트랜스젠더다. 성 정체성만 특이한 것이 아니다. 그의 성격 자체가 선악이 혼재하는 예측불허의 카리스마 소유자다. 그(그녀)가 주인공이 되면서 영화 속의 선과 악은 상대적인 가치로 전락한다. 사랑도 영원한 해로(偕老)를 전제하는 구태(舊態)에서 벗어나 찰나적인 불꽃으로(순간이 영원인) 존재하는 생의 의미로 진보한다. 그(그녀)가 빚어내는 몽환적인 캐릭터는 도저한 변태(變態)로 에로티즘의 밑바닥까지 다 훑어낸다. 에로티즘이 육체적 차원에만 머물지 않고 심정적인 차원까지 자신의 영역을 확장한다. 몸(신체)은 어디까지나 타자의 것으로 대신(代身)할 수 있는 것, 육체는 소멸하지만 절대적인 순간을 함유하는 찰나의 환상은 영원하다. 영원한 환상만이 삶의 의미와 가치를 확인할 수 있게 해 준다. 동방불패는 결정적인 순간(환상을 만들어야 할 때), 시시의 몸을 빌려 자신의 부재성을 넘어선다. 애첩 시시의 몸은 영호충에게 동방불패의 환상을 제공하고 시시는 영호충의 몸에서 동방불패의 잃어버린 육체를 보상받는다(그렇게 생각하라고 시시에게 동방불패가 강요한다). 영호충과 시시, 두 사람 다 부재하는 동방불패와 몸을 섞는다. 그렇게 ‘몸’이 부재화되고 환상만 남는다. 동시에 동방불패는 유비쿼터스가 된다. 부재이면서 도처에 편재(遍在)하는 불패의 환이 된다. 영호충과 동방불패는 환상 속에서, 그들만의 사이버 공간에서, 그런 식으로 무한(無限)의 애정행각을 펼친다.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죽음까지 파고드는 에로티즘이 그들 사이에서 출렁인다. 가히 무의식의 향연이다. 그러니까 ‘동방불패’는 다른 말로 강호의 무의식이다. ‘소오강호’가 강호를 버리는 도(道)를 추구하며 인간 의식의 한 극대치를 지향한다면, ‘동방불패’는 강호의 무의식으로의 침잠을 요구한다. 그(그녀)가 죽고 영화는 잊혀져도, 우리 안에 실재하는, 그곳(무의식)에서 동방불패는 여전히 불패의 여왕으로 군림한다.      


여자들 : 김용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한 것이니 <소오강호>와 <동방불패>는 결국 한 편의 영화를 둘로 나누어 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출연진들과 감독이 달라짐으로써 전후편이 전혀 다른 ‘빛깔과 향기’를 가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흥행에 성공한 것은 속편인 <동방불패>에 와서다. 이연걸(영호충)과 임청하(동방불패)가 거의 독보적인, 매력적인 연기를 선보여 관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 두 배우가 이 영화로 스타덤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영화 <동방불패>에는 세 여자가 등장한다. 악영산(이가흔), 임영영(관지림), 동방불패(임청하)다. 모두 일세를 풍미하는 미인들이다. 영호충은 이 세 여자 중 동방불패를 가장 좋아한다. 그녀에게 그냥 푹 빠진다. 그녀는 신비스럽고, 말을 아끼고(사실은 말을 꺼낼 수 없다. 아직은 남자의 목소리가 나오니까), 그(영호충)를 쳐다보기만 하고, 연상녀로서 풍만하고 숙성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그녀는 가장 최근에 만난 새 여자다. 마마보이적 캐릭터인 영호충에게는 빠져나올 수 없는 매혹의 여성상이다. 나중에 그녀가 남자였다는 것이 밝혀져도 끝까지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동방불패는 죽는 순간에서도 “그날 밤 나와 몸을 섞은 여자가 당신이 아니었는가?”라는 영호충의 질문에 결코 답하지 않는다. 그 대신, 사랑했던 여자를 죽게 만든, 그 절절한 후회로, 당신의 삶이 후회로 가득 차기를 원한다고 말하며 죽는다. 그래서 영원하겠단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영호충을 실제로 차지하는 것은 악영산이다. 그녀는 사부의 딸이고, 어릴 때부터 한솥밥을 먹고 자란 사이고, 천방지축이고, 일편단심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오래된 편한 여자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함께 하는 배우자의 이미지를 지닌다. 가장 어중간한 것이 임영영이다. 그녀는 미모도 중간이고, 같이 보낸 시간도 중간이고, 남자를 매혹하는 힘도 중간이다. 타고난 배경과 능력은 있으니 자립도 가능하다. 딱 노처녀로 늙을 팔자다.


이 세 여자는 여성미의 세 본령(本領)을 대표한다. 악영산은 장신에 시원한 외모를 지녔다. 늘씬한 몸매에 성격도 쾌활하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임영영은 체구도 아담하고 얼굴도 고전적이다. 일테면 여성적인 면이 강하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귀염상이다. 성격도 톡 쏘는 면도 있으면서 남자 앞에서는 약간 내숭을 떠는, 전형적인 고전적 이중주 스타일이다. 전통적인 여성 미인상이라 할 만하다. 거기에 비하면, 동방불패는 중성미가 가미된 원숙한 여성상이다. 남성임을 전제로 구축된 그녀의 얼굴과 자태는 완벽한 양성공유의 남녀추니적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그림이나 조각까지 포함해서(반가사유상을 연상하면 된다), 현재가지 인간의 신체로 표현된 것 중에서는 가장 완벽한 아도니스적 이미지다. 그런 의미에서 동방불패는 남성들의 아니마 중 가장 밝고 큰 것에 속한다. 남성들의 아니마는 대체로 몇 가지 등급을 형성하면서, 특히 중년 이후의 주체의 기호나 취향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그 중에서 1등급이라 할 만한 아니마 이미지다.     

토니 볼프 같은 이는 남성들의 아니마가 ① 어머니와 아내의 정신적 형태, ② 반려자, 여자친구인 헤타이라(Hetaira : 고대 그리스의 고급 기생), ③ 아마존(Amazone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호전적 여인족), ④ 메디알레(Mediale : 영매의 힘을 지닌 자, 중개자)의 정신적 형태 등으로 나누어진다고도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아니마가 그런 식으로 세부적으로 범주화되기보다는 상호 교류(혼융)적으로, 때에 따라 등급 수준을 달리 하면서, 화려한 것으로나 아니면 불쌍한 것으로, 주체의 삶에 어느 정도의(사람에 따라서는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같다(어머니 이미지가 양극성을 지닌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성공한 중년들이 늦바람을 피울 때, 주로 동정적인 이미지를 보이는 젊은 여성들에게 집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3등급 정도의, 자신 안에 있는 ‘불쌍한 아니마’(억압받고 있는 자신의 여성성)에 영향 받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 반대로 상대적으로 젊은 남자가 화려한 중년 싱글 여성에게 끌린다면 이는 주체가 동방불패와 같은, 1등급(투뿔++) 아니마(그레이트 마더와 선 러버의 관계의 영향권 아래 들어있다는 이야기다.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누차 강조하자면, 인생을 논리로 풀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남자들에게 여자에 대한 이미지가 대략 그런 범주로 형성된다는 것은 인정할 만하다. 어쨌든, 동방불패는 남성들의 내면에서 그동안 박대당하며 쪼그라들어있던 아니마를 화려한 모습으로 밖에서 대면하는, 의식계에서 잘 볼 수 없었던, 쾌를 선사한다. 남자에서 여자로 바뀌어, 귀엽게 노는, 강적(强敵)이면서도 호감을 주는 연하의 남자를 좋아하게 된다는, 역발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변태’가 주는 쾌가 만만치 않다. 동방불패역의 임청하가 그 영화에서 보여준 몇몇 장면은 하나의 영화사적 기록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남자들 : <소오강호>는 남자들의 영화다. 남자들의 영화에서는 당연히 악(惡)이 전경화된다. 서부극도 그렇고 무협도 그렇다. 남자들은 악의 전도사들이다. 그들은 권력에 목매고, 시기와 질투의 화신이다. 서극 영화에서 악을 전담하는 남자들은 주로 내시다. 불구의 남성이기에 그들이 추구하는 남자적 가치는 극단을 지향한다. 그게 서극의 관점이다. 그 중에서도 단연 ‘동창(東廠)’이 악의 소굴이다. <신용문객잔>에서 보여준 그들의 활약은 단연 독보적이다. <소오강호>에서는 동창의 맞수인 서창이 등장한다. 동창과 서창은 황제가 조정 대신들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 만든 비밀 정보기관이다. 중국과 같이 큰 나라는 제후나 대신들의 힘이 강해지면 황제의 자리가 늘 위험에 처하게 된다. 자칭 ‘천명(天命)을 받았다는 자’가 어디서든 발호할 수 있다. 그래서 만든 것이 동창이나 서창과 같은 사찰기구다. 원래는 하나였는데 권력이 집중되다 보니 두 개를 만들어 상호 견제케 했다. 영화에서는 그들 내시들이 분별없이 악행을 자행하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힘 있는 자들’의 입장에서고, 힘 없는 백성들이나 늘 반란의 불안에 떨어야 했던 황제의 입장에서는 힘의 균형을 잡아주는 무게 추 역할을 톡톡히 해주는 이들이다. 힘을 지키려는 자나, 힘이 아주 없는 자들 입장에서는 아무리 나빠도 ‘필요악’ 정도 이하로는 떨어질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가 문제다. 어디서든 소수자들이 악역을 맡는 것은 낯설지 않다.  마법사나 내시가 대표적이다. 어쨌든 내시들은 억울하다. 그들은 환관이었기 때문에 혈족이나 가문이라는 이름으로 대를 물려가며 욕망을 팽창시킬 필요가 없던 사람들이었다. 욕망에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역으로, 후대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몸을 사릴 필요도 없었다. 당하는 쪽 입장에서 보면 그래서 그들이 진정한 악의 화신들로 묘사될 수 있었다. 그들의 입장을 반영해서 불구의 남성이면서 악을 대표하는 인물로 내시를 기용한 것은 일종의 속임수다. 


동방불패가 남자일 때는 악을, 여자일 때는 선을 지향한다는 것도 재미있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동방불패가 여자로 악인이 되는 것은 영호충의 다른 여자 파트너들(악영산, 임영영)에게 질투심을 느낄 때다. 임아행은 동방불패가 규화보전을 익히면서 여자가 된 것을 간파하고(임아행은 규화보전이 거세를 요구하는 것을 보고, 애초에 그것의 연마를 단념한다), 동방불패의 질투심을 부추긴다. 영호충이 그녀를 설령 좋아한다고 해도 고작 세 번째 여자일 뿐이라고 대놓고 사람들 앞에서 조롱한다. 동방불패에게 영호충은 자신의 아니무스다. 그와 그녀는 하나다(<양들의 침묵>에서 닥터 렉터가 스탈링 요원을 자신의 분신으로 여기는 것과 한 가지다). 그와의 혼연일체를 꿈꾸고 있는 마당인데 세 번째라니, 용서가 안 된다. 그 말에 동방불패는 평정심을 잃고 틈을 보여 결국 자멸한다. 임아행은 여러 군데에서 노련한 강호 무사의 진면목을 드러낸다. 그는 유토피아인 우배산으로 떠나겠다는 영호충에게 “인간 자체가 강호인데 어디로 떠난 들 인간에게서 강호가 사라지겠느냐”고 힐난한다. 의동생 동방불패에게 배신을 당해 토굴 감옥에서 사경을 헤매기도 했지만, 임아행은 거기서도 죽지 않고 부활한다. 자신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자신의 길을 간다(我行!). 세상의 모든 악은 필요악이다, 다시 권좌를 되찾은 임아행은 거침없이 복수를 한다. “다음 목을 칠 놈들을 대령해라!” 그는 그렇게 외친다. 영화 <동방불패>에서 진정한 남자는 오직 임아행 한 사람이다. 


사족 하나. <동방불패>에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릴 때의 일이다. 집에서 매일 같이 비디오를 틀어놓고 있는 남편을 보고 아내가 지나가면서 한 마디 했다. “그 여자(임청하) 입은 옷이 멋있네.” 그때는 몰랐다. 나중에 영화잡지를 우연히 보다가(단골 미장원에서였지 싶다) 기자가 임청하와 인터뷰한 기사를 읽게 되었다. 우리나라 기자가 동방불패 이야기를 꺼냈다. 진정한 불패의 영상이었다고, 동방예의지국의 뭇남정네들의 가슴에 꺼지지 않을 불을 질렀다고, 그렇게 말했던가? 그러자 임청하가 답했다. "동방불패 역이 내게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특히 그 화려했던 옷들이 좋았다..." 그때 확실히 알았다. 남자는 얼굴을 보고 여자는 옷을 본다는 것을. 

사족 둘. 규화보전에서는 거세정진(去勢精進)을 무공 수련의 전제로 설정했는데, 그것도 혹시 기술적 측면에서의 기재(번역)의 오류(과도한 해석)는 아니었는지 궁금하다. 무공은, 심신 간에,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그 존재 이유다. 무공의 연마가 심리적 동요를 불러올 수도 있는 ‘불균형의 내면’을 조장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남성에게서 남성성을 제거하는 것이 심리적인 안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 임아행의 흡성대법이 위력 면에서는 한 수 아래지만, 결국 동방불패의 규화보전을 극복해내는 것은 무예(무공)의 본질이 어디 있는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라 할 것이다. 혹시 “*나게 연습해라”를 지나치게 확장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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