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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Jun 28. 2019

걸으면서 빛나는 여자

세 개의 거울 - 문학, 영화, 고전

2. 걸으면서 빛나는 여자   

  

한때 프로이트에 심취한 적이 있습니다. 문학연구가라는 직업의식에서, 소설 분석의 도구로 프로이트의 이론을 애용했습니다. 정신분석학은 그 시조가 명확한 학문입니다. 프로이트가 만들고 퍼뜨린 것입니다. 이른바 교조(敎祖)에 버금가는 사람입니다. 그만큼 프로이트의 일거수일투족이 비중이 큽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의 신도가 아니기 때문에(저는 문학교 신도입니다) 그를 그렇게 숭배하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프로이트는 처세술(處世術)의 대가입니다. 노자나 장자의 그것에 방불한 ‘세상 사는 지혜’를 가르칩니다. 세상을 원망하지 말고 무조건 이해하라고 가르칩니다. 누구와도 싸우지 말고 화평하게 살 것을 권합니다. 심지어 내 안의 질병과도 잘 지내라고 타이릅니다. 또 자기를 지킬 울타리를 만드는 법도 가르칩니다. 울타리를 쳐서 밖에서 나를 위협하는 세파(世波)로부터 나를 보호할 방도를 구하라고 권합니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그것을 이해하고 사랑하라.”라고 누누이 강조합니다. 

그는 교조이고 교주입니다. 그의 ‘말씀’을 거역한다는 것은 곧 정신분석학계에서의 파문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만든 것은 종교입니다. 인간에게 고통과 상처를 면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도 그렇고 자신이 만든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앞장서서 말씀을 지키는' 사제를 양성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도박의 사제들을 우리는 타짜라고 부릅니다. 사제와 타짜의 차이점은 그들이 지키는 것이 무엇이냐에 달려 있습니다. 한 사람은 신(신의 말씀)을 지키고 한 사람은 (이기는) 기술을 지킵니다. 그런 의미에서 프로이트의 사제들은 사제와 타짜의 경계선에 위치한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아니면 그 둘 다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고 있거나요.


스스로 게임의 룰을 만들어 그 안으로 상대를 불러들이는 것이 타짜가 되는 가장 손쉬운 방법입니다. 프로이트가 만든 정신분석학이라는 도박판 혹은 종교도 그렇습니다. 프로이트가 주관하는 도박 게임은 비교적 룰이 간단하고 승부가 명확하기 때문에 승부욕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빠집니다. 그러나, 대개는 돈을 잃고 나옵니다. 타짜 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승부를 마음대로 조작하는 타짜의 경지에 오르지 못하고 그 전에 손을 빼고 맙니다. 그렇게 되는 주된 이유는 하나입니다. 막판에 거는 판돈이 너무 커서입니다. 모든 종교가 그렇듯이, 프로이트의 도박판에서 타짜가 되려면 꼭 마지막에 자신의 전부를 걸어야만 합니다. 올인을 해야 됩니다. 그러나 전부를 거는 일은 누구에게나 불안한 일입니다. 남보다 더 잘 살고 남부럽지 않게 행복하게 살아야만 한다고 어릴 때부터 주입식(?) 교육을 받아온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너무 위험한 게임입니다. 그래서 어절 수 없이 이교도(異敎徒) 신세를 면할 수가 없습니다.     

청년기 초입, 잠시 고등학교 교사 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숙을 했는데, 주인집 아저씨가 자식 같은 저를 보고 꼭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존대를 했습니다. 다 좋았는데 한 가지 불편한 게 있었습니다. 주인집 아저씨가 밤마다 제 방으로 찾아와서는 마작(麻雀)을 권했습니다. 룰을 모른다고 하니까, 자기가 가르쳐 줄 거니까 염려 말라는 거였습니다. “선생님 같은 분들은 두어 판만 해 보면 금방 재미있게 놀 수 있어요.”라며 꾀었습니다. 4명이 한 조가 되어야 하는데 자리가 마침 하나 비었다며 나중에는 거의 강권하다시피 했습니다. 마작패를 가져 와서는 친(親)이니 동(東)이니 텐파이니 하면서 원치 않는 강습을 일삼았습니다. 퇴직 공무원이었던 아저씨는 낮에는 빨래나 설거지 등으로 아주머니를 도왔고, 밤에는 그 마작판에서 본인의 잡비를 벌어 썼습니다. 악다구니 같은 아이들과 하루를 같이 보내고 기진맥진 하숙집에 돌아와서는 조용히 책도 보고 습작도 해야 되는 제 형편에서 주인집 아저씨의 무단 주거 침입(?)은 견디기 힘든 시련이었습니다. 그 모든 호조건들도 그 고통 앞에서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결국은 두어 달 만에 하숙집을 옮겨야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가끔씩 영화에서 마작하는 장면을 보면 후회가 됩니다. “그때 좀 배워둘 걸.”하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는 데에는 다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때’에 달린 것이었을 뿐, 내 의지나 선택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프로이트 식 게임룰에 의지해서 ‘때’의 중요성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태어난 것은 원천적으로 제 의지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첫사랑의 때가 왔을 때 제 곁에 있던 한 소녀를 좋아했습니다. 결혼도 마찬가집니다. 결혼할 때가 와서 그때 제 앞에 있던 여인과 결혼했습니다. 취직할 때가 왔는데, 마침 그때 제 전공을 요구하는 자리가 하나 나와서 그곳이 저의 첫 직장이 되었습니다. 운동이 필요할 때가 왔을 때 마침 집 근처에 검도교실이 하나 개설되었고 그때부터 검도가 평생 운동이 되었습니다. 그런 식입니다. 일종의 팔자론인 셈인데, 제게는 그런 것들이 약간의 예감과 함께 저를 찾아올 때가 많아서 특히나 ‘때’의 역할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게 앞으로 닥칠 ‘때’에 관해서는 길게는 십 수 년 전에 짧게는 몇 달 전에 미리 어떤 예감이 주어졌습니다. 큰 것들만 들어도, 결혼과 첫 직장, 지금의 직장, 문필 활동의 전말(顚末), 평생 운동으로서의 검도 같은 것들이 그랬습니다. 변화가 시작되는 수 년 전에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 사실이 미리 감지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기록으로 남겼거나(결혼), 가까운 사람에게 뜬금없이 그 예감을 말로 전한 적도 있습니다(첫 직장과 문필활동). 물론, 그런 현상을 신경과학적 입장에서 본다면 측두엽 관련 발작의 일환(데자뷰)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일 것이고, 이성적 사유라는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의 현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그것을 토대로 앞으로 자신에게 다가올 미래에 대해 충분히 예측하고 있는 경우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떻든 상관없는 일입니다. 저는 이미 한바탕 살아본 처지이기 때문에 세상살이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이야기 한 토막이라도 남기는 게 제 의무입니다. 신통력이면 어떻고 신경증이면 어떻습니까? 어차피 결과는 이미 다 나와 있는 걸요. 어쨌든, 젊어서 마작을 배우지 못한 게 못내 아쉽습니다. 모르는 척 몇 푼 잃어주고 그 판에서의 타짜의 삶을 조금이라도 배워둘 걸, 너무 목전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야박하게 살았다는 후회가 듭니다. 

이제 프로이트의 마작판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한 번 배워볼 시간입니다. 프로이트의 『옌젠의 「그라디바」에 나타난 정신착란과 꿈』(1906)은 명작(名作) 중의 명작입니다. 소설도 재미있지만 프로이트가 자신의 게임의 룰로 풀어낸 해설이 더 재미있습니다. 문학판의 여러 선배 타짜들이 인정한 사실입니다. 제가 확인한 것만 해도 서너 편이 됩니다. ‘예술의 신비’를 인간의 언어로 표현한 것 중에서는 굴지(屈指, 손가락으로 꼽음)의 경지에 이른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 노르베르트 하놀트는 로마에서 어느 고미술품 콜렉션을 둘러보다가 어떤 얕은 돋을새김을 발견하고는 이례적으로 강한 인상을 받는다. 독일로 돌아온 그는 강한 인상을 받았던 문제의 얕은 돋을새김의 훌륭한 복제품을 구할 수 있었다. 그는 몹시 기뻐했다. 몇 년 전부터 그것은 사방의 벽이 선반의 책으로 도배되다시피 한 그의 연구실 한쪽에 얌전히 걸려 있었다. 햇빛이 이 얕은 돋을새김을 비추었으며 석양빛이 거기에 잠시 머무르기도 했다. 이 조각품은 걷고 있는 여인의 전신상을 표현한 것으로서, 실물 크기의 삼분의 일쯤 되었다. 그녀는 젊었다. 어린 소녀도 아니었으며 물론 성숙한 여자도 아니었다. 그녀는 스무 살 가량의 로마 처녀였다. 그녀는 비너스나 다이아나를 비롯한 올림푸스의 다른 여신들 또는 프시케나 님프가 표현된 그토록 흔한 다른 돋을새김을 전혀 상기시키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결코 적의를 가지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보통 사람의 어떤 것, ‘실제의’ 어떤 것이 있었다. 이를테면 마치 예술가가 오늘날처럼 종이에 대강 스케치를 하는 대신에 거리에서 살아 있는 사람의 옆을 급히 지나가면서 모델을 점토로 본을 떠서 만들어놓은 듯했다.[막스밀네르(이규현), 『프로이트와 문학의 이해』(4장)]     


옌젠의 중편소설 「그라디바」의 서두 부분입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노르베르트 하놀트는 미혼의 젊은 고고학자입니다. 그는 여행길에서 본, 젊은 여인의 활기차게 걷는 모습이 부조된 조각품에 깊이 빠져듭니다. 그는 그 여인에게 그라디바라는 이름을 붙입니다(그는 고고학자이기에 그의 진술은 일종의 고고학적인 내포를 지닙니다. 자신의 무의식을 발굴하는 의식의 노력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싸우러 나가는 마르스라는 뜻의 로마 신 마르스 그라디부스(Mars Gradivus)의 이름을 따서 그 여인 모델에게 ‘그라디바’라는 별칭을 붙입니다(-부스의 us가 남성형 접미사라면 -바의 a는 여성형 접미사입니다. 그라디바는 그라디부스의 여성형입니다).

그는 이 젊은 여자의 얼굴 모습과 거동이 우아하고 세련된 점으로 미루어 그녀는 서민의 딸일 리가 없고 분명히 귀족 집안의 아가씨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추론을 통해 그녀가 폼페이의 거리를 ‘비가 내린 날 신발이 물에 젖지 않도록 드문드문 놓인 포석(鋪石)만을 밟고 걸어가는’ 모습이 예술가에게 포착된 것이라고 결론짓습니다. 그 생각의 여정이 가히 예술적이지 않습니까?

현실에서 부조(浮彫) 속의 여인 그라디바를 찾는 주인공의 노력은 계속됩니다. 꿈속과 거리, 나아가서 저 멀리 폼페이까지 떠나는 주인공의 여정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때’가 찾아옵니다. 조에 베르트강이란 여인을 만나는 거지요. 사실은 조에 베르트강과 주인공은 어린 시절 한 때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단지 그라디바를 현실에서 만났다는 사실에 기뻐 그녀가 사람인지 유령인지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려 할 뿐입니다. 무의식이 점지한 배필을 의식이 그렇게 맞이합니다. 주인공은 고고학에 몰두한 나머지(혹은 지도교수의 딸이라는 점에서 모종의 억압을 당해) 그녀를 잊은 거였고, 그녀는 주인공의 이웃에 살고 있었지만 주인공 노르베르트 하놀트가 자신을 외면하고 있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그가 자기를 알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인공의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 망각되었던 사랑이 그 부조의 여인상을 매개로 삼아서 의식의 표면으로 부상하게 되었고, 폼페이에서 그녀를 만나고 나서야 자신이 찾던 여인이 다름 아닌 어릴 때의 첫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녀의 이름, 베르트강이라는 단어도 그라디바라는 말과 같은 뜻을 갖고 있는 말이라는 것도 드러납니다.

‘그라디바’가 ‘조에-그라디바’를 거쳐 ‘조에 베르트강(걸으면서 빛나는 여자)’으로 밝혀지는 언어의 고고학적 탐구도 재미있습니다. 거기까지는 소설가 옌젠의 선물입니다. 지척에 두고 있으나 소원하기만 한 옛날 여자 소꿉친구를 ‘그라디바 환상’을 통해 다시 불러내는 과정이 한 편의 아름다운 소설로 잘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 다음 그 이야기를 재료로 인간의 정신 구조를 하나씩 설명하는 것은 프로이트의 선물입니다. 한층 더 깊은 재미를 선사합니다. 얼마나 재미가 있는지, 변태나 분열은 병이 아니라 그저 인간의 성격 중의 하나라는 생각까지 들게 합니다. 


그러나, 제가 ‘그라디바’에게 열광한 것은 그러한 옌젠이나 프로이트의 이야기(정신분석학적 스토리텔링)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열광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오래 전에도 나와 같이, ‘걸으면서 빛나는 여자의 모습’에 열광한 사내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그라디바를 묘사하는 대목을 처음 대했을 때 나는, “어쩌면 이렇게 내가 원하는 그림을 제대로 그려 놓았을까?”라고 감탄해 마지않았습니다. 일종의 페티시즘이라고 할까요? 젊어서 한 때, ‘걸으면서 빛나는 여자’의 그림이나 사진에 크게 매혹된 적이 있었습니다. 외국 서적을 파는 가게에서 그런 표지가 있는 외국계 패션 잡지도 몇 권 샀던 적이 있습니다. 늘씬한 키에, 성장(盛裝)을 하고 활달하게 발걸음을 내딛는 여성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언제나 황홀한 일이었습니다. 특히 보일 듯 말 듯, 신체의 윤곽을 살짝 드러내면서 전투적으로(?) 걷는 모습은 문자 그대로 뇌쇄적이었습니다. 그보다는 조금 덜 하지만, 그 시절(연애가 지상의 과제이던 시절) 청바지가 잘 어울리던 아내가 드물게 치마를 입은 채 활달하게 걷던 모습도 지금 저의 뇌리 속에 선명하게 저장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이제는 수집까지는 하지 않지만, 가끔씩 서점에 들렀을 때는 그때의 생각이 나서 꼭 한 번은 그쪽으로 눈길을 주는 정도의 관심은 가지고 있습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조금 확대된 추리가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는 염(念)마저 듭니다. 혹시 ‘걸으면서 빛나는 여자의 모습’은 모든 사내들이 남모르게 가슴 속에 품고 있는 불패의 환상인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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