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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Aug 17. 2019

복숭아나무를 찾아서

나르시시즘에 대하여


복숭아나무를 찾아서, 나르시시즘에 대하여


우리가 자주 쓰는 말 중에서 그것이 어떤 함의(含意)를 지닌 말인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지 못한 채 아무 때나 가리지 않고 쓰는 말들이 있습니다. 제게도 그런 말이 있습니다. "글은 사람이다."가 그것입니다. 여기저기서 많이 썼지만 그 뜻에 대해서는 딱히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인간은 글쓰기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형성해 나간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쓰기에 있어서의 ‘나르시시즘’ 문제에도 관심이 갔습니다. 나르시시즘은 모든 글쓰기에 동력(動力)을 제공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것의 미학적 수준을 결정짓는 결정적인 요소가 됩니다. 그것에 휘둘리면 유치한 글이 되고, 그것을 적절히 다루면 아름다운 글이 됩니다. 페이스북을 봐도 그렇습니다. ‘제 잘난 맛’ 없이는 그 어떤 경우에도 ‘자기 표현’은 없습니다. 나르시시즘은 글쓰기를 비롯한 모든 표현행위에서 자신의 존재성을 관철시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글(표현)은 일종의 <자기소개서>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나르시시즘’의 문제는 남의 글을 읽고 글 쓴 이의 품성이나 능력(잠재적)을 파악해야 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적인 검토사항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작업을 꾀할 때는 심사 대상자의 글을 읽고 그 글이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지나치게 ‘해석학적 코드’에 입각한 독서를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글자(문장)의 연속이 텍스트의 의미이다’라는 생각에 얽매이지 않아야 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전달하려는’ 의미보다는, 안으로 숨겨진, ‘전달되는’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의식과 무의식간의 협력이나 갈등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이른바 ‘이중 기록의 문제’를 파악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글쓰기에 있어서의 ‘나르시시즘’의 문제는 그러한 심사 행위에서 반드시 숙고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모든 글쓰기는 ‘자기 존재 증명’이라는 임무를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나르시시즘(自己愛, 自己欲情)의 문제를 완전히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사람마다, 글마다, 알게 모르게, 끈질기게 글을 싸고도는 그 어떤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게 뭔지만 알면 됩니다. 자신을 비우고 차분하게 글을 읽다 보면 ‘그 무엇’이 제 모습을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상처’들은 서로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상처’를 끝내 어둠 속에 방치하지 않는 한 반드시 그것들은 서로를 불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크게 보면, 나르시시즘은 인간의 본성에 속합니다. 상처에 대한 반응, 그것 없이는 인성(人性) 자체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글 쓰는 자의 나르시시즘은 크게는 두 갈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나르시시즘(상처)에 ‘사로잡힌’ 글쓰기, 다른 하나는 나르시시즘(상처)을 ‘다루는(어루만지는)’ 글쓰기입니다. 일반적으로, 나르시시즘에 마냥 사로잡히지 않고 얼마간 그것을 다룰 수 있는(어루만지는) 경지에 도달해야 비로소 전문적인 글쓰기가 가능해집니다. 보통 시인(지망생)이나 작가(지망생)들은 그런 경지에 도달되었을 때 사회적으로 정해진, 공적인 인정을 받습니다. 한 예로 작가 신경숙의 경우를 들 수 있겠습니다. 물론 사견(私見)입니다. 그 경우가 제게는 그런 경지를 잘 보여준 예가 됩니다. 데뷰작 「겨울우화」에서 출세작 「풍금이 있던 자리」로 나아가는 궤적이 제가 보기에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전자에서는 ‘사로잡힌’ 차원이었던 것이 후자로 가면서 ‘다루는(어루만지는)’ 차원으로 이행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사람마다 자기 수준에서의 ‘사로잡힌’ 글쓰기와 ‘다루는’ 글쓰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신경숙은 자기 수준에서의 ‘경지 이동’이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케이스라 할 것입니다. 물론, 그 ‘이동’은 절차탁마의 소산입니다. 미숙한 정신이 토해내는 ‘원석(原石)에 가까운 글’과 성숙한 정신이 만들어내는 ‘세공(細工)된 글’ 사이에는 쉽게 건널 수 없는 ‘요단 강’이 존재합니다. 글자 몇 자의 수식이 아니라 나르시시즘을 다루는 태도에서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카프카 정도 되는 글쓰기 천재만이 그 강을 ‘배움 없이’ 건널 수 있지 싶습니다. 저절로 그 강을 건널 수 있는 자는 아마 백만 명 중의 한 명이 아니겠나 싶습니다.


사족 한 마디 : 저에게도 ‘글쓰기에 있어서의 나르시시즘’ 문제와 관련된 좋지 않은 경험이 있습니다(상처적 체질?). 젊어서 글쓰기에 있어서의 나르시시즘 문제를 직접적으로 한 번 다루어보고 싶어 그 부분을 소설 작품 내용 부분에서 대놓고 언급한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고백체 소설 속에서였지요. 그런데, 한 어설픈 평론가가(제가 볼 때는 지극한 얼치기 나르시스트였던 자였습니다) “이 작가 스스로 자신이 나르시시즘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성찰해 보기 바란다”는 요지의 평문을 써서(그것도 유명 시사주간지에다 두 쪽이나 되는 분량으로 실어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무심코 그 주간지를 사서 읽던 제 얼굴을 제대로 화끈하게 해 준 적이 있었습니다. 제 글이 부끄러운 것도 부끄러운 것이었지만, 그런 무식쟁이를 평론가로 대접하는 우리 현실이 더 부끄러웠습니다. 본디 나르시시즘은 자기 문제이기 때문에 자기 이야기를 써야 하고, 그것을 여러 각도에서 반추해 볼 수밖에 없는 것인데, 간장을 두고 왜 짜냐고 말하니, 황당하기만 했습니다(요즘 같이 ‘시바 시인’ 같은 도저하고 진정한 나르시스트의 등장을 보지 못했던, 그야말로 ‘석기 시대’ 때의 이야기입니다). 한편으론, 그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 그런 말을 하지 않았겠는가 싶어 반성도 많이 되었습니다. 시골무사 주제에, 소설이라는 장르를 사용하면서 함부로 그런 식으로 나르시스트연하는 게 ‘목불인견(目不忍見)’이 될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였습니다.


인간을 이루는 부품은 본디 조악(粗惡)합니다. 육체는 물론이고 정신도 그렇습니다. 사람마다 모두 제 각각이지만, 높은 데서 내려다보면 정말이지 한 줌의 흙먼지에 불과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 미물스러운 것들이 홀로 제 몫을 다하고 혹은 서로 연결되어 우주의 작용을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을 볼 때면, 신통방통, 놀라운 느낌에 사로잡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부품은 조악한 것이 틀림없는 것 같은데, 그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있는 완성품 인간들을 볼 때면 경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몸에서도 그렇고, 정신에서도 그렇습니다. 몸은 몰라도 정신의 차원에서, 거의 완성품의 경지를 보여주는 사람들을 볼 때면 정말이지 황홀합니다. 때로 나도 언젠가는 저런 경지를 엿보기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강렬한 격려와 자극을 받기도 합니다.


어쨌거나(또 어쨌거나?), 그런 모든 ‘경탄할 만한 것’들의 존재 역시 그나마 나르시시즘이 있어서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제 잘난 맛이 없이는 어떤 넘어섬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것 없이는 글쓰기란 애초에 없습니다. 문제는 나르시시즘입니다. 내 것 네 것 가릴 것 없이 나르시시즘입니다. 그래서인지, 예전 같으면 ‘눈 뜨고 못 볼’ 것들이 요즈음은 가끔씩 눈에 들어올 때도 있습니다. ‘귀가 순해지는(耳順)’것은 대체로 나이 60이 되어서라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귀나 눈이나 순해지는 건 마찬가지일 것이니까요. 이 상태로 나가면 저도 몇 년 안에 완전히 눈과 귀가 순둥이가 될 것 같습니다. 그 때까지 신체를 보전(保全)하고 수신(修身)에 힘쓸 일입니다. 내 것, 남의 것 가리지 말고 나르시시즘도 좀 곱게 봐 주면서.


사족 두 마디 : 이 글의 제목과 관련된 것입니다. 제가 자주 가는 미용실의 헤어디자이너인 권선생의 무남독녀인 ‘자나깨나 예쁜이’가 유치원 지원 경쟁에서 고배(苦杯)를 마셨답니다. 미용실에 들렀다가 우연히 들었습니다. 권선생 집 근처에 있는 <사과나무 유치원>은 인근에서 꽤나 인기 있는 유치원입니다. 유치원 원장님이 일단 사과나무집 따님이시랍니다. 자기 집 과수원에서 따온 사과를 원생들에게 아낌없이 베풀고요, 음식을 조리할 때도 전라도 신안에서 가져온 천일염을 자체적으로 몇 년간 저장해서 간수를 충분히 뺀 상태로 사용하고요,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음식의 식자재도 비록 유기농 제품은 아니더라도 농협 인증 제품만을 사용한답니다. 워킹맘으로 아이 도시락을 싸 주기가 어려운 우리 권선생에게는 그런 ‘먹을거리에 대한 유치원의 신의’가 무엇보다도 마음에 드는 일이었습니다. 인근의 병설 유치원에서는 급식을 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사과나무 유치원>에 아이를 꼭 보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의리 없이 ‘복수 지원’을 한 얄미운 엄마들 때문에(꼭 그런 것인지는 확인을 해봐야겠습니다만) 우리 ‘자나깨나 예쁜이’는 가고 싶은 유치원을 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린 딸의 상심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 나이면 자기가 어떤 처지에 놓인 것이라는 걸 알 만할 것 같아서였습니다(저도 그랬거든요). 아이가 어떻게 그걸 받아들이더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권선생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아이가 오히려 엄마를 위로하더랍니다. 
“엄마, 괜찮아, 꼭 사과나무가 아니라도 괜찮아. 복숭아나무 유치원을 한 번 찾아봐. 찾아보면 어딘가 꼭 있을 거야.”
‘자나깨나 예쁜이’는 다행히 복숭아를 좋아한답니다. 그러니, <사과나무 유치원>이 안 된다면 <복숭아나무 유치원>이라도 무방하다는 거지요. 괜히 그 말에 제 콧잔등이 시큰해졌습니다. 저도 딱 그 나이 때 그 비슷한 ‘상처’를 얻은 경험이 있었거든요. 
대여섯 살 때였을 겁니다. 한 번은 어머니와 함께 길을 걷다가 어머니의 손을 끌어당기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엄마, 이 길로 가지 말고 저리로 돌아가요.”
일전에 그 길에서 집주인 아주머니를 만나 모질게 집세 추궁을 받던 어머니의 모습이 안쓰러웠던 것입니다. 어머니가 저의 그 말을 듣고 말 없이 제 머리를 치마로 감싸주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아마 그때 어머니의 나이가 딱 지금 권선생 나이 때였을 겁니다.
<2013. 8. 17. 오늘 아침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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