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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May 08. 2019

후회가 없어지니 사냥하여 삼품을 얻도다

주역, 중풍손

후회가 없어지니 사냥하여 삼품을 얻도다    

 

주역에 나오는 한자 단어는 십중팔구 한글 컴퓨터 사전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누군가가 공들여 입력해 두었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주역 언어가 동양인의 언어생활에 깊이 스며들어와 있다는 뜻도 되겠습니다. 이번에 주역을 읽으며 안 사실입니다.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말들이 그 기원을 찾으려면 사서삼경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것들이 꽤 있습니다. 삼품(三品)이라는 단어도 그렇습니다. 그저 중화요리의 삼품냉채 오품(五品)냉채에서나 쓰이는 말인 줄 알고 있었는데 예부터 격조 있게 사용되던 말이었습니다. 그 뜻은 첫째는 제사를 위한 공품(供品)이고, 둘째는 빈객을 접대하기 위한 음식이며, 셋째는 천자와 제후가 먹을 음식입니다. ‘사로잡아 이익이 되는 것으로는 삼품보다 좋은 것이 없으므로 <후회가 없어지니 사냥하여 삼품을 얻도다(悔亡田獲三品)>라고 하였다’라고 주역 쉰일곱 번째 ‘중풍손’(重風巽) 손괘(巽卦) 육사(六四) 효사 주석에 적혀 있습니다.[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도서출판 길, 1999(2쇄), 436쪽]   

  

어제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늙으면 고집이 세진다.”라는 말을 누가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마 가까이 지내던 이 하나가 갑자기 주변과의 소통을 스스로 차단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 돌출행동이 어떤 원인에서 비롯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해설이 없었습니다. 아마 말하기 거북한 어떤 원인이 있었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나이 들면 “이 나이에 눈치 볼 일이 무엇 있겠는가?”라는 독불장군 마인드가 안에서 꿈틀대는 것을 누구나 경험합니다. 보통은 젊어서부터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에게 많이 도지는 ‘나이 병’입니다. 젊어서부터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오던 이들이 늙어서 여러 가지 욕망 충족의 기회가 사라지면서 갑자기 삶의 의의를 찾을 길이 막연해지니 그런 막가파식 사고를 하게 됩니다. 남 보기에 돌출행동이 되는 짓을 하게 됩니다. 가족 생각도 않고, 친구들 생각도 않고, 자기가 속한 조직의 체면도 고려하지 않고 막된 행동에 나섭니다. 살아오면서 심심찮게 그런 사람들을 보아왔습니다. 한 번씩은 저 스스로도 그런 부류가 아닌가 자책감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저 자신도 평생을 자신만(가족 포함)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저 자신과 제 가족의 안위에만 집중하며 살아온 인생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늙으면 희생을 알아야 한다.”라고요. 우리 모두 늙은 처지에서 자기 자신을 좀 돌아보자라는 뜻도 포함한 말이었습니다. 주역에서 말하는 삼품의 첫째가 ‘제사를 위한 공품’이듯이 늙은이의 첫째 의무는 공동체 전체와 그것을 이어나갈 후속 세대를 위한 희생일 것입니다. 그걸 모르고 나이 먹어서 “이 나이에 눈치 볼 일이 무엇 있겠는가?”라며 뒤에서 남들에게 욕이나 먹고 다니면 인생 헛산 것입니다. 오해는 마시기 바랍니다. 이 글도 ‘뒤에서 남 욕하는’ 것이 될까봐 저어됩니다. 오직 제 살아온 행실에 대한 반성일 뿐입니다.     


구오(九五)는 바르면 길해서 후회가 없어지고 이롭지 않음이 없으니, 처음은 없고 마침은 있느니라. 사흘 전에 미리 명령을 펴며, 다시 사흘 후에 명령을 펴면 길하리라. -- 양으로 양의 자리에 거하니 겸손에는 손해가 되나, 중정(中正)을 잡아 그 명령을 펴면 사람들이 어길 수 없으므로 ‘정길회망무불리(鄭吉悔亡无不利)’라 하였다. 점차적으로 교화하지 않고 갑자기 강직하게 대하므로 처음엔 다 기뻐하지 않는다. 중정에서 마치니 삿된 도는 사라지므로 마침이 있다. 명령을 펴는 것을 경(庚)이라 이른다. 바름으로 사람들을 가지런히 함엔 갑자기 해서는 안 된다. 백성의 미혹됨이 진실로 오래되었으니 바로 펼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먼저 사흘을 펴서 명령을 드러내게 한 후에 다시 사흘을 편 후에 죄를 물어야 허물이나 원망이 없다. 갑(甲)과 경(庚)은 다 명령을 폄을 말한다.[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도서출판 길, 1999(2쇄), 437쪽]     


‘삼품(三品)’의 뜻을 새기며, 나이 들어서 세상과의 교통을 완전히 거두고 싶다는 유혹(미혹, 미욱)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스스로 주의를 기울입니다. “이 나이에 눈치 볼 일이 무엇 있겠는가?”며 밖과의 교통을 끊고 스스로 고립을 자초해서는 유종의 미를 거둘 수가 없습니다. 최소한 아침마다 페이스북에 글 한 편 올리는 정도로라도 정하게 세상과 통하는 창을 열어두는 것도 늙어서의 고립을 면하는 한 방책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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