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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Sep 14. 2019

폭력과 인간

유혹과 공포

폭력과 인간

도대체 인간은 왜 폭력적일까? 그런 순진한 생각을 하던 때가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내 안에 본성으로 자리잡고 있는 폭력을 순화시킬 궁리만 하게 되었다. 유혹과 공포, 폭력은 그 두 마리의 말을 타고 수시로 내 안을 들락거렸다. 그 말을 길들이는데 평생을 보냈다. 폭력이 제도의 탈을 쓰고 날뛰는 것을 볼 때마다 폭력에 대한 내 안의 유혹과 공포도 야생마로 돌아가려 한다. 꿈자리가 어지러운 시절이다.


...산업화 이전의 사회에서 폭력의 상처를 입지 않은 삶의 영역은 거의 없었다. 아내, 자식, 하인들은 매질을 당했고, 곰은 개에게 괴롭힘을 당했으며, 고양이는 대학살을 당했고, 개는 도둑처럼 교수형에 처해졌다. 검객은 결투했고, 농부는 다투었으며, 마녀는 불태워졌다. 싸움은 즉각 벌어졌다. 한 여행객은 영국 사람들에 대해 “그들의 화는 말을 압도해서, 주먹을 날려야만 해소되었다”고 말했다. 특히 단조로운 삶과 끊임없는 빈곤에서 오는 좌절이 불을 지폈을 때, 급한 성격에 술 한 잔이 더해지면 그 결과는 참혹했다. 근대 초 살인 사건의 비율은 오늘날 영국보다 5~10배 더 높았다. 오늘날 미국의 살인율도 16세기 유럽보다는 훨씬 낮다. 어떤 사회 계급도 살인에서 제외되지는 않았지만 특히 하층 계급이 잔혹한 공격의 대상이 되었고, 가해자는 그 친지나 친척인 경우가 많았다. 베네치아의 치안판사는 “같은 밥을 먹는 짐승끼리는 서로 물어뜯는 법이다”며 비웃었다.[로저 에커치, 조한욱 역,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교유서가, 2016), 89쪽]  


폭력이라는 말을 대하면 르네 지라르의 ‘초석적 폭력’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착한 초콜렛’처럼 감미로운 말이었다. 그 말을 만나면서 내 안의 폭력들이 일제히 사면장을 받았다.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줄 알았는데 “처음은 다 폭력이다”라는 말 한 마디에 모든 것이 용서되었다. 나를 용서하고, 남에게도 쥐꼬리 만큼이지만 용서를 베풀기 시작한 것도 그 어름이었다. 오늘 다시 그 반가운 단어를 만났다. “인간은, 인간 사회는 본디 폭력적인 것이었다, 인간이 기르는 개나 고양이도 모두 폭력의 가해자고 피해자다”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일깨우는 글 속에서였다. 저자 역시 ‘폭력 콤플렉스’의 소지자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더 반가웠는지도 모르겠다.


이 대목의 매력은 또 있다. “아내, 자식, 하인들은 매질을 당했고, 곰은 개에게 괴롭힘을 당했으며, 고양이는 대학살을 당했고, 개는 도둑처럼 교수형에 처해졌다”라는 폭력적인 글쓰기 스타일이다. ‘인간 사회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몇 가지 펙트를 열거하는 것임을 모르지는 않겠다. 그러나 ‘아내, 자식, 하인들’과 ‘곰’이, ‘남편, 아버지, 주인’이 ‘개’와 등가시(等價視)되는 그 돌연한 ‘연결의 폭력성’을 대면하는 순간 그런 평면적인 이해는 자취를 감춘다. 그것이 사라진 자리에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인생의 고달픔’이라는 또 다른 진실이 미끄러지듯이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오로지 폭력적인 글쓰기를 통해서만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고통을 회피할 수 없다는 숙연한 공명(共鳴)이 찾아온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어젯밤 동네 어귀 골목길에서 큰 고양이가 작은 고양이를 못살게 구는 장면을 목격했다. 용케 살아남은 다른 길고양이 새끼가 자기 구역을 침범했다고 따끔하게 응징을 하는 모양이었다. 가해자의 음흉한 으름장 소리와 피해자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를 듣고 그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시커멓게 생긴 큰놈이 후다닥 달아났다. 자주 보던 놈이었다. 작은놈은 여태 겁에 질려 엎드려서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같은 밥을 먹는 짐승끼리는 서로 물어뜯는 법이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살아남아서 더 강해지면 된다. 그지?”. 밑도 끝도 없이 새끼 고양이에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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