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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May 08. 2019

꿈꾸는 자의 삶

연달하는 삶

꿈꾸는 자의 삶    

 

누가 “용꿈이니 개꿈이니 하는 건 다 헛소리다.”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모름지기 인생지사(人生之事)가 다 일장춘몽(一場春夢)인데 꿈속에서 또 꿈을 나누어서 무엇하느냐는 말이었다. 듣고 보니 그럴싸했다. 나이 들어보니 정말 인생지사 일장춘몽이다. 아등바등 살아온 것이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래도, 갈 때는 가더라도, 살아생전에 ‘바라는 꿈’ 하나 없이 산다는 것도 삭막한 일이다. 이를테면 집단적 차원에서, 딱히 미륵 세상은 아니더라도, ‘모두 다 함께 잘 사는 세상’을 염원하는 것, 그리고 개인적 차원에서 ‘달인(達人)이 되는 꿈’ 같은 것 하나 정도는 갖고 사는 일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한 방면에서 막힘없이 ‘통(通)’하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꿈이다. 이른바 달인을 보여주는 TV 프로가 인기인 것도 그 까닭에서다. 모든 이들이 달인을 꿈꾸지만 모두가 달인이 될 수는 없는 법, 아쉽지만 자기가 도달하지 못한 달통(達通)의 경지를 보여주는 이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달인의 꿈, 거기에도 여러 갈래의 방향이 있다. 개중에는 열심히 살다 보면 저절로 되는 게 있다. ‘생활의 달인’이 그것이다. 노동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신기(神技)의 수준을 보여준다. 또 의식적으로 연달(練達)의 과정을 요구하는 것도 있다. 도(道)를 추구하는 모든 수련에는 뼈를 깎는 연달(練達)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일본인의 사고와 행위 양식을 분석한 루스 베네딕트의 명저 『국화와 칼』의 11장은 ‘자기 수양’에 대한 논의를 편다. 그녀는 특히 무아(無我)의 경지를 얻기 위해서 수행되는 여러 가지 종류의 연달을 소개한다. 연달이 되지 못한 초심자들은 의도와 행위 사이가 벌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쉽게 말하자면, 마음먹은 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일본인들은 의도와 행위가 서로 일치하지 못하게 그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을 ‘보는 나(我)’, 혹은 ‘방해하는 나(我)’라고 부른다. 그러나 각고의 훈련을 마친 달인의 경우에는 - 배우든, 검객이든, 화가든, 혹은 다도(茶道)의 선객(禪客)이든 - 이 장벽이 제거된다. 이 경지에 이르면 지금 내가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자의식마저 사라진다. 행위는 노력 없이 이어지고, 몸은 뜻대로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김영민․ 이왕주, 『소설 속의 철학』]

     

의도와 행위가 일치하지 못하게 하는 장벽을 제거하는 일은 끊임없는 반복적인 수련밖에 없다는 것이 소위 ‘연달론자’들의 주장이다. 말은 어렵게 하고 있지만 그 이치를 우리가 모를 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연애나 공부나 운동을 해 보면 그런 이치를 쉽게 알 수 있다. 집중하면 언제 흘렀는지 모르는 사이에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인생을 늘 그런 식으로만 살면 ‘달인’이 되는 것도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 들면서 가끔씩 듣는 질문 아닌 질문(대답하기 어려운, 그러나 듣기 좋은)이 있다. 하나는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으세요?”라는 질문이고, 또 하나는 “왜 그렇게 가타부타 말이 없으세요(웃기만 하세요)?”라는 질문이다. 직장 후배들이나 집아이들에게서 한 번씩 그런 질문을 받는다. 주로 페북에 매일같이 글을 올리는 일과 꾸준하게 동료 후배들을 모아서 운동을 지속하는 일을 두고 하는 말들이다. 어떻게 그렇게 매일 글을 써 낼 수 있느냐는 것과 어떻게 한 운동에 그렇게 막신일호(莫神一好, 하나만 좋아하는 것처럼 신명나는 게 없다)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속으로만 이렇게 대답한다. “식당집 주인은 매일같이 어떻게 국을 끓여 내나? 하루도 안 빠지고 말이야.”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그냥 넘어간다.

“왜 그렇게 딱 부러지게 응답이 없느냐”라는 질문에는 그냥 웃고 만다. 그건 나이 들어봐야 아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령, 고소공포증이 있어 비행기를 타고 외국 여행을 못 나가는 사람에게, 홍콩 여행은 언제 가세요? 가시면 어디를 들러 볼 생각이세요? 그 다음에는 또 어디를 가실 건데요? 그런 식으로 연신 묻는다면 어떻게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저 웃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젊어서는 자기에게 그런 질병이 없으면 남에게도 없다. 모든 게 한낱 핑계에 불과하다. 그런 질문을 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겉은 어른인데 속은 아직 철부지들이다. 모든 것을 자신의 이해력 안에만 두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의지를 행위 안에서 깨끗하게 녹여본 경험이 없어서인 듯하다.

살면 살수록 평범하게 사는 일에도 연달(練達)의 과정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사는 것만큼 어려운 기예(技藝)도 없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든다. 의도와 행위가 툭하면 엇박자를 낸다. 이제 좀 제대로 박자를 맞추나 싶은데 조만간 퇴장(退場)이란다.      

사진은 대구시 중구 남산동의 대구카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구내 전경. 지금은 본당 건물로 사용되지 않고 있으나 카톨릭 성전 건물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성모상을 가운데 둔 좌우 대칭의 건물 형태가 보는 이의 마음에 평안(平安)스러운 느낌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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