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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Sep 11. 2019

주인공 게임

주연과 조연

주인공 게임

누구나 인생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극판(굿판)에서 모두가 다 주인공이 될 수는 없습니다. 주연이 있으면 조연도 있어야 하고, 주동(主動)이 있으면 반동(反動)도 있어야 합니다. 작은 판의 주연 역할이 큰 판에서는 조연이 되고, 더 큰 판이 벌어지면 악역으로 전락하거나 아니면 눈에 띄지 않는 엑스트라로 만족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주인공 게임’이 쉽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어제까지 내가 주연이었는데 오늘 갑자기 조연을 요구받을 때가 있습니다. 나이 들어서도 여태 조직에 몸담고 있는 제게는 그런 경우가 거의 일상입니다.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속으로는 좀 섭섭해도 "세월 앞에 장사 없다."라는 심정으로 뒷방 늙은이 신세를 자청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주변을 보면 저 같이 '눈치 있게' 구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큰 판에서 주연 노릇을 한 번 했다고 작은 판에서도 자동으로 주연으로 발탁되어야 한다고 고집부리는 이도 있고, 나름 한물 간 오합지졸들로 세력을 만들어 자기 중심의 판을 계속 유지하려는 이도 있습니다. 한동안 자작 주인공 행세를 하다가(선거 후보로 나섰다가) 한순간에 엑스트라로 전락하는 것을 견디지 못해서 자리 보전을 하고 누운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그 반대도 있습니다. 조연급으로 충실히 연기하다가 연기력을 인정 받아서 한순간에 무대의 중앙으로 진입한 이도 있습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나 소설 등에서 주인공을 가려내는 기준이 무엇일까요? 그냥 척 보면 아는 것일까요? 척 봐서 알 수 있다면 그가 주인공이 확실합니다. 그것 이상의 판정 기준이 없습니다. 그런데 척 봐서는 헛갈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갑일 수도 있을 것 같고, 을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남녀 주인공이 한 쌍으로 주인공일 경우는 문제가 없습니다. 두 사람을 골라내면 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는 어떤 판정 기준을 세울 수 있을까요?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옵니다. 주제를 나타내는 인물, 끝까지 살아남는 인물, 출연료 가장 많이 받는 인물(배우), 착한 인물,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기는 인물, 주동(主動) 인물, 사건의 중심에 놓인 인물이라는 대답들이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모두 주인공의 역할이나 양태를 설명하고 있는 말들입니다. 만약 대입을 위한 시험 문제에 그런 질문이 나온다면 그 중에서 어느 것을 골라서 대답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저는 거기다가 이렇게 덧붙입니다. "작품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람이 주인공이다."라고요. 주동이든 반동이든, 선인이든 악인이든, 작품에서 가장 많이(많은 장면에) 등장하는 인물이 주인공이 된다는 겁니다. 아무리 악을 쓰며 산다고 해도 일찍 죽어서 판에서 사라지면 그는 주인공이 될 수 없습니다.


.......영화 <동방불패(東方不敗)>의 주인공은 ‘동방불패’가 아니다. 적어도 혼자서 주인공이 되는 건 아니다. 주인공은 끝까지 살아남거나(최후의 승자), 가장 많은 장면에 등장하거나(호감 가는 등장인물), 사건(갈등)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야만 하는데 그(그녀)는 그러질 못한다. 잠시 군림하다가 사라진다. 다만 강렬한 인상만 남길 뿐이다. 그것으로(비장미) ‘제목 값’은 하지만 끝내 독보적인 주인공으로 우뚝 서지 못한다. 감독의 용기가 거기까지는 나아가지 못한다. 그(그녀)에게는 모럴이 없기 때문이다. 그와 대적하는 임아행과 영호충은 다르다. 영호충은 왔다갔다 하지만 결국 동방불패에게 치명상을 입혀서 ‘사건(갈등)을 해결’한다. 그 덕에 ‘끝까지 살아남는 주인공’이 되는 이는 임아행이다. 영호충의 도움을 구걸하지만(강호를 버리고 우배산으로 떠나겠다는 영호충에게 임아행은 ‘인간 자체가 강혼데 어디로 간들 무엇이 달라지겠느냐’고 다그친다) 그는 끝내 당당하다. 그는 ‘불패의 현실’이다. 그에게는 모럴(현실)이 있기도 하거니와 조력자(영호충)가 좋아하는 딸(임영영) 또한 있어 그야말로 ‘불패’가 될 수 있는 만반의 여건이 마련된다. 이야기의 구조 자체가 어차피 그를 최후의 승자로 만들게 되어 있다. 그래서 이름마저 ‘아행(我行, My Way)’이다. ...


2019년 초가을, 지금 우리 앞에 <주인공 게임>이 한 판 벌어지고 있습니다. 두 사람 다 주연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한 사람이 주연이 되면 다른 한 사람은 조연이 되거나 악역을 맡아야 합니다. 정해진 플롯은 없습니다. 작품 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고,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주인공이 됩니다. 건투를 빕니다.


<2017. 9. 11. 오늘 저녁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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