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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Jun 14. 2019

곰과 여자

신화 교육

곰과 여자   

  

“단군 신화의 주인공은 누구죠?”라고 학생들에게 물으면 당연히 “단군요!”라고 대답합니다. “그 다음은 요?”라고 물으면 환웅, 환인이라는 대답이 나옵니다. 웅녀(熊女), 곰 할머니라는 대답은 여간해서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만 봐도 우리 교육이 좀 부실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신화는 민족적 동일성을 형성하는 첫 단추와 같은 것인데 시조(始祖) 이야기를 너무 쉽게 다루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단군 신화의 주인공은 단연 곰 할머니입니다.  환인, 환웅, 단군은 그저 보조인물일 뿐입니다. 곰 할머니만이 크게 변해 새로운 세상을 연 사람입니다. 강하고, 모성애에 투철하고, 잡식성인 곰어머니보다 더 훌륭한 어머니의 자격을 갖춘 존재는 아마 없었을 겁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고양이과(科) 개과니 하는 말들이 돌아다니는 것 같습니다(옛날에는 여우과니 곰과니 하는 말들이 많이 쓰였습니다). '고양이/개’는 우선은 얼굴 모양에서, 그리고 심층적으로 들어가면 나르시시즘의 정도가 무척 강하면 ‘고양이’, 좀 덜하면 ‘개’로 분류되는 것 같습니다. 보통 여자들은 어머니가 되면 나르시시즘이 좀 숙지는 것이 보통입니다만 순종 ‘고양이’들은 모성애와는 별도로 자신의 나르시시즘을 끝까지 고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분류법이라면 남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고양이 같은 남자들은 늘 밖으로 떠돌면서 ‘바람’을 즐깁니다. 반대로 개 같은 남자들은 죽자 사자 ‘집’만 지키고요. 옛날식 분류법인 ‘여우/곰’이 '자연산'이었다면 현대의 분류법인 ‘고양이/개’는 '양식산'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그때그때마다 필요한 분류법이 나오는 게 인생살이의 한 순리라 생각됩니다. 또 시간이 흐르면 그때는 그때의 시류에 맞는 다른 분류법이 나올 것이라 여겨집니다. 이를테면, 조만간 ‘카멜레온/고슴도치’ 같은 것이 나올 수도 있지 않겠나 싶기도 합니다(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니까).     


...이 말 끝에 유노는 연적인 이 요정의 머리채를 잡아 땅바닥에 내굴렸다. 요정은, 땅바닥에 쓰러지자 유노에게 빌 요량으로 두 팔을 벌렸다. 그러자 그 팔에서는 꺼칠꺼칠한 털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손은 안으로 구부러지면서 끝에 구부러진 발톱이 돋기 시작했다. 발에도 그런 발톱이 돋아났다. 유피테르가 찬탄해 마지않던 그 얼굴은, 갑자기 쭉 찢어진 입으로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요정은 유노에게 빌면서 용서를 애걸했지만 그 소리는 이미 유노의 연민을 살 수 없었다. 유노가 이미 말하는 능력을 빼앗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요정의 입에서는 듣기에도 무시무시한 소리, 화가 나서 금방 싸움이라도 거는 듯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요정은 곰으로 둔갑한 것이었다. 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요정의 여린 마음 그대로였다. 곰이 된 요정은 하늘의 별들을 향해, 이제는 앞발이 된 손을 내밀고 자기 슬픔을 하소연하는 한편 무정한 유피테르를 원망했다. 그러나 곰이 내는 소리가 인간이 하는 말과 같을 리 없었다. 곰은 숲속에 외로이 있을 수가 없어서 한때 자기가 살던 집, 뛰놀던 벌판을 찾아가 헤매었다. 사냥개에 쫓겨 바위산을 헤맨 것도 부지기수였고 사냥꾼에게 쫓겨 달아난 것도 부지기수였다. 이따금씩은 자기가 곰이 되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하찮은 산짐승과 맞닥뜨리고도 후다닥 몸을 숨기기도 했다. 자기가 곰이면서도 곰을 만나자 기겁을 하고 도망친 적도 있었다. 이리의 딸이면서도 이리 때문에 기겁을 한 일도 있었다(요정 칼리스토는 유피테르에 의해 이리로 둔갑한 뤼카온 왕의 딸이다). [오비디우스, 이윤기 옮김, 『변신이야기1』, 민음사, 2000(4쇄), 87쪽]     


곰과 여자의 친연성은 생각보다 전 세계적으로 퍼져 있는 원형적 모티프입니다. 곰어머니 칼리스토와 아들 아르카스는 나중에 나란히 하늘에 올라서 ‘큰곰자리와 작은곰자리’가 됩니다. 아버지 유피테르의 배려입니다. 저는 이 ‘곰으로 변한 요정’ 이야기를 보면서 출산 후에 겪는 모체(母體)의 변화나 심리적인 변동을 신화적으로 해석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유피테르(제우스)와 유노(헤라)는 인간을 제 마음대로 변신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녔습니다. 그들이 바로, 다름 아닌, 자연(自然)의 순리라는 뜻입니다. 아내가 아이를 낳고 곰으로 변신하는 것은 전적으로 아내의 방심이나 태만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그 옛날부터 그렇게 강조해 온 것입니다. 고양이나 여우를 좋아하는 젊거나 늙은 총각들은 반드시 명심해야 할 일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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