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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Jun 11. 2019

발꿈치로 숨 쉬면서

진인의 꿈

발꿈치로 숨 쉬면서

     

...옛날 진인(眞人)은 잠을 자도 꿈꾸지 않고 깨어 있어도 근심이 없으며, 식사를 해도 맛있는 것을 찾지 않고, 숨을 쉬면 깊고 고요했다. 진인은 발꿈치로 숨 쉬고 중인(衆人)은 목구멍으로 숨 쉰다. 외물(外物)에 굴복한 자는 그 목에서 나는 소리가 마치 무엇을 토해내는 것 같고, 욕망이 깊은 자는 그 마음의 작용이 얕다(古之眞人 其寢不夢 其覺無憂 其食不甘 其息深深 眞人之息以踵 衆人之息以喉 屈服者 其嗌言若哇 其耆欲深者 其天機淺).[『장자』 내편, 「덕대종사(大宗師)」, 안동림 역주, 『莊子』 참조]    

 

요즘 저의 소망은 ‘잠을 자도 꿈을 꾸지 않고 깨어 있어도 근심이 없는 것’입니다. 말은 쉬워도 이루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그게 『장자』에서 말하는 ‘진인(眞人)’의 자격 기준 중의 하나였습니다. 저에게만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로부터 공인된(?) 어려운 경지였습니다. 그것만 이루어도 인생 절반은 성공한 것이었습니다. 적이 위안이 됩니다. 저는 저만 그런 줄 알았습니다. 모두 다 쿨쿨거리며 잘 자길래 저만 늘 개꿈에 시달리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군요. 잠 잘 자고 걱정 없으면 그게 바로 진인이었습니다. 걱정거리 하나가 없어지는 느낌입니다. 잘 자는 것, 근심거리 없애는 것, 대충 먹는 것, 발꿈치로 숨 쉬는 것, 외물에 현혹되지 않고 욕심을 줄이는 것 등이 결국은 다 한 줄에 꿰여 있는 것이니 개중에서 어느 것 하나만 잘 해내도 실패한 인생은 면하는 거였습니다. 진인을 목표한 것은 아니었지만 저도 30 년 전 쯤, ‘발꿈치로 숨쉬기’에 한 번 도전해 본 적이 있습니다. 『야선한화(夜船閑話)』(白隱, 1685~1768)라는 책을 보고 그 이치를 검도 수련에 한 번 적용해 본 것입니다. 그때 기록을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전반은 『야선한화(夜船閑話)』의 내용이고 후반은 저의 수련기입니다.    

 

...사람의 몸도 똑같은 것이다. 도를 통달한 지인(至人)은 항상 심기를 하반신에 충실하게 한다. 심기가 하반신에 충실할 때는 기쁘고, 노엽고, 걱정스럽고, 두렵고, 사랑, 미움, 욕망…… 등 칠정(七情)에 의한 병이 체내에서 움직이는 일이 없고, 바람 불고 춥고 덥고 습기찬 이 네 가지 사사(四邪)가 가져오는 나쁜 기운이 밖에서 엿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몸의 정비가 충분해지고 심신이 상쾌해져서 입은 약의 달거나 신맛도 모르게 되고 몸은 결국 침이나 뜸의 통증을 받지 않게 된다.

그런데 범부들은 항상 심기를 위쪽으로 함부로 하고 있다. 심기를 위쪽으로 함부로 할 때는 왼쪽, 즉 심장의 화(火)가 우측, 즉 폐장의 금(金)을 침범해서 오관(五官), 즉 안, 이, 비, 설, 신, 각 기관이 위축되어 피로해지고 그에 따르는 부모, 처자, 형제뻘 되는 육친이 모두 괴로워하고 한탄을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칠원(漆園), 즉 중국 고대의 사상가 장자는 말하고 있다. “진인의 호흡은 발뒤꿈치로 하고 중인의 호흡은 목구멍으로 한다”라고. 

조선의 명의 허준은 말하기를 “기(氣)가 하초(下焦), 즉 방광 위에 있을 때는 숨이 길어지고, 기가 상초, 즉 심장 아래에 있을 때는 숨이 짧아진다”라고 하였다.

또 중국의 의사 상양자(上陽子)는 이르기를 “사람에게는 참으로 하나밖에 없는 기(氣)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단전 가운데로 내려갈 때는 하나의 양기(陽氣)가 생기게 된다. 만일 사람이 그 양(陽)이 생기는 조짐을 알려고 한다면 온기가 생겨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대략 생을 보양하는 길은 상부를 늘 서늘하게 하고 하부를 항상 따뜻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白隱, 『야선한화(夜船閑話)』 중에서]     

...생각한 대로 칼이 훨씬 부드러워지고(이것은 전적으로 내 느낌에 따른 것이다), 들어오는 상대의 빈틈이 크게 보였다. 언젠가 큰사범이 말했던 것처럼 상대의 머리가 보름달처럼 크게 보여야 올바른 타격이 나오는 법이다. <중략> 두 번째 상대는 키가 좀 작은 편인 젊은 남자 회원이었다. 그와는 전에도 두어 차례 같이 연습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단신(短身)의 약점을 빠른 발과 <손목-머리>나 <손목-허리> 등의 연속 기술로 극복하려고 애썼다. 처음 상대했을 때는 그의 그런 스타일을 몰라 머리를 수차례 맞은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는 마치 토끼처럼 깡총거리며 연속 공격을 퍼부었다. 나이가 젊어서인지 체력도 좋았다. 마치 나를 흔들어 넘어뜨리겠다는 투였다. 나는 그가 기(技)를 일으킬 때마다 가볍게 한 발 내디디면서 단전으로 호흡(氣?)을 내리는 기분을 가지며 왼팔을 쭉 뻗어서 앞으로 칼을 쳐나갔다. 굳이 억지힘을 쓰지 않아도 그가 들어오는 속력이 있었기 때문에 ‘딱’ 하고 기분좋게 맞는 소리가 났다. 그는 그렇게 대여섯 번을 당하자 적이 당황스러운 듯, 특유의 앉은뱅이(?) 허리기술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가까이 거리를 좁힌 상태에서 슬쩍 칼을 드는 시늉을 해서 당황한 상대가 본능적으로 칼을 따라 들어올리는 틈을 노려 사정없이 선 자리에서 허리를 후려갈기는 기술이었다. 순간적으로 자세를 낮추어 치는 기술인데 그는 유연한 상체를 이용해 왼허리든 오른허리든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그러나 그 기술은 상대가 ‘호흡을 목구멍으로 할 때’ 먹히는 기술이었다. 발꿈치로 숨을 쉬는 기분으로 중심을 아래로 가지고 나오는 적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는 선제공격으로 자세를 낮추고 들어오다가 매번 내게 큰머리를 가격 당했다. 그는 그 기술도 여의치 않자 손목 공격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가 손목을 치려고 죽도를 들어올리는 틈을 노려 선의 선, 죽도를 찌르는 기분으로 내뻗었다. 정확하게 그의 손목 윗부분에 내 죽도가 내려앉았다. 흔히 ‘풀로 붙이듯’ 손목을 치라고 하는데 꼭 그런 기분이었다. 그가 몇 차례나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전과는 많이 다르다는 표정(?)이었다. [졸작, 『칼과 그림자』 중에서, 인용문 일부 수정]     


‘발꿈치로 숨쉬기’가 저의 검도 수련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그 호흡에 대한 각성이 검도 수련에 있어서의 첫 ‘자득(自得)’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자득’이 있고부터 저는 다른 동료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기술을 습득해 나갔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를 해서 저를 자랑감으로 삼겠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다 아시겠지만 행여 오해하시는 분이 있을까봐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 나이에 무에 자랑하고 말 일이 있겠습니까? ‘발꿈치로 숨쉬기’라는 『장자』의 한 구절을 다시 만나니 20년 전의 일이 갑자기 주마등처럼 제 눈앞을 스쳐갔습니다. 아직 젊으신 분들이라면 한 번 해볼 만한 일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날도 어지간히 밝았으니 이제 저는 이만 자판을 내던지고, ‘발꿈치로 숨 쉬면서’, 동네 골목이나 자박자박 걸으러 나가야겠습니다.

<2013. 6. 11. 오늘 아침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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