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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Mar 27. 2019

새와 짐승과 초목의 이름

시의 본령

새와 짐승과 초목의 이름   

  

동서양에서, 특히 고대 희랍에서와 고대 중국에서, 시(詩)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플라톤은 정치에서 시인을 극력 배제한 반면, 중국에서는 시학(詩學)이 관리의 능력과 자격을 가늠하는 주요 잣대 중의 하나였습니다. 고대 중국의 고급 관리는 거의가 다 시인이었습니다. 중국과 같은 큰 나라, 대륙적 상황을 장악하고 경영하는 데에는 시적 마인드, 직관적 인식의 필요성이 크게 요구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에 크게 공감이 됩니다. 정재서 교수의 『동양적인 것의 슬픔』을 보면 그 자세한 사정이 잘 기술되어 있습니다.    

 

... 중국은 시의 나라였다. 시는 정통문학 중에서도 최고의 위치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시인의 정치적 지위 또한 매우 높았다. 다양한 문화의 복합체로서 그야말로 카오스와 같은 대륙의 상황이란 논리적 인식으로만 장악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었다. 중국인은 이에 천하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세계를 한 눈에 통찰할 수 있는 직관적, 시적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인재 선발을 위한 과거제도에서 순수문학인 시부(詩賦)의 창작능력은 고위직으로의 승진을 좌우하는 관건이었으며 특히 당(唐)대에는 철학을 대변하는 경학(經學) 분야보다 더 중시되어 시가문학의 황금시대를 이룩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중국에서 탁월한 정치가는 거개가 훌륭한 시인이었다. 당대의 백거이, 송대의 구양수, 왕안석, 소동파로부터 최근의 모택동에 이르기까지가 그러했고 이백, 두보 등도 비록 출세는 하지 못했으나 강렬한 정치지향을 지녔었다. 다시 말해서 고대 중국에서는 시적 능력과 정치적 능력을 상관시키는 경향이 농후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정치시학의 입장을 최초로 확립한 인물이 『시경』을 편집한 공자였다.


비슷한 시기에 그리스의 플라톤은 그의 이상국가에서 시인을 추방해 버린다. 아테네와 같은 단일한 도시국가를 다스리는 데에는 합리적 정신이 긴요하지 불안정한 시인의 감성 따위는 백해무익하다고 판단했음일까? 무엇보다도 플라톤에게 있어서 시와 음악, 신화 같은 것들은 인격도야의 원천이기는커녕 청년들에게 그릇된 지식을 주입하는 해악이었다. 고대 중국에서 문학을 우주의 현시로 보고 시인이야말로 그 원리를 꿰뚫어 볼 줄 아는 능력의 소유자로 인정했을 때(한나라의 사마상여는 “시인의 마음은 우주를 포괄한다(賦家之心 包括宇宙)”라고 말했다) 저편의 플라톤은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플라톤에 의하면 시인은 실재의 모방인 현상, 다시 그 현상에 대한 모방만을 일삼는, 궁극적 진리의 파악으로부터는 몇 단계나 떨어진 비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기원전 4~5세기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지구의 한쪽에서 공자가 시를 치국의 요체로 강론하고 있을 때 다른 한쪽에서 플라톤이 시인의 추방을 (공격적으로!) 역설하고 있었다는 이 극명히 대조적인 사례로부터 우리는 이후 역사적으로 전개될 서구의 동아시아 문명에 대한 편견 및 지배론의 소이연(所以然)을 이미 깨닫게 된다. [정재서, 『동양적인 것의 슬픔』, 30~31쪽]     


그러나, 인용문의 주장을 충분히 납득하면서도, 몇 가지 유보 사항을 첨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예(文藝)로 평생 밥벌이를 해 온 입장에서, 시(詩)가 우리에게 무엇이었던가에 대해서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주장에 대해서 그냥 눈감고(귀 막고)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선, 플라톤 시대의 시인이란 주로 음유시인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자유롭게 세상의 풍속과 풍물을 노래하던 아웃사이더였을 공산이 큽니다. 사회적 지위가 거의 없던 이들이었습니다. 중국에서 활약하던 시인, 묵객들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그 다음으로, 플라톤의 ‘시인추방론’은 그의 명석한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이내 부정당하는 푸대접을 받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메시스’가 스승의 소견을 한갓 허랑된 이야기로 내몹니다. 그러니 플라톤의 이데아가 예술분야에서 그리 큰 대접을 받았던 적도 별로 없습니다. 플라톤의 사상이나 주장이 공자님의 생각과 말씀과 대칭적인 어떤 의미와 가치로 평가될 필연적인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공자님이 『시경』을 편찬한 것은 정치 시학의 정립을 위해서가 아니라 ‘참된 인간이 되기 위한 공부(를 돕는 일)’의 일환이었습니다. 공자님이 “시 삼백 편이면 생각함에 삿됨이 없다”라고 말씀한 것은 시 공부를 통해서 순일(純一)한 인격체로 거듭날 것을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시가 ‘세계를 한 눈에 통찰할 수 있는’ 직관의 소산인 것은 맞습니다만, 그런 ‘한 눈의 통찰’은 스스로 참된 인간이 되고 나서야 생기는 능력일 것이라고 공자님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음에 소개하는 일화가 그런 사정을 잘 설명합니다.    

 

...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시 300편을 다 암송하더라도 정사를 맡겼을 때 잘 처리하지 못하고, 다른 나라에 사신으로 가 혼자서 응대하지 못한다면, 비록 많이 암송한들 무엇에다 쓰겠느냐?”고 하셨다. (子曰 誦詩三百 授之以政 不達 使於四方 不能專對 雖多 亦奚以爲)[『논어』 「자로」]     

...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얘들아! 어찌하여 시를 배우지 않느냐. 시는 순수한 감정을 흥기시키며, 사물을 이해할 수 있게 하며, 사람들과 어울리게 하며, 원망하되 성내지 않게 하며, 가까이로는 어버이를 섬기고 멀리 임금을 섬기며, 새와 짐승과 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한다”고 하셨다. (子曰 小子 何莫學夫詩 詩可以興 可以觀 可以群 可以怨 邇之事父 遠之事君 多識於鳥獸草木之名) [『논어』 「양화」]     


위의 내용을 두고 『사람의 마음을 바꾸어 세상을 바꾸리라(공자전)』의 저자 시라카와는 “시를 배우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선 정사에 숙달되는 길이었다”라고 말합니다(131쪽). 내치(內治)는 물론이고 외교에도 시 공부는 필수적이었는데, 그 까닭은 그 속에 담긴 ‘교양적 요소’가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겉으로 아무리 많은 시를 암송한다 하더라도 그 속에 담긴 교양적 요소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제대로 된 시 공부를 한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공자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해하는 게 아무래도 좀 석연찮다는 느낌이 듭니다. 공자님 말씀의 어순(語順)을 보면 꼭 그런 뜻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때문입니다. 우리는 “시 300편을 다 암송하더라도”라는 말에 우선 주목해야 합니다. 어떤 까닭에서인지는 몰라도 이미 ‘시 300편을 암송한’ 사실이 먼저 ‘전제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런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공자님은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시를 배우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선 정사에 숙달되는 길이었다”라고 이해한 것은 “시 300편을 다 암송하더라도”라는 말씀이 가장 앞에 나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결과인 것입니다. “시 300편을 다 암송하더라도”가 제일 앞에 놓여있다는 것은 그 행위의 목적이 이미 별도로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를테면, “인격의 수양을 위해서나 인용문 뒷부분에 소개되고 있는 여러 가지 ‘시 공부의 혜택’을 위해서 시 300편을 다 암송하더라도”로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적 독서를 해보면 누구라도 ‘무엇보다도 우선 정사에 숙달되는 길’이 시공부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공자님 말씀을 맥락적으로 이해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숙성된 인품, 격조 있는 인격, 교양인의 자격을 위한 필수 과목으로 ‘시 공부’가 특히 중요하지만, 설혹 그것을 목표로 ‘300편 암송의 성과’를 내는 경지에 도달한다 하더라도 그 공부의 결과를 실천적 차원(정사나 외교 등)에서 제대로 구현해내지 못하면(자신의 인뭄, 인격, 자격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면) 그 공부는 제대로 된 공부가 아니다, 그런 뜻이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훌륭한 인품과 인격, 탁월한 자질을 갖추면 절로 정사에 능통하게 될 것인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시 공부를 제대로 못한 것이지요. 재차 말씀드리지만, 무엇보다도 정사를 잘 돌보기 위해 시 공부를 했다는 것은 전혀 말이 안 됩니다. 어 다르고 아 다르다는 말이 있듯이, 공자님의 일관된 가르침과도 맞지 않고, 글 전체의 문맥으로 봐도 맞지 않습니다.     

그런 오독이 두 번째 공자님 말씀 중의 “새와 짐승과 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한다”에서도 그대로 반복됩니다. 그 부분에 대한 해석을 “교과목으로서의 ‘시’는 우선 수많은 새와 짐승과 초목의 이름을 알게 하는 박물학의 교본이었다”(135쪽)라고 시라카와는 범박하게 처리하고 맙니다. 정자(程子)가 써놓은 것(논어 집주)에 축자적으로만 의존한 수동적인 해석입니다. 그런 해석은 그야말로, 독자를 무시한, ‘초등학생 수준’의 문식(文識)에 해당하는 설명입니다. ‘시’가 마치 초등학교 물상, 생물 교과서인 것처럼 매도하고 있습니다. 공자님이 무슨 할 말씀이 없어서 그런 초보적인 말씀까지, 공부를 하려면 아주 박식해야 하니까 동식물 이름을 외우는 것도 중요하다라고까지, 강조하셨겠습니까?     

“새와 짐승과 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게 된다”는 것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 말은 앞 구절들과의 긴밀한 연관 속에서, 그야말로 상호텍스트성 위에서, ‘시적’인 표현으로(일종의 환유법을 사용해서), 사용된 것입니다. 이를테면 윤동주 시인의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말과 상통하는 차원에서의, 생태학적인, 인간 사랑, 자연 사랑을 강조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 맥락적 이해를 요구하고 있는 말입니다. 사물에 대한 깊은 관심과 이해는 주변의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전폭적인 사랑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은 환경에 대한 관심도 사랑도 호기심도 없습니다. 시 공부를 하면 자연스럽게 사랑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그 이치를, 그런 식으로, 시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특별히 그 부분에 와서 그렇게 표현하신 것은, 실로 그 부분이 시의 가장 높은 부분, 시의 정수리라 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공자님은 일찍이 그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시적으로, 시가 ‘새와 짐승과 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류가 지닌 것 중에서 사랑을 알게 하는 데에는 ‘시’보다 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시 공부를 해서) 그것(보편적 사랑)을 아는 이가 정치나 외교를 못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씀하신 것도 바로 그 까닭에서였습니다.     


어쨌든 공자님은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꼭 하며 사셨던 분입니다. ‘새와 짐승과 초목의 이름’은 그 맥락 위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공자님의 말씀을 맥락적으로 이해하려면 무엇보다도 공자님이 가장 하고 싶으셨던 말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공자님은 일관되게 인(仁, 보편적 사랑)과 서(恕, 己所不欲 勿施於人)를 강조하셨습니다(번지가 仁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애인愛人”이라고 말씀했다. 『논어』「안연」). 결국은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새와 짐승과 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한다’라는 말씀을 통해 공자님은 생태의식으로 표출되는 사랑(박애)을 강조하셨습니다. 그 뜻 이외에 다른 뜻을 구하면 공자의 제자가 아닙니다. “새와 짐승과 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한다”에서 다른 것을 읽는 것은 오직 오독일 뿐입니다. 그 중한 말씀을, 문학의 거룩한 본령을 밝히고 있는 말씀을, 그저 ‘박물학 교본’ 정도로 읽어낸다는 게 너무 황당합니다. 인문학을 하신다는 분의 이름께나 난 저술이 그토록 비인문학적이라는 것이 가슴 아픕니다.  

    

... 만물에 대한 연민의식, 특히 쉽게 다치거나 소멸하는 연약한 존재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생태의식의 가장 중요한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을 보호하는 일이나 사회적 약자를 특별히 배려하는 일은 다 같이 인간의 도덕적 행위 가운데서 특히 고상한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특히 쉽게 다치거나 도태되는 약한 것들과 어울려 함께 살아가려는 태도가 곧 생태적 태도의 기본이다. 대기나 물의 깨끗함뿐만 아니라 돌이나 풀이나 벌레 같은 것들과도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 강한 것과 약한 것이 서로 각자의 방식으로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 생태적인 이상이다. 이 이상에 가까이 가려는 노력은 너무나 연약하고 여려서 쉽게 고통 받고 쉽게 도태되고 쉽게 망가지는 모든 존재들에 대한 섬세한 관심과 애정을 포함한다. [이남호, 『문학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중에서]     


시는 높은 곳에 있어서 아래로 많은 것을 거느립니다. 아래로 내려온 것들만이, 그래서 눈에 띄는 것들만이, 시의 본색이 아니라는 걸 아는 것이 시 공부의 첫걸음일 것입니다. 그 첫걸음을 잘못 디디면 결국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허무한 끝을 맞이합니다. 그저 말장난, 넋두리만 일삼으며 부질없이 유성처럼 떠돌다 때가 되면 한갓 우주의 먼지로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013. 3. 27. 오늘 아침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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