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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Mar 29. 2019

의리, 오래 된 싸움의 기술

삼국지를 만지는 법

의리오래 된 싸움의 기술
 

옛날에 자주 듣던 말이 있다. 집안 어른 중 한 분이 식사 때마다 “누구야~ **하고 밥 먹어라.”라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 그때는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몰랐다. 반찬이 없는 것도 아닌데 꼭 하나를 집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좀 이해하기 어려웠다. 정확하게 말해서 좀 불편했다. 밥상에 놓인 것 중에서 상찬(上饌)이라 여겨지는 것을 그렇게 꼭 집어서 말해야 하는지, 자식 밥 먹이는 일을 그렇게 애걸하듯이 할 필요가 있는지, 그 집에서 밥을 먹을 때는 늘 속이 거북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언젠가 내가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그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오는 순간 속으로 깜짝 놀랐다. 세상 이치가 그런 것이었다. 겪어보지 않고서는 모를 일이 많았다. 


<싸움의 기술>(신한솔, 2005)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그런대로 재미가 있었다. 영화를 보면 숨어 사는 싸움의 고수가 어리버리한 고딩에게 몇 가지 싸움의 기술을 전수하는 내용이 나온다. 요약하면 전의(戰意)와 담력이 있어야 한다 정도가 될 것 같다. 그 전에 물론 육체의 단련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 없이는 애초에 전의도 담력도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사실 싸움의 기술 중에서 가장 윗길로 치는 것이 ‘이겨놓고 싸우는 기술’이다. 상대의 기력(氣力)과 기술을 압도한 상태에서 싸우는 건데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백전불태(百戰不殆)다. 그 필승의 기술의 첫 단계가 ‘항상 내려다보는 눈’이다. 상대가 크든 작든 항상 그를 내려다볼 수 있다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 실제로 (기력이 딸려서) 그 ‘내려다보는 시선’과 싸울 때처럼 고된 것이 없다.      

책이나 영화를 읽을 때에도 그런 자세가 요구된다. 물론 덮어놓고 내려다보라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가지 자신 있는 기술을 몸에 익힌 다음에는 기죽지 말고 덤벼야 한다. 그렇게 득의(得意)의 기(技) 하나 정도만 있다면 누구를 막론하고 내 눈 아래에 두고 싸움을 걸어야 한다. 물론 이기고 지는 일은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다.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다.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꾸준하게 싸우다 보면 언젠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강호의 고수가 되어 있다. 그렇게 크는 것이 강호의 싸움꾼이다. 승률을 높여 가면서 세계를 나의 의지와 표상으로 채워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읽기’의 진실이다. 그런 자세로 오늘은 『삼국지』와 한 판 붙어보자. 삼국지는 누가 뭐래도 ‘의리론(義理論)’이다. 문제는 누구와의 의리냐는 것인데 그것 하나만 가지고 싸움을 벌여보자.   

  

『삼국지』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물론 “의리 없는 놈은 인간이 아니다”가 된다.  『삼국지』는 누가 뭐래도 의리담론의 최고, 최종편이다. 중국인들이 『삼국지』를 만질 때는(이런 표현은 고미술품을 다루는 이들이 많이 쓰는 말이다), 반드시 그 원칙(삼국지가 의리담론이라는 원칙)을 철저하게 준수한다. 군웅(群雄)들끼리의 의리, 치자와 피치자의 의리, 생명에 대한 의리, (천재들의) 세상에 대한 의리, 남자의 의리, 부녀의 의리 등등 수많은 의리 중의 하나를 골라서 전경화 한다. 

그 중에서 가장 최근 나온 것이 『삼국지 - 용의 부활』(이인항, 2008)이다. 이 영화에서는 ‘장수의 전장에 대한 의리’를 다룬다. 이 영화는 조자룡의 일대기다. 조자룡은 장판교 전투에서 혈혈단신으로 유비의 아들을 구해 온 것으로 유명한 불패의 명장이다. ‘조자룡 헌 칼 쓰듯 (종횡무진, 자유자재)’이라는 속담이 나온 것도 바로 거기서 보여준 그의 뛰어난 전투력 때문이다. 그는 단 한 번도 전투에서 진 일이 없었는데, 그 결과 촉나라 오호 장군 중에서 집에서 높은 베개를 베고 죽은 이는 오직 조자룡뿐이었다. 『삼국지 - 용의 부활』은 그 부분에 시비를 건다. 무릇 진정한 장수라 함은 전장(戰場)에서 자신의 삶을 마감할 수 있는 자라야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감독은 반문한다. 그것이 장수로서의 전장에 대한 의리가 아닌가라고 묻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史實)을 왜곡한다. 없는 조조의 손녀딸도 등장시키고 그녀와의 전투에서 자신의 마지막 장수로서의 삶을 완성시키는 조자룡 이야기를 새로 만든다. 집에서 죽은 조자룡을 전장에서 죽는 조자룡으로 재창조해 낸 것이다. 어떻게 보면 발칙한 상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중국인의, 그리고 한자 문화권 동아시아인들의 의리에 대한 의리를 잘 보여주는 한 전형적인 예가 된다.


『적벽대전 1․2』(오우삼, 2008)에서도 그러한 원칙은 유감없이 지켜지고 있다. 특히 『적벽대전 2』가 그렇다. 전편에서는 원작에 충실하게 유비(백성에 대한)와 조자룡(주군에 대한)의 의리가 강조되는데서 그치지만, 후편에서는 작가(감독)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백성들과의 의리’가 전편(全篇)을 지배한다. 오나라 공주가 적진에 잠입해서 칠뜨기 적군 병사와 맺는 의리, 그리고 제갈공명의 ‘동남풍 칠성단’이 영화 속에서 설 자리를 잃는 설정이 그것을 표나게 보여준다. ‘적벽대전’의 핵심이 ‘동남풍 칠성단’인데 어떻게 그것을 생략할 수 있는가라고 어느 식자(識者)가 신문 지상에 적어놓은 것도 봤지만, 그만큼 감독은 ‘백성들과의 의리’를 강조하고 싶었다고 봐야 한다. 천재의 타고난 능력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의리’가 우리를 구원한다는 메시지를 감독은 제출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위에서 제갈공명은 의리를 알면서 ‘경험과 과학적 고찰 방식’에 철저한 우국 지식인의 모습으로 그려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무엇이 그렇게 ‘의리’에 집착하도록 하는가? 왜 아직도 삼국지는 그들에게 경전(經典)인가? 궁금증이 이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 그러나 의리는 의무와는 종류를 달리하는 일련의 의무이다. 이것에 해당하는 말을 영어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리고 인류학자가 세계문화 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여러 가지 별난 도덕적 의무의 범주에서도 일본이 중국과 함께 공유하고 있는 덕목이고 <중략> 그런데 의리는 일본이 중국의 유교에서 받아들인 것도 아닐뿐더러 동양의 불교에서 받아들여진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일본 특유의 범주로서, 의리를 고려하지 않고 일본인은 행동방침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략> 서양인의 관점에서 보면 의리는 옛날에 받았던 친절에 대한 답례에서부터 복수의 의무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의무의 가장 이질적인 목록 속에 복잡하게 포함되어 있다. 일본인이 지금까지 서구인에게 의리의 의미를 설명하려고 의도하지 않았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들 자신의 일본어 사전에도 만족할 만한 정의가 내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일본어 사전에 의하면, 의리는 ‘올바른 도리, 사람이 좇아야만 될 길, 세상에 대한 변명에 앞서 본의 아니게 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런 설명만으로는 서구인은 그 뜻을 잘 알 수 없게 되는데 ‘본의 아니게(unwillingly)’라는 말이 의무(義務)와의 상이점을 보여주고 있다.” [루스 베네딕트(하재기 옮김), 『국화와 칼』, 서원, 참조]     


서구인의 관점으로 동아시아인(일본)의 문화를 기술한 대표적인 저술인 『국화와 칼』에서, 루스 베네딕트는 ‘의리(義理)’라는 관념이 서구인의 기준으로는 혼란스러운 것임을 토로하고, 그것이 중국에서 전래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유교나 불교에서 그렇게 가르치지 않고 있으니 그렇게 말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그녀가 삼국지를 알고 있었다면 꼭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을 듯싶다. 사마천이 『사기』 <열전>에 자객 편을 따로 둔 의미도 몰랐던 것 같다. ‘의리’의 원적지를 찾기 위해서 우리가 거쳐야할 우회로는 몇 갈래 길로 나뉜다. 그것이 지배자들의 윤리라기보다는 피지배자들의 윤리였다는 점, 사기 열전에서 시작되어 삼국지에서 완결된 것이라는 점, 유가적 의리 관념과는 한 쌍을 이루는 짝패(페르조나와 셰도우처럼)라는 점 등등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동아시아 서사문학의 전통으로 자리잡고 있는 ‘의리(義理)’는 대의가 아니라 소절의 차원에서만 존재한다. 그러니까 의리는 본디 모두 사적(私的) 의리라는 것이다. 그것이 공적인 차원으로 나가면 충절이나 명분이 되는 것이므로, 그것마저 의리라고 부른다면 그동안 의리 담론이 수행해 온 ‘민중들의 해방 담론’이 유명무실하게 된다. 의리담론의 역사성을 상실하게 된다. 애초에 사마천이 『사기』 <열전>에서 자객들의 비장한 삶을 묘사할 때부터의 의도와 의미가 실종되고 만다는 것이다. 


‘의리(義理)’를 말하면서 유가 사상과의 관련을 처음부터 배제하는 이유도 그러한 ‘의리(義理)’의 배타적인 담론적 특성 때문이다. 유가 사상은 큰 의(義)에 작은 의(義)가 종속되는 담론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적 서사문학 전통이 즐겨 다루는 ‘의리(義理)’는 종속절의 구조라기보다는 대등절의 구조를 갖는다. 동아시아적 서사문학 전통에서 주로 비장(悲壯)의 미적 쾌감을 선사하는 담론들은 영웅들이 그 대등절의 구조로, 비장으로, 현실의 제 모순과 갈등을 혁파한다는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그러한 전통은 이미 『사기』 열전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는 것으로써, 그들 영웅들은 거대담론의 지배도 그것이 베푸는 시혜도 받지 않는다.      

말이 길어졌다. 영화 한 편을 읽는데 이렇게 긴 사설이 필요할 것까지 있느냐고 힐책을 해도 어쩔 수 없다. 이제 끝을 내겠다. 『삼국지연의』는 요즘 말로 한다면 일종의 불온서적이다. 거기서 강조되는 ‘의리’는 체제 전복적인 이념이다. 실패한 유비 정권을 정통으로 보겠다는 민초들의 역심(逆心) 그 안에 있다. 그래서, 유비와 그의 수하들, 제갈공명, 관우, 장비, 조자룡 등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그 안에서 의리의 화신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의리는 그들만의 전유물이다. 의리는 사적인 유대와 희생에만 적용되는 비공식적 윤리 규범이다. 그래서 그 사적인 관계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과하거나 이해하지 못할 일로 비추어져야 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의리의 소관이 아니다. 그러므로, ‘출사표의 미학’이니 ‘장수의 전장에 대한 의리’ 운운하는 것은 ‘문자벽 서권귀’들이 만들어낸 자기기만의 허위의식, 혹은 필패의 싸움의 기술일 뿐이다.    

  

사족 하나. 요즘, 역사소설을 읽거나 역사드라마를 보다 보면, 본의 아니게 우리 조상님들이 태평성대만을 살아온 것처럼 느껴진다. 당시의 민초들이 겪는 아픔이 너무 멀게 느껴진다. 그만큼 ‘현재의 억압’이 허구의 공간에서 설 자리가 없다는 말도 되겠다. ‘현재의 억압’이 설 자리를 잃은 역사적 허구(역사 허구 담론)가 탐정극으로 흐르고 판타지 일색으로 치닫고 다빈치 코드식의 음모론적 배경을 즐겨 취하게 되는 것도 어쩌면 필연이라 할 수 있겠다.

김훈이 <흑산>이라는 정통파 역사소설을 썼다는 사실을 전하는 한 일간지 기자의 말을 인용한다. “김훈은 최근 장편소설 ‘흑산(黑山)’을 냈다. 정약전이 유배 간 섬이 소설의 한 축이라면, 그가 영영 돌아가지 못한 육지가 소설의 또 다른 축이다. 육지에선 부패한 관리들의 학정(虐政)에 시달린 백성들이 고향을 버린 채 떠돌며 굶주린다. 권력은 울부짖는 백성을 매로 다스리며 주리를 튼다. 현실에 절망한 백성들의 입을 타고 후천개벽(後天開闢)의 예언이 돌아다닌다. 왕실은 천주교의 삿된 무리를 뿌리 뽑는다며 피바람을 불러일으킨다. 정약전이 갇힌 섬보다 뭇백성이 고통 받는 뭍이 더 무서운 ‘흑산’이 된 시대였다.”(박해현)

사족 둘. 땅(지세) 그 자체가 공포감을 자아내는 경우도 있어 모든 비유나 문맥적 의미가 그것 앞에서 속절없이 무릎 꿇어야 할 때도 없지 않아 있다. 저녁 어스름 무렵 나주 쪽에서 해남을 향하다 옆으로 스치고 지나치는 영암 월출산은 무섭다. 땅이란 본디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마찬가지로 저녁 무렵 흑산도로 입항하는 배 위에서 바라보는 흑산도도 꽤나 무섭다. 바다 한 가운데 그렇게 무섭게 솟아있는 땅에서도 살아가야 하는 게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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