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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Jun 16. 2019

난독증

코드와 맥락

난독증

평생 국어 선생을 해 오면서 많이 듣는 소리가 하나 있습니다. 주로 대학에 들어갈 아이를 둔 친지들에게서 자주 들었던 말입니다. “우리 아이는 영어 수학은 곧잘 하는데 국어를 못한다”는 말이었습니다(주로 ‘생각을 한 번 더 해서 오답을 골랐다’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학습능력과 관련된 지능은 ‘하나를 잘 하면 다른 것도 잘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개중에는 그렇게 ‘잘 하고 못 하는 것’이 딱 구별되는 경우도 있는 모양입니다. 사실 저도 학창 시절에 국어 쪽 공부를 못 하는 편이었습니다. 중학교 때는 전교 석차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들면서도 3학년 때의 국어 성적이 ‘미(美)’였습니다. 고등학교 때도 그랬습니다. 국어1과 국어2가 있었는데 국어2가 ‘가(可)’였습니다. 그때는 그 이유를 몰랐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독해력 쪽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 당시 제가 다른 과목에서 보여주고 있던 학업 성취 수준으로 본다면, 국어 쪽의 그런 낭패는 거의 난독증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국어 안에서도 인문학적 텍스트에서 그 증세가 가장 우심했습니다. 인문학이 본디 ‘나(우리, 인간)는 누구인가?’에서 출발하는 것인데 그 물음에 답하는 일이 제겐 가장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인문학적 소양과 관련된 저의 난독증(難讀症)이 얼마간 해소된 것은 대학에 들어가서 소설 습작을 하기 시작한 뒤부터였습니다. 읽고 쓰는 일에 전념하다보니 남의 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저자의 생각과 제 생각이 비로소 구문론을 넘어 의미론적으로 접속되기 시작했습니다. 텍스트에 대한 공적인 해설과 제 나름의 시학적인 유추를 병행할 수 있게도 되었습니다. 그 후 국어 선생이 되어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저의 ‘학창 시절 난독증 사례’에 대한 고민을 계속했습니다. 말단지엽적인 것이 왜 크게 보이는지(‘한 번 더 생각해서 오답 고르기’)에 대해서도 숙고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한 번 더 생각해서 잘못 든 길에서 다시 돌아나오는 연습’이었습니다. 인문학적 소양을 길러주면서 자연스럽게 난독증을 치유할 수 있게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힐링’의 목표를 만족시킬 수 있는 독해연습서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생각의 회로를 바로 잡아줄 요량이었습니다. 그것이 『코드와 맥락으로 문학 읽기(원제: 코드와 맥락 혹은 오해와 편견)』(청동거울, 2005)라는 책이었습니다. 믿고 찾았던 한 출판사에서 ‘이게 도대체 무슨 책이지?’라는 거부 판정을 받고 동화 작가가 운영하는 출판사를 찾아가 낸 책이었습니다.
책 선전을 하자는 것이 아님을 알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혹시라도 그런 ‘난독증’ 자녀를 두신 분이 계시면 참조하시라고 그 책의 서문을 소개할까 해서 드리는 말씀이었습니다.


<머리말>
독법(讀法)과 논술을 한꺼번에 연마할 수 있는 실용서를 구상한 지는 오래되었다. 그러나, 그 동안 시간을 내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어 오기만 했다. 막상 작업에 들어가자니 힘은 많이 들겠는데 소득은 별로 없을 것 같아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해가 바뀌고 학교에서 맡은 일들이 좀 줄어들면서 시간에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묵은 빚을 청산하는 기분으로, 불문곡직, 봄부터 대여섯 달 동안을 이 일에만 매달려 이번에 마무리를 짓게 되었다.
이 책은 이론서가 아니다. 이 책의 목적과 효용은 ‘읽기와 쓰기’에 실용(實用),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데 있다. 객관식 문항을 앞세운 점이라든가, 후반부 다섯 장(章)을, ‘글쓰기로서의 논술’을 표방하고 그 시범(示範)으로 구성한 것도 그런 까닭에서이다. 
전반부 독법 부분에서의 ‘객관식 문항을 통한 학습자와의 대화’는 이런 유(類)의 교범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주로 4개의 적절한 설명과 1개의 부적절한 설명으로 선택지를 구성하여, 설문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저자와의 대화적 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도록 하였다. 하나의 정답을 고르는 과정이 보다 심층적인 대화가 되기 위해서는 각각의 선택지가 그 대화를 감당할만한 충분한 텍스트성을 지녀야 하므로 선택지 구성에 최대한 주의를 기울였다.

그 다음 이 책이 지닌 또 하나의 특징은 전문(前文) 없이 바로 제시문이 주어진다는 것, 그리고 [코드와 맥락]이라 이름 붙인, 간혹 ‘사적(私的)인 담론’이 첨가되기도 하는 해설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고 문제를 풀어보게 한 다음, 저자의 주관적인 층위가 개입된 ‘코드(code)’와 ‘맥락(context)’을 개진함으로써, 구체적인 정신행위로서의 ‘읽기’를 보다 실체적으로 제시하려고 취한 형식이다.
일반적으로, ‘읽기, 쓰기’ 평가는 제한된 시간 안에서 이루어진다. 효과적인 평가를 위해 복합 제시문이 주어졌을 때, 각 지문에 내재한 수많은 코드 중 어떤 것을 전경화(前景化)시켜야 할지를 신속하게 결정하지 못해서 낭패를 겪는 수가 많다. 독해에 필요한 맥락이,‘필요한’ 만큼 직관적 층위에서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시험장에서 겪는 모든 실패(오독)의 출발점에는 늘 그러한 ‘맥락 결여로 인한 코드 선택의 부적절성’이 존재한다. 이 책의 형식이 그러한 ‘시간과의 전쟁’에서 좀더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훈련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 책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어서, 그 [코드와 맥락]을 숫돌 삼아 자연스럽게 ‘속전속결’할 수 있는 자신만의 독법을 정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읽기와 쓰기’에는 ‘코드’와 ‘맥락’이 전부다. 모든 텍스트는 그것이 착상되는 개별적인 맥락(동기)이 있고, 그 텍스트 작성에 적합하다고 여겨 선택된 코드(장르, 구성, 수사)가 있으며, 작성된 텍스트가 일정한 의미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상황(사회․ 역사적 맥락)이 있다. 이를테면 <맥락 - 코드 -맥락>의 상호텍스트적인 경로를 따라 읽기가 진행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주어진 맥락과 코드를 파악하는 것이고, 텍스트를 생산한다는 것은 필요한 맥락에 따라 코드를 운용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메시지 그 자체는 의미가 고정되지 않은 채 떠도는 기표에 불과하다. 기의, 즉 언어의 의미는 누가, 누구에게, 어떤 시공간에서, 무엇을 의도한 채 말해지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그것이 이른바 담론의 조건이며, 이 책에서 강조하는 ‘코드와 맥락’이다.
그런데, 코드와 맥락은 항상 유동적이다. ‘만물은 유전(流轉)한다’는 명제는 ‘읽기와 쓰기’에도 늘 유효하다. 오늘의 코드와 맥락은 내일의 오해와 편견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제대로 된 독서와 작문은 늘 새로운 ‘서술적 정체성(narrative identity)’을 요구한다. 내 거울이 잘 닦인 상태를 유지해야 물체를 제대로 담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책이 ‘저자의 주관적 층위’를 감추지 않고 굳이 드러내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러한 까닭에서이다.
후반부의 논술 파트는 ‘글쓰기로서의 논술’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해, ‘견물생심 역지사지 메타논술’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케이스 별로 가능한 글쓰기의 유형에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는지 직접 글을 써 보이는 방식으로 작성되었다. 제대로 시범을 보였는지 걱정이 앞선다. 독자 제현의 질정을 기다린다.

이 책은 대체로 이상과 같은 관점에서 작성되었다. 그러나 막상 책으로 출간하려고 하니 부족한 점이 많이 눈에 띤다. 우선, 이 책의 지식 내용이 인문학적 소양에 편중되어 있다. 문학은 내 전공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유학을 비롯한 노장사상류의 동양사상 담론과 정신분석을 위주로 한 심리학적 담론, 그리고 독서 이론 쪽으로 지나치게 많이 쏠려 있다. 철학, 심리학, 문학, 독서교육 위주의 내용이다. 내 지식과 성벽(性癖)이 편벽한 탓이다. 앞으로 더 보완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객관식 문항을 통한 독자와의 대화적 관계’도 다시 살펴보니 썩 만족스러운 편은 아니다. 아직 내공(內功)이 덜 여문 탓이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흠이 있을 것이다. 추후 꾸준히 보완해 나갈 생각이다.

끝으로, 이 책은 일반적인 ‘문제집’이나 ‘수험서’와는 그 작성 동기가 전혀 다르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한다. 객관식 문항 때문에 오해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 책은 수학능력고사를 대비하기 위한, 기초 내용에서부터 심화 내용까지 다양하게 언어(문학)지식 내용까지 담고 있는, 그런 수험서가 아니다. 이 책은 오로지 독해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주려는 의도에서 작성되었다. 물론 그 부분이 수험생에게 기여하는 바가 절대로 과소평가될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특히, 다른 과목에서는 좋은 성과를 거두면서도 언어영역에서만은 쉽게 성적을 내지 못하는 수험생이나, 평소에는 잘 하다가도 조금 난이도가 높은 독해 문제가 나오면 어이없게 실패를 경험하는 수험생들에게는 매우 유익한 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코드와 맥락’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니, 그런 학생들은 이 책을 반드시 재독, 삼독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 너머에 있다. 당연히, 다양한 지문을 접하는 가운데 인문학적 소양이 길러져 어떤 텍스트와 마주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적절한 맥락적 이해를 도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책의 첫째 목적이다. 그 다음 소망은, 무엇이든 주눅들지 않고 읽어내려 갈 수 있는 자기만의 독법(讀法)을 깨치는 것이다. 그러한 능력이 이 책 한 권으로 충분히 배양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출발은 될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관점에서, ‘읽기와 쓰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 학습자들의 심리적 요인도 많이 고려했다. 읽기든 쓰기든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자신감이다. 자신감 없이는 출발도 없다. 그러한 자신감을 습득할 수 있도록, 다시 말해 ‘어려운 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마음을 조금씩 덜어낼 수 있게 책의 내용과 형식을 조정하였다. 가급적이면 눈에 익은 내용을 많이 사용하되 ‘관점의 변화’가 새로운 읽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체득할 수 있도록 한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이다.

독서가 의무가 될 때에는 모든 텍스트가 다 어렵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지금 ‘읽기와 쓰기’가 당면과제가 아닌 사람에게는(그가 누구든 간에) 이 책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찾는 것은 대부분 ‘신경증적’이다. 독해 역시 마찬가지이다.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진다. 그래서, 이 책이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는 지금 ‘읽기와 쓰기’가 당면과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점은 확언할 수 있다.
그러나, ‘읽기와 쓰기’가 지금 당장의 화두인 사람에게는 이 책 한 확실한 우군(友軍)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직접 자녀들의 ‘읽기와 쓰기’를 지도해 보려고 했던 학부모들이나 일선 학교나 학원의 국어선생님들은 아마 내 말에 공감할 것이다. 생각보다 쓸 만한 책이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 책에서 주로 거론되는 내용 자체가 평소 교과서 안에서 보지 못하던 낯선 코드라 처음에는 다소 어렵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지만, 흥미의 끈을 놓지 않고 계속 읽다가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읽고 쓰는’ 문제가 한 눈에 파악되는 경지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독법 파트의 마지막 서너 장은 그야말로 ‘구름 위를 걷는’, 그야말로 ‘신경증적인’ 전문 독자들의 이야기이므로 그 경지를 두고 자신의 것(독해능력)과 비교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흥미를 잃지 않는 것이다. 사적인 담론을 군데군데 배치한 것이 그런 차원에서 이해되었으면 좋겠다. 아마 그런 말투가 나르시시즘으로 오해되어 알게 모르게 거부감을 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읽고 쓰는’ 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대상에 흥미를 갖고 임하는 것이다. 그래야 진정성이 확보되고, 기표의 창발성도 따라온다. 그것은 이 책을 작성하는 나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 세상의 모든 책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다. 이 실용서는 그 우주가 스스로 허용하는 한 작은 통로를 자임한다. 그야말로 억만 개 중의 하나인 작은 통로다. 그러나 ‘통(通)’하는 즐거움은 늘 우주를 새롭게 창조한다. 이 책으로 ‘통(通)’할 수 있는 우주가 나에게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대학에 들어가 읽고 쓰는 일을 배우고 가르친 지 올해로 꼭 삽십 년이 흘렀다. ‘흐르는 것이 어디 강물뿐이겠느냐(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는 『논어』의 말씀이 몸으로 느껴지는 나이가 된 것이다. 나이가 들면 나잇값을 해야 한다. 자기가 가진 것 중 하나라도 세상에 보탤 것이 있으면 보태고 가는 것이 사람의 도리일 것이다. 
이 책이 남들에게도 그런 것으로 생각되어지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2004. 10
양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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