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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Jun 14. 2019

고양이 키우기

미셸투르니에, 외면일기

고양이 키우기     


아주 오래 전, 『고양이 키우기』라는 소설을 지역 신문에 연재한 적이 있습니다. ‘젊은 작가 중편 릴레이’라는 기획 연재 행사의 일환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신문에 연재하는 소설 고료가 큰 수입원이 되던 때였습니다. 제법 정성을 들여서 집에서 고양이를 키우면서 느낀 소회들을 또박또박 적었습니다. 물론 고양이 이야기가 아니라 제 이야기였습니다. 소설가는 무엇을 적든 자기 이야기를 할 뿐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했으니까요. 그것을 본 한 직장 동료가 제게 말했습니다. “고양이 좀 그만 잡아라.”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차마 읽기가 징하다는 거였습니다. 아마 고양이에 투사된 제 콤플렉스들이 그런 독자의 항의를 불러내는 것이었던 모양이었습니다. 읽기가 불편하다는 게 그 요지였습니다. 

미셸투르니에의 『외면일기』에도 고양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거기서는 그런 불편함이 없습니다. 보기 좋은 동병상련만 있습니다. 무엇이든 자신이 ‘키우는 것들’은 키우는 자의 기대와 배려를 제 몸으로 구현해 냅니다. 그것들은 기대한 만큼만 자랍니다.    

 

...우리 집에서 키우는 여러 마리의 가축들 가운데서 생겨난 고양이 새끼 한 마리를 소설가 이브 나바르에게 갖다 주었더니 그는 고양이에게 ‘티포주’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것은 내 소설 『마왕』의 주인공 이름이다. 6개월 뒤 그 집에 찾아갔다 와서 나는 그에게 이런 편지를 써서 보냈다. “티포주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네. 정말이지 내가 자네에게 갖다 주었을 때는 그저 평범할 뿐이었던 그 고양이가 자네의 열성적인 배려 덕분에 보기 드문 짐승, 요컨대 예외적인 사내가 되었네 그려. 그 녀석에게는 내가 동물에게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활기, 젊음, 광채, 자신감이 넘치고 있어. 그 녀석이 때로 감당 못하게 군다 해도 그것은 바로 어떤 공허감을 메우기 위하여 자네가 그 녀석에게 기대하는 바에 꼭 맞는 만큼만 그러는 것일세.”그런 말을 적어 보내자니 우리 집 정원에서 괴물처럼 엄청난 덩치로 자라버린 코카서스 산 어수리나무를 보고 어떤 여자 친구가 한 말이 생각난다. “당신이 그렇게 사랑하니까 그렇죠. 이 나무가 그걸 아는 거예요.”

나중에 이브 나바르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하게 된다. “자네는 내게 티포주를 줌으로써 내게 큰 도움을 주었네. 그러나 자네는 나한테 콩쿠르 상을 줌으로써 나를 속속들이 망쳐놓았네.” 그렇지만 나는 그의 자살에는 전혀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믿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30쪽]   

  

동물이나 식물이 주인의 마음을 읽고 그에 따른 성장을 하고, 기질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맞는 말입니다. 프랑스 소설가 이브 나바르가 제가 ‘고양이 키우기’를 썼던 바로 그 시간에 ‘고양이 이야기(한 고양이의 생애)’를 썼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이 책을 서점에서 찾지 못했다면 그 사실도 영원히 저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책을 번역해서 저 같은 시골무사에게도 프랑스 소설가들의 삶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번역자(김화영)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 참조 : 이브 나바르(Yves Navarre, 1940-1994) : 프랑스 소설가. 부르주아 가정에서 출생. 17번이나 거절당한 끝에 발표한 처녀작 『레이디블랙』(1971)에서 동성애를 공공연히 내세우자 고위직의 저명인사였던 아버지와 불화가 생겼고, 그 불화와 갈등을 『전기』(1981)에 그대로 그렸다. 『한 고양이의 생애』(1986) 등 30여권의 소설을 발표했고, 1980년에는 『순화원(馴化園)』으로 콩쿠르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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