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투르니에, 외면일기
고양이 키우기
아주 오래 전, 『고양이 키우기』라는 소설을 지역 신문에 연재한 적이 있습니다. ‘젊은 작가 중편 릴레이’라는 기획 연재 행사의 일환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신문에 연재하는 소설 고료가 큰 수입원이 되던 때였습니다. 제법 정성을 들여서 집에서 고양이를 키우면서 느낀 소회들을 또박또박 적었습니다. 물론 고양이 이야기가 아니라 제 이야기였습니다. 소설가는 무엇을 적든 자기 이야기를 할 뿐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했으니까요. 그것을 본 한 직장 동료가 제게 말했습니다. “고양이 좀 그만 잡아라.”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차마 읽기가 징하다는 거였습니다. 아마 고양이에 투사된 제 콤플렉스들이 그런 독자의 항의를 불러내는 것이었던 모양이었습니다. 읽기가 불편하다는 게 그 요지였습니다.
미셸투르니에의 『외면일기』에도 고양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거기서는 그런 불편함이 없습니다. 보기 좋은 동병상련만 있습니다. 무엇이든 자신이 ‘키우는 것들’은 키우는 자의 기대와 배려를 제 몸으로 구현해 냅니다. 그것들은 기대한 만큼만 자랍니다.
...우리 집에서 키우는 여러 마리의 가축들 가운데서 생겨난 고양이 새끼 한 마리를 소설가 이브 나바르에게 갖다 주었더니 그는 고양이에게 ‘티포주’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것은 내 소설 『마왕』의 주인공 이름이다. 6개월 뒤 그 집에 찾아갔다 와서 나는 그에게 이런 편지를 써서 보냈다. “티포주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네. 정말이지 내가 자네에게 갖다 주었을 때는 그저 평범할 뿐이었던 그 고양이가 자네의 열성적인 배려 덕분에 보기 드문 짐승, 요컨대 예외적인 사내가 되었네 그려. 그 녀석에게는 내가 동물에게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활기, 젊음, 광채, 자신감이 넘치고 있어. 그 녀석이 때로 감당 못하게 군다 해도 그것은 바로 어떤 공허감을 메우기 위하여 자네가 그 녀석에게 기대하는 바에 꼭 맞는 만큼만 그러는 것일세.”그런 말을 적어 보내자니 우리 집 정원에서 괴물처럼 엄청난 덩치로 자라버린 코카서스 산 어수리나무를 보고 어떤 여자 친구가 한 말이 생각난다. “당신이 그렇게 사랑하니까 그렇죠. 이 나무가 그걸 아는 거예요.”
나중에 이브 나바르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하게 된다. “자네는 내게 티포주를 줌으로써 내게 큰 도움을 주었네. 그러나 자네는 나한테 콩쿠르 상을 줌으로써 나를 속속들이 망쳐놓았네.” 그렇지만 나는 그의 자살에는 전혀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믿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30쪽]
동물이나 식물이 주인의 마음을 읽고 그에 따른 성장을 하고, 기질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맞는 말입니다. 프랑스 소설가 이브 나바르가 제가 ‘고양이 키우기’를 썼던 바로 그 시간에 ‘고양이 이야기(한 고양이의 생애)’를 썼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이 책을 서점에서 찾지 못했다면 그 사실도 영원히 저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책을 번역해서 저 같은 시골무사에게도 프랑스 소설가들의 삶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번역자(김화영)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 참조 : 이브 나바르(Yves Navarre, 1940-1994) : 프랑스 소설가. 부르주아 가정에서 출생. 17번이나 거절당한 끝에 발표한 처녀작 『레이디블랙』(1971)에서 동성애를 공공연히 내세우자 고위직의 저명인사였던 아버지와 불화가 생겼고, 그 불화와 갈등을 『전기』(1981)에 그대로 그렸다. 『한 고양이의 생애』(1986) 등 30여권의 소설을 발표했고, 1980년에는 『순화원(馴化園)』으로 콩쿠르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